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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에 이민한 지 십 년이다. 이민이란 내가 처한 상황보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찾겠다는 의지의 발현 중 꽤나 적극적인 형태에 속한다. 나도 인생을 걸고 적극적인 모험을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호주는 미세먼지가 없고, 인구밀도가 낮고,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평화롭게 사는 나라다. 호주 정부 역시 그런 점을 가장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팬더믹)이 된 이제, 평화의 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어디에도 안전하고 평화로운 그런 국가는 없다. 특히 호주의 사회적 인프라가 얼마나 취약하였는가를 직면하는 지금, 더이상 '평화롭다'는 미사여구는 쓸 수 없을 것 같다.

호주 의사협회가 전 국가적 폐쇄 조치를 요구하는 이유

 
호주 코로나19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병원 직원이 지난 20일 호주 애들레이드에 있는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감염증 검사를 통해 차량탑승진료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호주 코로나19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병원 직원이 지난 20일 호주 애들레이드에 있는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감염증 검사를 통해 차량탑승진료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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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1월 말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창궐하였을 때 가차없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 한 달여 후 한국과 이란까지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두 나라와 이탈리아를 여행금지 대상국에 포함시키고 해당 국가발 입국자를 막았다. 대한항공은 3월 5일 날짜로 브리즈번 운항이 중단되었다.

코로나19가 아시안 병이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이 들리기 시작할 때, 미국과 유럽에서 산발적으로 터져나오는 확진자 수는 이제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호주 역시 미국과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내국인들에게서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지역으로 감염되기 시작했다.

3월 18일 오전 9시 기준 호주 전역에 약 375명의 확진자가 나타났다. 휴지 사재기 현상은 이제 먼저 시작한 자들이 옳았다는 판명이 날 지경이 되었다. 아침마다 대형마트(Coles, Woolworth, ALDI)는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미는 카트 행렬로 장관을 이룬다.  

여전히 휴지와 파스타 선반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대형마트에서 한 사람 당 구매할 수 있는 갯수를 제한하였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재고를 찾기가 쉽지 않다.

대형마트들은 영업종료 시간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문을 닫는 것만이 공포에 가득찬 소비자의 사재기 현상을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7일 호주 의사협회는 '호주 정부는 국가적 폐쇄 조치(Lockdown)를 내려야 한다'는 사천명의 성명서를 냈다. 주요 골자는 호주 의료 시스템은 중국에 가깝기보다 이탈리아에 가까운 상태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4월 4일을 기점으로 확진자 수가 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탈리아 의사들이 언론에 호소한 내용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현재 의료용 산소호흡기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라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한다. 호주 의료 시스템이 이탈리아에 가깝다는 뜻은 여기도 다르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하여 의사 협회는 현 상황을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거칠고 극단적이지만 국가 폐쇄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한 것이다. 

호주 정부와 시민은 어떻게 소통하는가

호주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리슨 총리는 지난 3월 12일 $17.6bn(한화 13조 6천억 원) 규모의 경제 부양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확진자는 자꾸 늘어나는데 마스크 한 장 살 수 없는 형편이고(어느 약국에도 팔지 않고 그렇게 된 지 오래되었다. 어디서 공급 경로가 막힌 것인지 왜 팔지 않는 것인지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고 루머만 가득하다), 해외 여행 경험이 있거나 그런 이력이 있는 자와 밀접한 접촉을 한 사람만 바이러스 검사를 해준다.

그렇지 않고서는 본인이 의심이 된다 하더라도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지 않으므로 할 수가 없다. 드라이브스루 검사 장치가 있다고는 하는데 구글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지역에서 발생한 확진자의 감염경로 같은 것은 알 길이 없고, 사람들은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으니 그저 공포에 떨며 휴지와 파스타 통조림을 사재기 하는 중이다.

