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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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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군내면 용장리에는 거대한 규모의 석성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 원종이 몽고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돌아오자 이에 반대한 배중손의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로 내려가 왕온을 추대하여 새로운 정권을 세웠는데요, 이때 쌓은 것이 진도 용장성입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삼별초를 단순히 군인집단쯤으로 배워 그 힘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이곳 진도 용장성에 오면 실로 그들의 힘이 예상 외로 얼마나 막강했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산비탈을 계단식으로 깎고 둘레가 13km나 되는 왕궁의 터를 만들 정도였다면 엄청 많은 백성들이 동원되었겠지요. 더욱이 진도가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던 곳인 걸 감안한다면 그것이 민초들의 자의든, 타의든 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을지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그런 백성들의 괴로움은 쏙 뺀 채 삼별초의 자주국방과 대몽항쟁 정신만 강조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 핏속에 이어져 내려오는 호국정신인냥 강조하죠. 그러나 과연 지배층이 내세운 대몽항쟁의 의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백성들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마도 대부분은 영문도 모른 채 공사장에서 착취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인 것은 그런 조상들의 피와 땀 덕분에 현재의 진도 사람들은 역사적 자부심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요즘은 가수 송가인의 생가를 찾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만 어쨌든 진도는 삼별초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섬이 되었습니다. 선조들의 고생이 후손들에게 복으로 되돌아온 것이죠.

진도에 가시면 이곳 용장성을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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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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