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영화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그 누구도 아닌>은 르네의 네 시절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성장기다. 파리로 이주한 르네(아델 에넬)는 남편과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교사로 있는 학교에 타라(젬마 아서톤)가 찾아오며 평온한 삶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타라는 7년 전 일을 들먹이며 협박하기 시작한다. 과연 르네는 7년 전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영화는 거꾸로 시간을 돌려 르네의 달랐던 삶을 쫓아간다.

영화는 한 여성의 기구한 삶을 네 여성의 삶처럼 독립적으로 그려냈다. 영화가 시작하면 아델 에넬의 장악력에 취해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20대 후반의 르네, 20대 초반 산드라(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13살 카린(솔레 리곳), 6살 키키(베가 쿠지테크)가 등장한다.

이들은 외모가 닮지도 이름이 같지도 않다. 한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각각의 다른 여성이라 봐도 무방하다. 아마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우리가 상황, 대상, 장소에 따라 매번 다른 페르소나를 꺼내드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영화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르네는 어린 시절 친구들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폭력에 견디지 못해 가출한 뒤 길거리를 전전하며 도움 줄 남성들을 만난다. 그때마다 남성들이 바라는 것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이 여러 차례 다가와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가 바투 잡아 놓지 않은 것은 삶의 의지였다. 왜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살아야 할까, 다르게 살 수는 없을까, 갖은 의문이 든다. 인간은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무슨 이유에서 선 살아가게 된다. 삶의 자유의지는 누구도 꺾을 수 없다. 영화는 4번의 르네를 통해 삶의 의지를 피력한다.
 
 영화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영화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성인이 된 르네는 신문에서 양녀 구인 광고를 보고 나이 든 남성을 만난다. 그는 경마장 일자리를 마련해 주지만 안타깝게도 타라를 만나 범죄에 연루된다. 그렇게 인생이 한 번 더 꼬이기 시작한다. 가까스로 가정 폭력에서 탈출한 한 여성의 삶이 나아질 기미 없이 추락하는 잔인한 장면이 펼쳐진다. 르네는 힘겹고 거칠던 과거를 애써 지우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여러 차례 인공수정 끝에 아이를 기다리고 있지만 삶은 순탄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폭력과 가난은 다 끝났다고, 이제는 행복한 삶만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둠의 그림자를 피해 가지 못했다.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임신하나 경찰에 체포되고 복역 중에 출산일이 임박해 온다.

르네는 출산을 계기로 한 개인으로 정체성을 획득한다. 누구로도 불리지 않았던, 그저 아무 이름으로 불린다고 해도 개의치 않았던 여성이 비로소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다. 스스로를 파괴해 새롭게 정의하는 모습이 의연하게 다가온다.
 
 영화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영화 <그 누구도 아닌>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그 누구도 아닌>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채 흔들리던 여성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다. 여성으로 태어나 온전히 인간에서 여자로(성별) 그리고 여성으로(젠더) 자립하는 과정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이다. 불안한 삶을 청산하고 드디어 안정을 찾았지만 이내 무너져버린 과정을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래서 극영화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보인다. 흔히 영화에서 사용하는 플래시백 형식을 차용하지 않은 참신한 연출도 돋보인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의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의 연출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아델 에넬,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가 호흡을 맞춰 연기했다. 
그 누구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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