정부가 부양책으로 내놓은 패키지는 코로나19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없애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 하기에 사람들은 전혀 엉뚱한 대안을 스스로 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는 준비 되었다고 말하지만, 의사 협회는 우리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니, 시민들은 살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그렇기에 사람들은 오늘도 마트로 달려가 물건을 가득 싣고 돌아와 집밖으로 나오지 않을 궁리만 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호주 사람들에게 이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한국에 '코로나맵'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 확진자의 동선을 알려주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거였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누가 그런 것을 알려주나. 가장 답답한 것은 시민이 겪고 있는 불편함을 호소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 공무원은 민원을 해결하는 일이 업무 중 가장 큰 일이라 하는데, 이곳은 정부부처에 민원을 제기해도 그것이 공론화 되지 않고 이메일 형식으로만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가 가려져 있고 처리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국의 포털 사이트는 시끄럽고 말이 많다. 어떤 신문 기사를 읽어도 댓글에는 싸우고 욕하고 헐뜯는 소리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만큼 정보가 투명하고 언론의 자유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바이러스보다 경제공황이 더 무섭다

사실 중국발 패닉이 시작되자마자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소상공인들의 경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밤낮없이 바쁘던 중국 식당이 하루에 손님이 한 테이블도 없다고 들려왔다. 아직 호주가 여유가 있을 무렵 모리슨 총리는 제발 중국 식당에 가서 밥을 사먹으라 당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호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코로나19와 싸우는 가장 우선하는 방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업과 관공서에 국내 출장도 삼가라는 공문이 정부 부처로부터 내려오고 모든 학교, 스포츠, 공연 행사는 기약없이 취소되었다.

정부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단체 모임은 하지 않도록 적극 권한다. 정부와 기업에 의존하던 식당과 행사업체 그리고 호텔 등 서비스 업체들도 기약 없이 모든 예약이 취소되었다. 

대형마트와 약국만 바쁘다. 시민들은 월세도 내야하고 은행 대출금도 갚아야 하는데 경제가 멈췄다. 정부의 보조금이 인상되었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도산 위기를 막을 만한 액수는 아니다.

근로자들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시급이 비싼 캐주얼 직원(비정규직)들은 가장 먼저 직장을 잃었고, 정규직 근로자들 역시 근로시간이 감축되고 무급 휴가를 종용당했다. 

중소 자영업자들은 말한다. 차라리 국가가 선도해서 강제 폐쇄 조치를 하면 좋겠다고, 그래서 세금도 임대료도 모두 그대로 멈추어서 시간을 아끼면 더없이 좋겠다고 말이다. 시민들이 이렇게 아우성 치는데 그 외침이 호주 정부에 닿으려면 어떠한 경로를 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기는 아고라도 없고, 댓글 싸움도 없고, 민원창구도 없으니까.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갈까

 
 2020년 3월 13일 호주 시드니의 한 슈퍼마켓에서 화장지 선반이 비어 있다.
 2020년 3월 13일 호주 시드니의 한 슈퍼마켓에서 화장지 선반이 비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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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뉴스로 보는 코로나19를 겪는 한국의 모습은, 마치 갓 태어난 아이 같았다. 태어나 백일 동안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듯이 한국은 그렇게 변화무쌍했다. 너무나 역동적이어서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였다.

확진자 수가 잡혔다 생각할 무렵, 종교단체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대구로 모여달라'는 호소에 그 다음날 500명의 의료진이 힘을 보태는 모습을 지켜봤다. 연대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 연대하는 가운데 내가 있지 않아 쓸쓸했다.

한국인을 입국 금지하는 나라들이 늘어나 야당 의원들로부터 책임 추궁을 당하던 외교부 장관이 그런 나라는 방역 능력이 안 되어서 그렇게 한다는 소신 발언도 지금에 돌이켜 보면 옳은 말이었다.

집에 온 전기기술자가 한국은 코로나19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냐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국을 제외하고 소위 선진국이라 불린 국가들이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해서 공격적인 테스트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다. 확진자 수가 늘어나 병상이 부족한 것이 의료 붕괴가 아니다. 진짜 의료 붕괴는, 감염자가 감염된 줄 모르고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만지고, 세상을 활보하여 바이러스를 키우는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욕망이 넌지시 고개를 든다. 쉽지 않은 일이다. 먹고 산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므로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치명적 바이러스는 또 올 것이고, 그때마다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하면 그저 갑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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