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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국회에서만 정치를 하는 건 아닙니다. '내 삶의 의제'를 찾아 목소리 내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21대 총선에 도전하는 '새 얼굴'들과 함께, 일상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청년들을 소개합니다. 우리의 아주 사적인 정치가, 공적인 장에서 더 활발히 논해지길 기대합니다.[편집자말]
"'광고' 감사히 받고 국회로 가드리겠습니다."

지난 18일, 경기도 구리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 지역사무실 앞에서 난데없는 '감사 인사'가 울려 퍼졌다. 발언의 주인공은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그는 이날 거리에서 연 정당연설회를 '역조공 팬미팅'이라고 표현했다. 윤 사무총장 덕분에 자신과 녹색당이 언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 전날인 17일, 윤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진행한 기자들과의 브리핑 자리에서 "성소수자 문제 등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들과의 연합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이자 성소수자 당사자인 김기홍 후보 등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이어졌다. 다음날 열린 정당연설회는 김 후보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윤 사무총장에게 일갈을 날리는 자리였던 셈이다.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왼쪽), 임푸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오른쪽)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왼쪽), 임푸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오른쪽)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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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광화문에서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4번)와 임푸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24번)를 만났다. 둘은 모두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 당사자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는 본인의 성별정체성을 남성 또는 여성으로 정의하지 않는 이들로, 출생 시 법적 성별과 관계없이 스스로의 성별정체성을 정의한다(책 <오롯한 당신> p.9).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변희수 하사 전역, 숙대 트랜스젠더 합격생 입학 포기 사건 등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가시화됐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계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좀 더 생경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두 후보의 도전은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지역에서 잔뼈 굵은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이기도 하다. 김 후보는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며 2017년 제주의 첫 번째 퀴어문화축제를 기획했다. 임 후보는 정의당 충남성소수자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을 맡아왔다. 2019년엔 여러 시민단체들과 함께 충남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결성을 주도했다. 동시에, 둘은 학교로 복직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비정규직 음악교사이자 '성소수자를 위한 복지관 개설'을 꿈꾸는 사회복지사이다.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삶을 살아온" 둘은, 어떤 과정을 통해 정치를 꿈꾸게 됐을까.

"왜 그렇게 입느냐"고 묻는 대신, 함께 치마를 골라준 애인

사범대를 졸업하고, 경남 밀양 등에서 중학교 비정규직 음악교사로 근무하던 김기홍 후보는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 2015년 고향인 제주로 돌아왔다. 스스로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건 바로 그해 하반기부터. 당시 사귀던 애인의 모습을 보고 "왜 남자 옷은 저렇게 예쁜 게 없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여성용 치마를 입어본 게 시작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어색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처음엔 "무서워서" 바지를 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었다. "마치 90년대 엑스세대 복장 같은" 차림이었다. 그의 두려움을 없애준 건, 당시 사귀던 애인이었다.

"애인이 '왜 바지 위에 입냐'고 물었어요. 그러면서 '스타킹이나 레깅스를 신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고요. 같이 치마도 고르러 다니기도 했고요. 그때 애인에게 '내가 이렇게 하고 다니는데 괜찮냐'고 물었는데 '뭐 어때, 어차피 남인데'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굉장히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말이 존중의 표현이라는 걸, 이때 처음 알게 된 거죠."

김 후보는 소위 사회가 규정한 '남성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페미니즘을 접했다. 관련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복장에는 젠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여성이 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남성으로 설명하기도 힘든 자신을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라고 정체화하게 됐다. 그는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의 '나중에' 발언 논란이 불거졌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했다.

임푸른 후보의 경험도 김 후보와 비슷하다. 임 후보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몸이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한쪽 성별처럼 발달하지 않았다고 느껴왔다. 그러던 중 대학 동기이면서 임 후보를 오랫동안 봐온 애인이 '여자 옷을 입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임 후보는 "여성복이 내게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뭔가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대학 졸업 1년 후부터 여성 옷을 입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크로스드레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기도 했고요. 2012년에 직접 '네트워크 포 트랜스젠더'라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 그때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도 호르몬 치료나 수술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커뮤니티 안에 있는 친구들과 결이 달랐어요.

