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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머님"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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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신분증좀 주세요." 
"네 여기. 그런데 저는 어머님이 아닙니다만......" 

"어머님, 뭐 하시러 오셨어요?" 
"네, 팩스를 좀 보내야 해서요. 그런데 저는 어머님이 아닙니다만......" 


최근 은행과 동사무소에서 각각의 직원들과 나눈 대화다. 장소와 업무 내용은 달랐으나 한 가지 공통적인 건 그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어머님". 

나는 4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다. 물론 이 나이쯤이면 이미 결혼을 해서 자식도 여럿인 사람들도 많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도 일상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거나 관공서 등에 방문했을 때 오로지 내 나이와 그 나이쯤이면 으레 그럴 것이다 하는 추측에 따른 일방적인 호칭을 들을 때 가 잦아졌다. 

그동안 들어본 호칭으로는 "어머님"과 함께 "선생님", "여사님", "아줌마" 등이 있다.

모두 사실적인 오류가 있거나 지나치게 높이거나 낮잡아 부르는 의미와 어감이 포함돼 있어 불렸을 때 당혹감이나 불쾌감을 느꼈다.  

직접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니 예전에는 나 역시 쉬이 사용했던 호칭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무엇보다 그 호칭으로 불리는 당사자들의 입장을 살피게 되었다. 

대개 70대가 넘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당연하다 여길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불린 사람들로부터 "나 아직 할머니 아니야!", "에이, 그렇게 부르지 말어" 하는 항의를 들은 적도 여러 번. 

내가 "아가씨"로 불리다가 어느 순간 "아줌마"라고 불릴 때의 황당함과 씁쓸함 섞인 감정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남녀노소 구분 없이 각자의 이름을 부르는 외국의 문화와는 달리 주로 나이가 기준이 되는 우리말 호칭들은 의도했든 아니든 상대방에 상처를 주거나 편견과 잘못된 정보를 더하는 경우가 많다. 

"어머님"만 예로 들더라도 이 호칭에는 특정 나이 이상이면 당연히 결혼을 하고 또 아이도 있을 거라는, 있어야 '정상'이라는 선입견이 포함돼 있다. "아줌마"는 단지 중년 여성이란 의미를 넘어서 상대를 낮잡아 본다는 의식을 드러내고 싶을 때 부러 사용하기도 한다. 

격의 없이 어울리고 싶은 사람 혹은 집단에서 나만이 "선생님", "여사님" 하고 불린다면 이 또한 소외감이나 중압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은 본인 의사와 상관 없이 부모에 의해 지어진 이름도 아닌 자신들이 좋아하는 단어로써 서로를 부르기도 한다. "나무", "산책", "오리"처럼. 

호칭이란 내가 사용하는 언어인 동시에 남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고로 모든 말이 그러하듯 나는 물론 남의 마음이나 처지도 살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말이고 좋은 말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를 만나든, 상대가 어리든 늙었든 여자든 남자든 한국인이든 아니든 이렇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저, 제가 뭐라고 부르면 좋으실까요?" 

그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흐뭇하거나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중에 누구도 그냥 "아줌마라 부르세요." "할아버지라고 불러"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번에 다시 은행이나 동사무소에 가게 되면, 그리고 또 "어머님"이라고 누군가 나를 부르면 그때는 "저는 어머님이 아니고요, 모두가 사정이 다를 수 있으니 고객님 또는 민원인 분이라고 불러주시면 좋겠네요" 하고 말해야겠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체할 만한 더 나은 호칭이 없는 경우도 있으니 적절한 용어를 찾는 노력과 보다 적합한 호칭 사용의 생활화에 모두가 함께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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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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