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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 선생
▲ 주시경 선생 주시경 선생
ⓒ 한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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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은 국문연구가ㆍ한글 전도사이면서도 계몽운동가였다. 당시의 지식인그룹 특히 개화파 계열의 진보지식인들은 대부분이 청년 계몽운동을 하였다.

그는 1902년 9월에 발간된 『신학월보』 제2권 9호의 '사설' 란에 쥬상호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지혜와 권력」이란 긴 글을 썼다. 순국문으로 어느 정도 띄어쓰기를 한 채 세로쓰기로 인쇄되어 있다. 여기서는 글의 후반부를 소개한다. 국민계몽과 관련한 부분이다.

또 나라끼리 다투고 인종끼리도 싸우매 학문을 힘쓰지 아니하고 서로 편리한 기계를 만들지 않고 생활하는 규모와 보국하는 정략을 변통치 아니하던 미국 토종(土種)들은 구주 인종들이 윤선을 타고 대포와 총과 기타 정예한 기계들을 가지고 더럭더럭 건너와 포대를 묻고 철로를 놓고 성을 짓고 상업을 점점 확장하되 토종들은 그 뇌와 손을 합당하게 쓰지 아니하므로 남의 좋은 정략과 규모와 기계를 저의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본받을 생각도 두지 아니하다가 선척(船隻)들이 많이 왕래하는 해안과 강변과 장사 잘 되는 통구(通口)와 그의 경내(境內)에 모든 좋은 곳과 권세 있고 돈 많이 생기는 일은 다 빼앗기고 모군(募軍) 일어나 하고 굴뚝이나 우비며 궁빈한 곳으로 차차 밀려가 그 사는 것이 가난하고 더럽고 무식하고 천하여 그 종자가 점점 시들어 멸망하였고,

인도는 삼억이나 되는 인중(人衆)으로 그 여러 가지 무식하고 천루한 풍속을 지키느라고 그들의 뇌와 손이 이 풍속의 종이 되어 국제의 정략과 생활의 사업을 편리하도록 변총치 아니하고 그 풍속 지키기에 그 뇌가 흐리고 못이 박혀 밤낮 내기와 기도하기와 무술(巫術)을 믿어 굿하기와 고사지내기와 부적과 진언 등설(等說)을 믿어 귀신을 쫓는다기와 귀신이 도와주면 잘된다고 위하기와 귀신의 노(怒)를 푼다고 푸닥거리하기와 귀신을 제어한다고 경문을 읽기와 길흉화복을 점쳐 예방한다기와 사람을 죽여 산천이나 부처나 짐승에게 제사지내기와 죽은 사람을 위하여 복 빈다기와 여러 가지 속기(俗氣)를 숭상하기와 국법이 문란하여 협잡하기와 그 외에 형형색색으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이치가 많고 더러운 무식한 풍속만 지키기를 일삼으며 저희끼리 조그마한 일로 다투며 일심(一心)이 되지 못하다가 십배나 적은 대서양 속에 있는 조그마한 섬 영국에 휘둘려 종노릇하더라.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풍속이 많은데 그 풍속의 폐되는 것이 극히 크건마는 법통하기는 고사하고 폐되는 줄도 깨닫지 못하니 진실로 애석한 바이로다. 이 아래 크게 폐단되는 풍속을 대강만 몇 가지 기록하니 위에 말한 것을 미루어 왜 폐단이 되나 궁구하여 보고 변통하기를 바라노라. 우리는 이런 풍속에 젖어 부끄러운 줄을 깨닫지 못하나 불가사문어타인(不可使聞於他人)이라 지상(紙上)에 드러내고 싶지 아니하되 폐됨을 일깨우고자 하매 하지 못하여 기록하노라.

 一. 변통할 줄 모르는 풍속
 一. 제사지내는 풍속
 一. 장지를 택하는 풍속
 一. 조혼하는 풍속
 一. 돈 받고 시집보내는 풍속
 一. 내외하는 풍속
 一. 여아를 가르치지 아니하는 풍속
 一. 문벌을 구별하는 풍속
 一. 의복의 제도를 구별하여 입는 풍속
 一. 무식하고 이치 없는 무수한 속기를 무서워하고 독실히 지키는 풍속
 一. 무복(巫卜)을 믿고 여러 가지로 무식한 노릇을 행하는 풍속
 一. 불가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괴상한 일을 믿어 행하는 풍속
 一. 한문을 숭상하여 풍월을 일삼는 풍속
 一. 지금 소위 학자들은 성현을 본받는답시고 학교와 서원 등을 실시하고 예식과 허문만 숭상하는 풍속
 一. 산천으로 다니며 복 빈다고 재물을 허비하는 풍속
 一. 당(堂)과 주저리와 신장(神將壇)과 터주와 성주(成造)와 제석(帝釋)과 걸립(乞粒)과 조왕과 업위양(業位樣)과 그 외에 대처 이름도 이루 다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종류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풍속
 一. 상투 짷고 망건 쓰는 풍속
 一. 항상 흰 옷 입는 풍속
 一. 위생하는 도리에 어두워 거처를 정쇄(淨灑)하게 아니하는 풍속
 一. 질병에 굿하기와 여러 귀신에게 빌기와 경 읽기와 동법 잡기와 죽 쑤어 버리기와 그 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예방한다는 따위 일을 부지런히 행하느라고 정성을 쓰고 재물을 허비하면서 그 병은 점점 심하여 가도 약을 쓸 줄 모르는 풍속
 一. 백에 아흔 아홉은 시모가 며느리와 불화하는 풍속
 一. 여인들은 쓸데없는 잔말을 많이 하는 풍속
 一. 무무(貿貿)한 자 과부 동이는 풍속
 一. 뇌물하는 풍속

이외에도 한량없는 폐속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데 이런 풍속들만 뒤집어 쓰고도 그 속에서 우물우물하면서 이내 벗어 버릴 생각이 없어 변통하기를 도모치 아니하고 이 모양대로 지내어 가려고 하다가는 지금 외세가 점점 강성하는 때를 당하여 필경 납작이 됨을 면치 못하겠도다. 어찌 개탄한 바 아니라오? 짐승은 그 천생 형세가 어찌할 수 없어 생활하는 일을 변통하여 더 좋게 하지 못하되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강구하고 힘쓰면 못할 일이 없는지라.

하늘이 주신 기묘한 뇌와 손을 합당하게 잘써서 이런 고루한 일을 다 버리고 규모와 풍속을 변통하여 천리와 인정에 합당하게 하고 기계, 거처, 의복, 음식을 아름답게 하며 의(義)를 잡고 영특한 일을 많이 행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상에 위 덮는 인종이 되기를 도모할지어다.   그런즉 사람의 지혜와 권력이 짐승보다 많은지라. 이 많은 것을 잘 쓰면 좋은 사업은 좀 하되 얼마 되지 못하고 만일 하느님의 지혜와 권력을 얻어 행하면 무궁무진한 사업을 한량없이 하리니 우리는 항상 본 지혜(本知慧)와 본 권력(本權力)을 믿지 말고 하느님을 의지하여야 될지라. (주석 5)


주석
5> 『주시경 학보』 제5집, 이현희, 219~22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한힌샘, #한힌샘_주시경, #한글, #신학월보, #쥬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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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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