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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김정희 고택
 추사 김정희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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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고증학자·서예가·역사학자·금석학자이다. 조선후기 조선 최초로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예산 출신으로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완당(阮堂)·예당(禮堂)·시암(詩庵)·과노(果老)·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으로 확인된 호만 500가지가 넘는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이만큼 다양한 예명(藝名)을 가진 사람도 드물다.

그는 학문, 예술, 문학 등 다방면에서 천재성을 드러낸 사람이기도 하지만 세도정치와 당쟁의 희생양으로 약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럽고 고독한 귀양을 가고 풀려나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기도 하였다.

김정희는 타고난 총명함으로 16세때 북학파(北學派)의 일인자인 박제가(朴齊家)의 눈에 띄어 그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박제가가 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인 만큼 김정희의 학문적인 성격도 청나라의 고증학(考證學)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의 그러한 학문적 성격으로 당시까지만 해도 무학대사의 비석으로 알려졌던 북한산 비봉의 비석을 신라진흥왕 순수비로 고증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금석학파를 성립시켰다.

그의 천재성은 학문이 아닌 예술분야에서도 특출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의 추사체다. 추사체는 말년에 그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완성되었다. 타고난 천품에다가 무한한 단련을 거쳐 이룩한 고도의 이념미의 표출로서, 거기에는 일정한 법식에 구애되지 않는 법식이 있었다. 종래의 조선시대의 관파(官派) 글씨가 갖는 숙폐(宿弊)를 통감하고 그것을 배격하여 일어난 것이 이른바 추사체이다.

그리고 난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는데, '석파란'으로 유명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다. 난초를 그려 줄 때 별호를 다르게 할 때가 잦아 그의 호가 많아지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해도 될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드러냈으며, 그의 학문, 예술, 문학은 당대의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현대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될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추사 김정희의 고택은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중이다.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는 그의 고택이 있다. 중부, 영남 지역에 만들어진 소위 대갓집 형태인 ㅁ자 형의 구조로 되어 주변에 묘소들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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