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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근교 여행지에 남겨진 강제노역의 흔적

일본의 알프스라 불리는 나가노(長野)! 봄, 여름, 가을, 겨울. 소녀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다.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해버린 설국(雪國)에서 온천을 즐기는 지고쿠다니(地獄谷)의 원숭이. 벚꽃 위에 눈이 내리는 몽환의 숲 그 자체인 벚꽃 설화(雪花) 마을 다카토죠시공원(高遠城址公園).

1968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꽃의 왈츠>를 집필한 벳쇼(別所) 온천마을. 낮에는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밤에는 별빛이 일렁이는 가루이자와(軽井沢). 나는 동화 같은 나가노에 적힌 슬픈 이야기를 당신과 나누고자 한다.

나는 당신이 나가노 여행을 기획하지 않더라도, 나가노라는 지명을 우연히 들었을 때, 그곳에 우리의 아픔도 있다는 것을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나가노역은 도쿄(東京)역에서 신칸센으로 편도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나가노역에 도착한 나는 마쓰시로(松代)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松代大本営地下壕)로 향하였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는 조선인 강제노역의 한이 서려 있는 장소이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는 나가노역에서 마을버스(아루비코 교통=アルピコ交通)로 약 30~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마을버스를 타고 '마쓰시로 하치쥬니 긴코 마에(松代八十二銀行前)'라는 버스 정류장에 내려, 도보 10~20분 정도 걸으면 조용한 산마을 속 역사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개인 자동차로 갈 경우는 나가노IC에서 약 5~7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란?

'마쓰시로(松代)'는 나가노현에 위치한 마을 이름이다. '대본영(大本營)'은 전쟁 중에 구성된 일왕의 직속 군대 최고 통수 기관, 즉 참모본부(參謀本部)를 뜻한다. '지하호(地下壕)'란 지하 벙커이다. 즉,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는 일왕의 가족과 정부의 주요 관청이 전쟁 중에 숨어 있는 방공호였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는 1944년 11월 11일 11시에 첫 공사를 시작하였다. '1'이라는 숫자에 염원(태평양 전쟁의 승리)을 담아, 11분 11초에 첫 다이너마이트가 터졌다는 속설도 있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는 마쓰시로에 있는 3개의 산(죠잔, 마이쓰루야마, 미나카미야마)을 중심으로 젠코지(善光寺) 평야 일대에 분산시켜 만들어졌다.

죠잔(象山)에는 정부 기관, 일본 방송협회(NHK 등), 중앙 전화국이 안치될 예정이었다. 마이쓰루야마(舞鶴山)는 황거와 대본영(참모본부)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미나카미야마(皆神山)는 군사령부와 식량 창고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나는 마쓰시로 대본영 추도비 수호회(松代大本営追悼碑を守る会, 이하 '수호회'로 칭한다)의 사무국장을 대행하고 계시는 히다 히데유키(喜多英之)씨와 회원분들을 만나,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죠잔, 마이쓰루야마, 미나카미야마 지도 마이쓰루야마는 죠잔과 미나카미야마 사이에 위치해 있다.
▲ 죠잔, 마이쓰루야마, 미나카미야마 지도 마이쓰루야마는 죠잔과 미나카미야마 사이에 위치해 있다.
ⓒ 김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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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호의 공개를 제의한 고등학생들

현재 일반인에게 공개된 지하호는 죠잔(象山) 지하호뿐이 없다. 마이쓰루야마(舞鶴山) 지하호는 기상청의 지진 관측소로 쓰이고 있으며, 미나카미야마(皆神山) 지하호는 붕괴가 심하여 내부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패전 후,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는 일시적인 공개나 마을 유지들 사이에서 여러 방도로 활용하고자 하였으나, 크게 주목받는 일 없이 잊히고 있었다. 이에 전환점이 된 것은 나가노시의 사립 고등학교(현재, 슝에이 고등학교) 항토연구반 학생들이 오키나와의 전쟁터 견학을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85년 9월 학생들은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를 평화를 위한 사적으로 보존·공개할 것을 나가노 시장에게 제안하였다. 1989년 가을, 나가노시는 학생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약 6km 정도 되는 죠산 지하호의 일부 (70m)를 공개하였다. 그 후, 1990년부터는 죠잔 지하호의 공개 범위를 500m로 넓혔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죠잔 지하호)의 내부.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죠잔 지하호)의 내부.
ⓒ 김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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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안내 간판

그러나 '수호회' 분들은 죠산 지하호의 공개 상황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언급하셨다. 하나는 관리 담당 부서 변경의 필요성. 둘은 안내 간판 설명문의 수정이다.

