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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깃발 휘날리는 퀴어퍼레이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처진 가운데,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 무지개 깃발 휘날리는 퀴어퍼레이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지난 2019년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처진 가운데,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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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차별은 몸에 흔적을 남긴다 

동성결혼이 보장되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배우자와 함께 사는 성소수자들은 다들 어느 정도의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 또는 배우자가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를 당한다면, 헤어지게 된다면, 둘 중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둘이 함께 일궈온 삶의 기반은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 부부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보장받는 안전망이 동성커플들에게는 부재하며, 배우자 지위의 인정은 혈연가족이나 상대방의 선의에 온전히 달려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과 이로 인한 불안은 소수자들의 다른 사회적 경험이 그렇듯 이를 경험하는 이들의 몸에 흔적을 남긴다.
 
사회적 낙인과 차별, 배제로 인해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건강불평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학자 일란 마이어(Ilan Meyer)는 성소수자가 비성소수자에 비해 취약한 건강상태를 가지는 이유를 '소수자 스트레스'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한다[1].

성소수자처럼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 되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더해, 사회적 차별이나 폭력, 스스로 내재화하는 동성애 혐오 등 자신의 소수자 지위와 관련한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이러한 스트레스가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동성애자∙양성애자 23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연구참여자들은 일반 인구에 비해 5~7배 높은 우울 증상과 6~10배 높은 자살 생각을 보고하는 등 일반 인구에 비해 취약한 건강 상태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혼 법제화가 가져온 성소수자 건강의 변화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낙인과 차별, 배제가 이들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다면, 동성결혼 법제화와 같은 제도적 차별의 개선은 이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성소수자의 건강과 동성혼 법제화의 연관성은 미국의 동성혼 법제화 과정에서 진행된 연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03년 메사추세츠 주에서 동성혼이 최초로 법제화된 시점에서 2015년 연방 전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되기 전까지 미국에서 동성혼의 인정 여부는 주에 따라 달랐으며, 동성혼이 법제화 되었다가 주민발의안을 통해 다시 중지되었던 캘리포니아의 사례처럼 다양한 부침을 겪어왔다.

따라서, 동성커플은 거주하는 주가 어디인지에 따라 결혼을 할 수 있는 이들과 할 수 없는 이들로 나뉘었으며, 같은 주 내에서도 동성결혼이 가능했던 시기에 결혼을 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법적 지위가 달라졌다. 이러한 상황은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일종의 자연실험의 환경이 되었고, 연구자들은 동성혼과 성소수자의 건강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동성혼 법제화는 이를 통해 관계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된 동성 커플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와이트(Wight) 등[2]이 이성 부부와 동성 부부, 관계를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을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동성 부부는 그렇지 않은 성소수자에 비해 낮은 심리적 고통을 느끼며, 심리적 고통의 수준은 이성 부부, 동성 부부, 관계를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순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글(Riggle) 등[3]이 장기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동성 커플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 연구에 참여한 이들의 평균 연령은 55.4세, 관계 지속 기간이 22.7년으로 동성혼이 법제화되기 이전부터 오랜 기간 파트너와 관계를 유지해 온 이들이었는데, 이들 중 법적으로 결혼한 성소수자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한 정서적 고통이 낮았으며, 배우자로부터 받는 사회적 지지의 수준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연구에서, 파트너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동성결혼이 가능한 주에 거주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자신의 소수자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한 어려움을 덜 겪으며, 낮은 불안과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혼과 긍정적인 건강 결과 사이의 연관성은 제도를 통해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동성커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동성혼이 법제화된 주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와 금지된 주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의 정신건강과 주관적 삶의 질을 비교한 테이텀(Tatum)의 연구[4]에 따르면, 동성혼이 법제화된 주에 살고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낮은 불안을 경험하고, 주관적 삶의 질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차이는 거주하는 주의 정치적 성향을 통제한 상태에서도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첸블러(Hatzenbuehler) 등[5]은 2003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된 시점으로부터 12개월 이후 게이와 바이섹슈얼 남성의 의료이용과 의료비 지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연구했다. 연구참여자들의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이 14%, 고혈압으로 인한 의료이용이 18% 감소하는 등 동성혼 법제화 이후 의료이용이 유의하게 감소했다. 또한, 의료비 지출 역시 15% 감소했는데, 같은 기간 동안 매사추세츠 주에 살고 있는 일반 인구의 의료비 지출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의료비 지출의 감소가 동성혼 법제화로 인해 성소수자 인구에서 나타난 변화임을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동성혼 법제화는 인구 수준의 건강에 예상치 못 했던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라이프만 등[6]은청소년건강위험행동감시체계 조사에 참여한 15세에서 19세 사이의 76만 5039명의 자료를 분석하여 2004년에서 2015년 사이에 동성혼을 법제화 한 주에 사는 청소년과 동성혼이 법제화 되지 않은 주에 사는 청소년의 자살시도의 변화를 연구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동성혼 법제화 이전 해에 비해 법제화 이후 자살 시도를 보고한 청소년이 전체 청소년에서는 7%, 성소수자 청소년에서는 14% 감소하였다. 이를 15세에서 19세 사이의 미국 청소년 인구에 환산하면, 자살을 시도하는 청소년의 숫자가 연간 13만 4446명 감소하는 엄청난 결과이며, 이것이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한 캠페인이나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동성혼 법제화로 인한 변화임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나중에"를 말하는 정치가 유예하는 것은 누군가의 건강 
 
동성혼 법제화가 성소수자, 나아가 인구 수준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것이 성소수자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제도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성혼을 통해 서로의 배우자 지위를 인정받게 되는 동성커플을 포함해 성소수자 공동체가 경험해 온 제도적 차별의 개선하는 것이며, 성소수자를 가족이나 친구로 둔 이들에게도 자신이 아끼는 누군가가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없이 나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한 달도 안 남은 지금, 동성혼 법제화를 포함한 성소수자 인권 의제들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부되며 다시 한번 "나중에"로 유예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보다 먼저 동성혼이 법제화 된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들이 보여주는 건, 지금 한국의 정치가 유예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이자, 삶 그 자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1] Meyer, I. H. (2003). Prejudice, social stress, and mental health in lesbian, gay, and bisexual populations: conceptual issues and research evidence. Psychological bulletin, 129(5), 674.
[2] Wight, R. G., LeBlanc, A. J., & Lee Badgett, M. V. (2013). Same-sex legal marriage and psychological well-being: findings from the California Health Interview Survey.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03(2), 339-346.
[3] Riggle, E. D., Wickham, R. E., Rostosky, S. S., Rothblum, E. D., & Balsam, K. F. (2017). Impact of civil marriage recognition for long-term same-sex couples. Sexuality Research and Social Policy, 14(2), 223-232.
[4] Tatum, A. K. (2017). The interaction of same-sex marriage access with sexual minority identity on mental health and subjective wellbeing. Journal of homosexuality, 64(5), 638-653.
[5] Hatzenbuehler, M. L., O'Cleirigh, C., Grasso, C., Mayer, K., Safren, S., & Bradford, J. (2012). Effect of same-sex marriage laws on health care use and expenditures in sexual minority men: A quasi-natural experiment.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02(2), 285-291.
[6] Raifman, J., Moscoe, E., Austin, S. B., & McConnell, M. (2017). Difference-in-differences analysis of the association between state same-sex marriage policies and adolescent suicide attempts. JAMA pediatrics, 171(4), 350-356.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호림은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이며, 고려대학교 보건과학과(박사수료)에서 성소수자 건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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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 고려대학교 보건과학과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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