나중에 '젠더 퀴어'(논바이너리와 유사한 용어)나 '논바이너리'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내가 이거였구나' 깨달았습니다. 흔히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성이 되고 싶어 한다거나, 업소에서 일하는 것 등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요. 제가 운영했던 커뮤니티에도 활동하시는 분들의 모습은 굉장히 다양했어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는 종종 크로스드레서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치마를 입은 건 단순히 여성을 '따라 하는' 행위가 아니라, 여성-남성으로 나눠진 성별이분법의 경계를 허무는 의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모습을 보고 '트랜스젠더가 여성의 코르셋을 강화한다'거나 '여장남자와 다름없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인 숙명여대 합격생과 변희수 하사에게도 같은 의심이 반복됐다. 임 후보는 이렇게 반문했다. "저희는 성해방의 최전선에 있어요. 우리의 존재 자체가 '탈코르셋' 아닌가요?"

두 사람은 따로 성별 정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법적인 성별은 '남성'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에 얽매이지 않고 '젠더 프리'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또 김 후보는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지만 임 후보는 그렇지 않다. 이처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나 젠더 퀴어는 그 자체로 "트랜스젠더 내에서도 다양한 정체성의 스펙트럼이 있음을 일깨워" 주는 존재다(<오롯한 당신> p.97).

"화장하는 남교사가 있다" 직장에서 마주한 차별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왼쪽), 임푸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오른쪽)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왼쪽), 임푸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오른쪽)
ⓒ 녹색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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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정체화 이후 비로소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솔직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입 모아 말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성별이분법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임 후보는 민주화운동을 하고 진보정당 시의원으로 활동했지만, 집안에선 보수적인 아버지에게 아직 치마 입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가 커밍아웃 편지를 놓고 집을 나갔을 때, 아버지는 편지를 읽지 않고 불태워버렸다. 지금은 임 후보의 정치 도전을 응원하지만, 여전히 성별정체성에 대해 터놓고 말하진 않는다. "아직 집에 치마는 못 입고 가요. 아버지가 마지막 관문인 거 같아요." (임푸른)

특히 이들은 구직활동이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선명한 차별을 마주할 때가 많았다. 임 후보는 사회복지사로 3년 일한 경험이 있었지만 재취업을 하려고 했을 때 면접 단계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그가 2급 채용에 하향 지원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짧은 머리의 남자 가발도 쓰고, 정장도 입고 갔는데 면접관에게 '되게 여성스러우시네요'라는 말을 들었어요. '여성스러운데 적응하기 어렵지 않겠냐'라는 얘기 듣기도 하고요. 또 이력서 사진만 보고 법적으로 여성으로 착각해 면접에 불렀다가 '저희는 여자만 뽑아요'라고 말하는 곳도 있었고요. '성별이분법 안 맞으면 같이 일할 수 없다'는 거나 다름없어요." (임푸른)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할 때는 화장을 하고 다녔어요. 1학기 때는 별 탈이 없었는데, 2학기 때 한 학생에게 성희롱을 당했어요. 하지만 성희롱으로 인정되지 않고, 벌점을 주는 걸로 마무리가 됐죠. 그 이후 민원 전화가 오더라고요. '남자 교사가 화장한다'고. 당시 교장선생님이 그런 민원 전화에 오히려 '그럴 수 있다, 뭐가 문제냐'고 대응해주셨지만, 나중엔 '수업 중에 화장 고쳤다'는 헛소문이 돌더라고요. 그러면서 교무부장이 '화장할 거면 사직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에 다른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가니, 이번엔 머리 스타일을 문제 삼았어요. 학생들에게 들이대던 잣대를 저에게도 똑같이 들이댄 거죠. 커밍아웃하고 제주퀴어문화축제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유명해진 후에는 면접 자체를 보러 갈 수 없었고요." (김기홍)


"학생들과 재밌게 지냈고, 인기도 좋았"지만 학교에 돌아갈 수 없었던 김 후보는, 지난 2017년부터 녹색당에 입당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 다음 해인 2018년 지방선거에선 제주도의회 녹색당 비례후보 2번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제주퀴어문화축제를 함께 기획했던 녹색당 고은영씨의 제안이었다. 당시 녹색당이 받은 정당 득표율은 4.87%. 제주도지사 후보로 나선 고은영씨의 득표율(3.53%)보다 높았다. 김 후보는 이 선거를 통해 '핑크보트(성소수자 표)'의 가능성을 봤다. 그리고 지난 2019년 3월, 녹색당 내에서 가장 처음으로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는 궁극적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성소수자 당사자가 펼치는 의정 활동을 통해 학교를 비롯한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들에게 안전하면서도 민주적인 공간으로 변화하길 바라는 바람이 담겨있다. 그래서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도 첫 유세지로 전에 근무했던 학교를 찾았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가끔 메시지 보내는 학생들이 있어요. '선생님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수업 듣고 활동하는 거 보고 바뀌었어요. 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라고. 그래서 제일 먼저 가고 싶은 유세지가 거기였어요. 거기 말고는 생각해본 곳이 없었죠." (김기홍)

