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정규리그 3위에서 작년 9위로 추락한 한화 이글스는 작년 시즌 팀 타율(.256), 팀 득점(607점), 팀 홈런(88개) 부문에서 각각 8위, 팀 타점 9위(562개)에 머물며 타선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물론 팀 평균자책점 9위의 마운드도 심각하지만). 21홈런 85타점을 기록한 이성열과 18홈런 73타점을 기록한 외국인 선수 제라드 호잉이 고군분투했지만 이성열과 호잉 역시 2018 시즌과 비교하면 개인 기록이 많이 떨어졌다.

특히 '한화 타선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김태균의 부진은 매우 아쉽다. 김태균은 127경기에서 .305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홈런이 단 6개, 장타율은 .395에 그치며 중심타자로서 제 몫을 전혀 해주지 못했다. 2008년 홈런왕과 장타율왕을 휩쓸었고 통산 .523의 장타율을 자랑하는 김태균의 장타율이 3할대에 머문 것은 지독한 2년 차 징크스에 시달렸던 2002년 이후 무려 17년 만이었다.

이처럼 우울했던 작년 한화 타선에서 유일하게 팬들에게 위안을 줬던 선수는 바로 한화의 유망주에서 간판 내야수로 성장한 '대전 아이돌' 정은원이었다. 정은원은 상대에게 장단점이 노출돼 집중적인 견제를 당하고 공인구의 반발력 저하로 타자들의 성적이 전체적으로 하락한 작년 시즌 공수에서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뤄냈다. 이제 정은원은 한화의 유망주를 넘어 간판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해 올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정근우의 수비가 흔들리면서 우연찮게 기회 잡은 고졸 루키

흔히 외야 수비보다는 내야 수비, 그 중에서도 양 코너를 지키는 1루와 3루보다는 '센터라인'으로 불리는 2루와 유격수 수비가 더 어렵다고 한다. 특히 수비란 타고난 감각이나 센스도 중요하지만 풍부한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들이 2루수나 유격수로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매우 드문 이유다.

현재 10개구단 주전 2루수 중에서 고졸 루키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는 올 시즌부터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활약할 안치홍 정도 밖에 없었다. 서울고 시절 투수와 유격수를 겸하던 안치홍은 KIA 타이거즈 입단 후 2루수로 변신해 14홈런을 때려내며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일조했다. KIA 유니폼을 입고 2개의 우승반지를 낀 안치홍은 3번이나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리그 최고의 2루수 중 한 명으로 군림하고 있다.

인천고 출신의 정은원 역시 안치홍과 마찬가지로 고교 시절엔 주로 유격수로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계약한 경북고의 배지환을 제외하면 당시 고교무대에서 정은원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던 유격수는 거의 없었다. 정은원은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전체 24순위)로 한화에 지명됐는데 그 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정은원보다 먼저 이름이 불린 유격수 자원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야 유망주들이 그런 것처럼 정은원 역시 프로에서 적응하고 1군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한화에는 유격수에 하주석, 2루수에 정근우(LG 트윈스)라는 확실한 주전 선수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고졸 루키인 정은원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준비된 신인' 정은원에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한화는 부동의 주전 2루수였던 정근우가 시즌 개막 후 39경기에서 9개의 실책을 저지르며 무너졌고 한용덕 감독은 '플랜B'로 루키 정은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2000년생 루키 정은원은 98경기에 출전해 타율 .249 4홈런 20타점 33득점을 기록하며 매우 의미 있는 시즌을 보냈다. 고교 졸업 후 1군에서 곧바로 두각을 나타낸 센터라인 내야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화는 2018 시즌을 통해 정은원이라는 보물을 얻은 셈이다.

공수를 겸비한 한화의 간판 내야수, 연습경기에서도 맹타

정은원은 루키 시즌 활약을 통해 흔하디 흔한 유망주 중 한 명에서 일약 한화 내야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한용덕 감독도 작년 시즌을 앞두고 2루 수비에 부담을 느끼던 정근우를 중견수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주전 2루수 정은원'에게 더욱 힘을 실어줬다. 여기에 또 한 명의 포지션 경쟁자였던 강경학이 어깨부상을 당하면서 정은원은 한화의 개막전 주전 2루수로 낙점됐다.

정은원은 시즌 개막 첫 날부터 시즌이 끝나는 날까지 단 한 번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지 않고 한화의 풀타임 2루수로 활약했다. 142경기에서 1192.2이닝을 소화한 정은원은 10개 구단의 모든 야수를 합쳐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선수가 됐다. 정은원은 풀시즌을 활약했음에도 수비율 .982의 견고한 수비를 뽐냈다. 작년 한화가 하주석의 부상으로 유격수가 수시로 바뀐 점을 고려하면 정은원의 수비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타격에서의 발전 속도도 기대 이상이었다. 정은원은 작년 한 해 동안 타율 .262 148안타 8홈런 57타점 83득점 14도루를 기록하며 최다 안타 부문 13위(팀 내 1위)에 올랐다. 최정(SK 와이번스)이나 강백호(kt 위즈, 이상 147개), 김재환(두산 베어스, 140개) 등 다른 팀의 간판타자들보다 더 많은 안타를 때려낸 것이다. 당초 정은원에게 가지고 있던 타격에서의 기대치를 한참 웃돈 성적이었다.

한화는 작년 11월 2차 드래프트를 통해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3회 수상에 빛나는 정근우를 LG로 떠나 보냈다. 하지만 정은원이라는 젊고 유능한 2루수를 보유한 한화 팬들은 올 시즌은 물론 향후 5~7년 동안 2루수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정은원은 2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자체 청백전에서도 청팀의 1번타자로 출전해 4타수3안타1타점으로 맹타를 휘두르며 올 시즌 활약을 기대케 했다.

정은원은 올 시즌을 앞두고 작년보다 118.2% 인상된 1억2000만 원에 연봉 계약을 체결하며 프로 데뷔 3년 만에 억대 연봉 선수로 등극했다. 정은원의 입단 동기 중에서 연봉 2억1000만 원의 강백호를 제외하고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프로 입단 3년 만에 한화의 간판 내야수가 된 정은원은 2018년 신인 드래프트 출신 선수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 중 한 명으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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