첫 번째 문제점은 죠잔 지하호가 역사 교육의 장소로 자리매김한 것이 아니고 '관광지'로서 공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죠잔 지하호의 보존·공개는 나가노시의 관광진흥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수호회' 분들은 교육 담당과로 변경하여 죠산 지하호가 역사 인식을 바로 잡는 교육의 장소로 이용되기를 나가노시에 요구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안내 간판에 적힌 조선인 강제 동원에 관한 애매한 설명이다. 1989년 죠산 지하호의 공개와 함께 첫 안내 간판이 설치된다. 그런데, 안내 간판에는 강제동원에 관한 설명은 일절 기재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역사의 은폐를 지적하며 나가노시에 항의하였다. 나가노시는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강제노역에 관한 내용을 마지막 단락에 추가하였다.
 
三百万人の主民及び朝鮮人の人々が労働者として強制的に動員され、
3백만 명의 주민 및 조선인들이 노동자로 강제 동원되어,

그런데, 2013년, 안내 간판에 적힌 '강제(強制的に)'라는 표현이 흰 테이프로 삭제되었다. '수호회'와 역사의식을 가진 시민단체들은 테이프로 삭제된 내용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강제'라는 어휘가 흰색 테이프로 가려진 2014년 나가노시의 간판.
 "강제"라는 어휘가 흰색 테이프로 가려진 2014년 나가노시의 간판.
ⓒ 김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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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나가노시는 검토회를 조직하여 새 안내 간판을 세우기로 결정한다.새롭게 세워진 안내 간판에는 아래의 문구가 새겨진다.
 
また、労働者として多くの朝鮮や日本の人々が強制的に動員されたと言われています
또한, 노동자로서 많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강제 동원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必ずしも全てが強制的ではなかったなど、さまざまな見解があります
반드시 모두가 강제 동원은 아니었다는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수호회' 분들은 새 안내 간판의 문구는 '반드시 강제는 아니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역사 인식 교육을 위해서는 강제 동원에 대한 명확한 기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현재, '수호회'에서는 새로운 간판을 철거하고, 조선인의 강제 동원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명백하게 표기할 것을 나가노시에 요청하고 있다.
 
 2020년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 안내 간판에 문제가 되는 문구.
 2020년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 안내 간판에 문제가 되는 문구.
ⓒ 김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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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책임을 지고, 사죄하고자 하는 이들

나가노시의 소시민들과 시민단체는 대본영 공사에 강제 동원된 희생자를 추도하며, 지하호의 보존과 전체 공개 요구 운동을 1986년부터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죠잔 지하호의 전체 공개를 요구하는 이유는 죽은 희생자의 유골을 발굴하여 유가족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1995년 8월 10일, 드디어 240명이 넘는 사람들의 서명과 기부금으로 '조선인 희생자 추도 평화 기념비'가 죠잔 지하호 앞에 세워진다. 역사의식을 가진 나가노 시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98년 2월에는 '산업 위안부'에 관한 역사관(또 하나의 역사관, もう一つの歴史館)을 설치하여 어둠 속에 숨겨져 왔던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패닉상태이다. 2월 말, 한국에 급격히 퍼진 코로나로 인해 공포에 휩싸였다. 해외에서는 한국을 위험 국가로 지정했으며,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입국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딱! 한 달이 지난 3월 말, 지금은 반대로 전 세계가 한국의 대처에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우리를 일으켜 준 것은 '정부 대응' '중국' '신천지' 등에 대한 비난이 아닌, '이겨 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역사 또한 '일본 정부'와 역사의식이 없는 '무지한 일본 시민'에 대한 비난보다, 깨어있는 역사 의식으로 진실을 알리고, 전쟁에 대한 책임과 사죄를 하고자 하는 이들을 조금 더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죠잔 지하호) 앞에 세워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평화 기념비’.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죠잔 지하호) 앞에 세워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 평화 기념비’.
ⓒ 김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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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양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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