학교에서의 경험처럼, 김 후보는 성소수자 국회의원 한 명이 의회에 가져올 변화가 클 거라고 말한다. "성소수자 당사자가 국회에 가면, 의원들은 혐오발언을 할 수 없을 거예요." 임 후보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변희수 하사, 숙명여대 합격생 사건이 불거진 시점에 정의당에서 성소수자 후보를 내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성소수자 위원회에서 내지 못한다면, 저라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소수자 운동도 20년 역사가 있는데, 한 번도 이 진영에서 말하는 입법 과제가 실현된 적이 없어요."

임 후보는 이번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서 1.10%(당원 0.84%, 시민 0.2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권당원들에게 받은 지지율은 청년 후보 중 다섯 번째, 전체 후보 중 25위를 기록했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지만, 결과적으로 순위가 높지 않아 처음에는 비례 순번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신장식 후보 등이 사퇴하면서 비례대표 24번에 올라섰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은 두 사람은 당을 뛰어넘어 서로를 돕고 있다. 이미 활동가로 연이 있던 둘은 지난 2019년 말 한 워크숍에서 만나 "우리 둘 다 출마하게 된다면 열심히 하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21일, 김 후보는 임 후보의 비례대표 경선 참여를 알리는 국회 기자회견 자리에서 찬조연설을 했다. 이처럼, 두 사람은 궁극적으로 '곁'을 지키기 위해 정치를 한다.

"저는 작년 10월 뇌전증 장애인이자 트랜스젠더인 한 친구의 죽음을 겪어야 했고, 그의 연인인 다른 트랜스젠더 친구의 자살 기도를 막아내며 응급실을 오가고 문병을 하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인 12월 10일, 병실에서 사망선고를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친구들의 극단적 선택을 막아내며 응급실에 몇 번이나 더 가야 했습니다.

성소수자 사회에서 자살기도, 죽음 소식은 특별한 일이 못 됩니다. 굉장히 슬프게도 잊기도 전에 또 접할 정도로 잦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주하는 장벽이 그만큼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알려지면 연대라도 할 수 있는데, 알려지지 않으면 연대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드러냅니다. 임푸른 예비후보도 그래서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대를 통해 함께 국회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2020년 2월 21일, 김기홍 후보 찬조연설 발췌)


무조건, 그리고 알아서 수술하라는 국가
 
 정의당 트랜스젠더 인권특별위원장인 임푸른 씨가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들과 함께 정의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 출마를 발표하고 있다. 맨 왼쪽은 김기홍씨.
 정의당 트랜스젠더 인권특별위원장인 임푸른 씨가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들과 함께 정의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 출마를 발표하고 있다. 맨 왼쪽은 김기홍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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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공약도 닮았다. 차별금지법 제정, 생활동반자법 제정, 성별 정정 특별법 제정 등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성별 정정 특별법 제정은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겐 그 어떤 공약보다 중요하다.

현재 한국는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위한 법률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법원이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을 뿐이다. 최근 이 예규를 개정하면서 '부모 동의서'를 받아오도록 하는 내용을 빼고 성전환 시술 의사의 소견서, 생식능력이 없다는 전문의 감정서 등을 필수 서류가 아닌 '참고 서면'으로 변경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누가 오든 (성별 정정은) 안된다'는 판사도 있습니다. 법을 근거로 성별 정정을 한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 거예요. 또 제일 큰 문제는 국가가 (성전환) 수술을 사실상 강제한다는 점입니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보통 청소년기에 자신의 정체성 깨닫는데, 호르몬 치료를 받고 수술을 하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법적 성별과 성별정체성이 다르면 구직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게 되죠. 그러면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고, 호르몬 치료와 수술을 못 하고, 성별 정정도 못하는 악순환 반복됩니다. 나이가 들어 성별 정정을 하게 돼도 문제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임푸른)


