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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언니랑 안부 통화한다. "집에만 있으니까 우울증 걸리겠어." 언니만 그런 게 아니다. 혼자 노는 데 익숙한 나도 요즘의 자의반타의반 사회적 거리 유지는 엄청 스트레스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과 수능 2주 연기가 시행되는 판국이니 투덜거리기보다 자구책을 찾는 게 낫다. 기분전환부터 하려 책장을 뒤진다. 언젠가 밀쳐두었던 판타지 소설이 떠올라서다. 상상력은 이 감옥살이에 도움이 될 테니까.       

정세랑 장편소설 <지구에서 한아뿐>은 외계인과의 사랑, 즉 다디단 이종 커플 이야기다. 외계인이 나올망정 과학적 소재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내용은 아니어서 SF랄 수는 없다. 내겐 다행히 '지구에서 하나뿐'(연음하면)의 감성들이 코로나19가 빚는 암울함을 씻어준다. 특히 2030 세대에게 어필할 정세랑의 톡톡 튀는 인식들이 책읽기의 추임새가 되어 독서삼매로 이끈다.     
 
 정세랑 지음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지구에서 한아뿐"
ⓒ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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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영하 40도의 무시, 영상 23도의 염려, 70도의 흐느낌, 112도의 분노로"(36쪽)를 체감하려 한 번 더 훑게 된다. 역시 과학적이진 않으나 그럴싸한 "고도로 발달한 광학 기술과 텔레파시 능력을 합쳐 물리학 법칙을 구부리는 원리의 망원경이야."(101쪽)가 엉성하다 느끼면서도 "대기권을 통과하는 운석의 표면보다 훨씬 뜨겁고 훨씬 산소를 많이 소모하는 분노였다."(108쪽)에선 무릎을 친다.
    
그런 문장들이 내 상상력을 자극하며 먹히는 건 <지구에서 한아뿐>이 까놓고 낭만적이어서다. 옷수선을 업으로 삼아 업사이클링을 즐기는 한아 캐릭터도 젊은 층에 흔치 않지만, 한아의 개성을 한껏 알아주며 맞춤복 같은 구애를 펼치는 외계인(경민 역)의 교감 방식은 현실에서 희귀한 만큼 그렇다. 둘의 밀당을 통해 내 사랑의 헐은 요소들이 쏙쏙 짚일 정도다.   
  
경쟁이 당연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낭만적 행위는 바보짓으로 폄하되기 쉽다. 지고지순까지는 아니어도 분명 순수한 마음을 지속하는 경민에 대한 한아에게, 그리고 한류 스타 "아폴로 공식 팬클럽 '오빗orbit'의 회장 이주영"에게 주변인들의 충고는 혀 쯧쯧 차는 "왜 그러고 사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판타지 속에서 두 바보는 결국 주인정신을 구현한 삶을 일군다.

외계인이 한아를 찾아온 이유는 판타지적 낭만을 선보인다. 집단 무의식으로 꿈이 이어져 "개체이면서 모두"인 별에서 우주를 구경하는 중에 한아를 보게 되어 그만 반해버린 거라는. 그래서 별 전체가 한아 꿈을 꿨지만, 자기가 첫 번째로 보고 생각한 거여서 자기가 온 거라는. 한아를 본 망원경은 "몸의 일부로 만든 것이라서, 본체가 꿈을 꾸고 있을 때는 스스로 움직"이는데, 깨서 "체크해보면 꼭 비슷한 지점을 스쳐갔더라"는.  
   
덧붙이는 말이 더 작업적이다. "미적인 기준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솔직히 인간은 아무리 봐도 아름답게 안 느껴져. 근데 너만…… 너만 아름다웠어. 빛났어. 눈부셨어. (…중략…) 너를 위한, 너에게만 맞춘 감각 변환기를 마련하는 데 긴 시간이 들었어."(104쪽) 그만 내가 솔깃해져서 읽는 중에 미소 짓고 만다. 나는 그 시공에서 코로나19를, 사회적 거리 유지를 잊고 있다.
      
작가는 환경친화적인 발화들도 자주 배치한다. 그 평탄한 전개가 뻔해질 즈음 역전이 일어난다. 우주여행을 떠났던 진짜 경민이 돌아오며 죽음이 다뤄진다. 소설 첫 부분의 옷 수선가게 이름 "환생"에 걸맞는 이종 커플의 바람이 드러난 수미상관의 완결이다. 참신한 글 바느질로 일상적 성긴 로망을 낭만적 해피엔딩으로 짜깁기해 구차한 현실을 업사이클링한 상상력이다.
     
메마르지 않은 마음이라는 점에서 낭만은 인간적이다. 곧이곧대로 확진자수를 발표하는 정부와 사재기 없이 자원봉사나 마스크 양보를 선보인 시민정신에서 난 '사람이 먼저다'의 낭만을 발견한다. 코로나19가 지금 여기의 한국이 살만한 곳임을 역설적으로 일깨운 셈이다. <지구에서 한아뿐>의 상상력보다 더 다디단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newcritic21/39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은이), 난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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