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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 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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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전생애를 바쳐 한 가지 일에 종사한다면 '위대함'이란 칭호를 받아도 될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민족이나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주시경은 그랬다.

비록 짧은 삶이었지만 그는 일찍 역사현상에 눈을 뜨고, 우리말ㆍ우리 글 연구와 보급에 모든 것을 걸었다.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영향이라기보다 스스로 깨우침이고 결정이고 실천이었다.

긴 역사의 안목에서 보면 선각이고 선구적인 일이지만 당대로서는 반시대적 아웃사이드이고 소외되고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여기에 견디지 못해 포기하고 굴절하면 무의미해도, 끝까지 추진하면 설혹 당대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언젠가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다.

주시경은 학부의 국문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경향 각지의 학교와 강습소를 순회하면서 국어와 맞춤법을 가르쳤다. 국어학자 이윤재는 1933년 10월 28일 『동아일보』에 한글의 변천을 네 가지 시대로 구분한 바 있다.

 ① 정음시대(창제기) : 세종 28년(1446)부터 성종 대(1469~1494)까지 50년간
 ② 언문시대(침체기) : 연산군 대(1494~1506)부터 고종 30년(1893)까지 400여 년간
 ③ 국문시대(부흥기) : 갑오개혁 때부터 경술년(1910)까지 17년간
 ④ 한글시대(정리기) : 주시경의 한글운동부터 현재(1933)까지 20여 년간
  
1900년 5월 6일자 뎨국신문(제국신문)
 1900년 5월 6일자 뎨국신문(제국신문)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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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의 국문(한글) 사랑 정신은 치열하고 한결같았다. 지금부터 120여 년 전에 『제국신문』에 쓴 논설에서 그 정신의 일단을 살필 수 있겠다. 「논설」의 두 대목을 살펴본다.

전국 사람이 국문에 힘을 써서 연구하여 점점 발명하거더면 편리한 법이 세계 만국 글 중에 제일 긴요한 글이 될 것이거늘,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우기 어렵고 알기도 어렵고 마음대로 말을 만들기 어려운 한문만 글로 알고, 배우기 쉽고 알기 쉽고 못할 말없이 하기 쉬운 국문은 글로 알지도 아니하고 여인들이나 배울 것이라고 하며 등한히 여기고 천하게 여겨서 무슨 문자로 치부(置簿)를 하든지 통신하는 일 같은 천만사를 넉넉지 못한 한문으로만 기록하고 쉬운 국문은 쓰지 아니할뿐더러, 또 여간 짐작하고 국문을 쓰는 사람들도 국문을 만든 이치와 말 만드는 데 고하자(高下字)와 경위를 분변치 아니하고 되는 대로 횡설수설하게 써서 남이 그 글을 보고도 알 수가 없이 만드는 어찌 개탄치 아니하리.

국문 만든 이치가 경홀(輕忽)하지도 아니하고 말 만드는 법도 기묘한 고로, 우리나라에서는 긴중(緊重)히 여기지 아니하되 외국 사람들은 그 글이 묘한 글이라 칭도(稱道)하며 점점 발명하고 연구하여 고하자(高下字)의 분간을 구별하여 서책을 만들고 신문을 만들어 아무쪼록 세상의 남녀노소 없이 다 국문을 달통하여 무식한 사람이 없도록 생각하거늘, 정작 본국 사람들은 시악 심상(恃惡尋常)하고 국문에 힘을 쓰지 아니하는 지라.

가령 동서양 사기(史記)라든지 성경현전(聖經賢典)이라든지 법률 규칙 같은 천만사를 모두 국문으로 번역하고 아무쪼록 국문을 연구하여 남이 알기 쉽도록 만들겠더면 사람마다 세계 형편도 알기 쉬울 것이요, 성경현전의 좋은 말과 좋은 행실을 보아서 모두 지식도 늘고 행실도 점잖아질 터이요, 내 나라 일과 남의 나라 일을 보아 분변하는 애국성(愛國性)도 생길 터이거늘,

한문으로 기록한 책만 보아야 하겠고 수십 년을 공부하여야 성공할는지 말는지 한 한문 공부만 하여야 될 줄만 아나니, 어느 겨를에 다른 것은 아니로되 국문을 등한히 여기고 힘쓰지 아니할 것이 아니기로 두어 마디 설명 하거니와 국문이 발달되는 날에야 우리 대한이 세계에 독립 부강국이 될 줄로 짐작하노라. (주석 3)


주석
3> 「논설」, 『제국신문』, 1900년 1월 10일치, 발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한힌샘, #한힌샘_주시경, #한글, #제국신문, #주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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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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