김 후보와 임 후모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 그 자체로 괴로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이를 증명하라는 사회의 강요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받는다고 말했다. "'너 어느 쪽이냐, 명확히 해라'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사실 더 크죠. 트랜지션 과정에서 끊임없이 본인의 정체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임푸른) "우리가 성별정체성 때문에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사회가 우릴 보고 혼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이름을 찾아갈 뿐이에요." (김기홍)

임 후보는 이어 "지금처럼 국가가 개인에게 (성전환) 수술을 강요하려면 당연히 수술비도 지원해야 하는데, 한국은 대부분의 의료적 수술을 다 '미용 수술'이라면서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겠다고 하는데, 당연히 트랜스젠더도 그 안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외국의 경우 의료보험 체계를 통해 의료적 트랜지션(호르몬 치료, 외과적 수술 등)을 지원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는 공공보험 체계 안에서 의료서비스와 수술을 제공하며, 가슴성형이나 제모까지 지원하는 주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2012년부터 성별정체성법을 제정해 트랜스젠더가 본인 부담금을 내지 않고 호르몬 치료, 외과적 수술 등을 받을 수 있게 했다(<오롯한 당신> p.45). 그에 비하면, 한국은 지원이 전무한 실정이다.

트랜스젠더들이 투표소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유

트랜스젠더들이 문턱을 경험하는 곳은 또 있다. 투표소다. 트랜스젠더는 선거인명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원치 않는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 때문에 최근 성소수자 차별 무지개행동(아래 무지개행동) 등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인명부 성별 표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인권위 진정을 준비하고 있다.

트랜스젠더가 피선거권자로 나설 때도 문제는 반복된다. 선관위에 후보자로 등록할 때 성별을 표기하게 돼 있는데, 김 후보와 임 후보 모두 어쩔 수 없어 법적 성별 '남성'을 기재했다. 심지어 임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도 '남성'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모두 성소수자 차별적인 법안을 바꾸려면 국회 안에서 거대 정당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무지개행동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 성소수자 10대 인권과제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지만, 미래통합당은 답변조차 보내지 않았고, 민주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트랜스젠더 인권법 제정 등과 관련해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관련 기사 : "트랜스젠더 인권법 마련할 겁니까?" 민주당의 답변은).

"'소모적' 논쟁이니 '나중에' '사회적 합의'를 하자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냥 존재하는 사람이고, 그저 살아가는 건데 왜 존재에 대한 합의를 해야 하는 거죠? 논쟁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김기홍)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합의'라는 게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하면 하는 거죠.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두고 찬반 여부 묻는 게 아니라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런데 지금 (민주당 등이) 말하는 건, 그냥 하기 싫으니 핑계를 대는 것뿐이에요." (임푸른)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왼쪽), 임푸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오른쪽)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왼쪽), 임푸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오른쪽)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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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하게 되풀이되는 '사회적 합의'라는 말을 멈추기 위해서도, 이들은 국회 입성이 절실하다. 물론 냉정하게 보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할 순 없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비례용 위성정당의 난립으로 표가 분산돼 소수정당의 선거 전망이 마냥 밝다고 할 수만은 없다.

또, 녹색당은 정치개혁연합 참여 여부를 두고 내부적으로 큰 진통을 겪은 상황을 딛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총선 레이스를 끝까지 완주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국회에 들어가게 된다면 처음으로 하고픈 일을 물었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의 첫 국회의원 당선 사례'가 될 수도 있는데, 돌아온 답변은 소박했다.

"유시민씨가 티셔츠에 백바지를 입고 본회의장 들어갔을 때 욕먹었던 게 기억나요. 저도 그냥 캐주얼하게 입고 가서, 자유롭게 의회 안을 거닐어 보고 싶어요." (김기홍)

"고 노회찬 전 의원이 '민주노동당 당사가 국회 근처였는데, 거기서 국회 안으로 들어가는 데 몇 년이 걸렸다'고 말했잖아요. '성소수자 운동 20년 하고, 드디어 우리가 국회 안에서 목소리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싶어요." (임푸른)


평범하지만, 진보적인 꿈을 꾸는 이들 덕분에 한국사회는 "혐오가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연대가 승리"하는 광경을 조금이나마 일찍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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