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꿈틀리인생학교 4기 신현서(라온) 졸업생
 꿈틀리인생학교 4기 신현서(라온) 졸업생
ⓒ 꿈틀리인생학교

관련사진보기

  
한 달 전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바쁘게 졸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주하기 싫고 아쉬운 졸업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졸업을 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지난 일 년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게 어렵다. 그만큼 꿈틀리는 내 가슴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몸은 학교를 떠났지만, 아직 마음이 졸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들의 졸업식은 다른 졸업식에 비해 조촐했지만 가장 따뜻하게 기억에 남는다. 다른 졸업식처럼 학교가 가족들로 가득 차지도 않았고 성적이 우수한 친구들만 나와 상을 받는 광경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졸업식 당일 학교는 여느 주말처럼 학생들과 선생님들뿐이었다. '졸업이 왔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양이쌤의 애정 가득 담긴 흑백 영상과 정쌤이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1년간 느낀 점을 담은 세상에 하나뿐인 졸업장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양이쌤의 영상을 보며 지난 1년간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았다. 새삼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은 동시에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 속에 마주한 1년 전 우리들의 입학식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 그때처럼 가슴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내가 꿈틀리 인생학교에 입학한 이유
  
꿈틀리인생학교 4기 졸업식
 꿈틀리인생학교 4기 졸업식
ⓒ 꿈틀리인생학교

관련사진보기

 
아무런 목적 없이, 억지로 만들어낸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고등학교 1년 생활은 나를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게끔 했다. 부모님은 단 한 번도 공부하라고 다그친 적이 없으셨지만, 내가 나 자신을 사회가 말하는 이상적인 인생에 맞춰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꿈틀리인생학교 진학을 추천했던 엄마의 말을 거절했던 나는 1년 후 꿈틀리에 진학하게 되었다. 학교에 대해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그저 나에게서 탈출하고 싶어 바로 자기소개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자퇴서를 작성했다. 불과 이 틀만에 일어난 이 일이 지금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처음으로 내가 내 인생에서 나를 위해 한 가장 큰 결정이 바로 이 학교로 온 것 아닐까? 아무런 정보도 기대도 없이 마주했던 예비학교 한 주 동안 이 학교는 나를 사로잡았다. 무념무상. 다 같은 칠판을 바라보지도, 선후배 기 싸움에 진이 빠지지도, 경쟁하느라 눈치 보고 거짓말하지도 않는 공동체였다. 다 다른 나이에, 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서로의 얘기를 나누며 신기해하고 공감하고 같이 아파했다.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얘기를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이 친구들에게 하는 나 자신을 보며 깨달았다.

"정말 오길 잘했다."

아직 꿈틀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그냥 확신이 들었다. 지금껏 지내왔던 공동체와 달랐던 점은 내가 그 안에서 배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해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강화도 라이프, 나를 알아가는 것

학교에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 배우고 체험해보며 나는 1년 동안 내 진로를 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아직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진로를 정하려 하다니. 지금껏 일반 학교에서는 무작정 대학, 학과, 직업을 선택하고 거기에 나를 맞추려 했으니 당연히 답이 안 나왔을 것이다.

꿈틀리에 입학하고 얼마 후 나의 목표는 진로를 정하는 것이 아닌 졸업할 때 나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편하게 마음 놓고 강화도 라이프를 즐겼다. 매일 다른 기상 노래를 들으며 비몽사몽 일어나 슬리퍼를 끌고 강당으로 향했고, 선생님들이 출근하시면 달려가 전날 밤 있었던 재밌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날씨 좋은 날은 밖에서 식사합니다.
 꿈틀리인생학교에서는 날씨 좋은 날은 밖에서 식사합니다.
ⓒ 꿈틀리인생학교

관련사진보기

 
오전 동안 각자 시간을 보내다 점심을 먹으라는 방송에 냉큼 달려가 밥을 받아, 날이 좋은 날엔 나무데크에 앉아서 밥을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흘러넘치는 자유시간에 동아리도 하고 수다도 떨다가 오후 수업을 마치면 친구들이 가장 싫어하는 청소시간이 다가왔다. 지나다니면서 청소를 안 하고 꾀를 부리는 친구를 봐도 이상하게 밉지 않고 괜히 웃음이 먼저 나왔다. 저녁 모임 시간이 되면 강당으로 달려가 한 친구의 담담하고도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묵학시간(저녁 밥 먹고 오후 10시까지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기 전 라디오를 틀고, 씻을 준비를 하며 복도를 지나다니는 친구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모두 비슷한 하루를 보냈지만, 친구들의 표정이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너무너무 기분 좋은 일이 있어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누군가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양치를 했다. 조금 힘들어 보이는 친구에게 다가가 살포시 안아준 다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방 친구들과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나누며 잠이 들기도 했다.
  
이런 일상을 반복하다 가끔 영화를 보러 영화관도 가고 논도 가고 아예 하루를 쉬는 날도 있었다. 주말이면 종일 뒹굴뒹굴하며 수다 떨기도 하고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가기도 하고, 전국 곳곳에 위치한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서 못다 한 속 얘기도 나눴다.

29명과 24시간 1년을 지낸다는 것
  
사회참여미술반 '새참반'의 비건어게인 프로젝트
 사회참여미술반 "새참반"의 비건어게인 프로젝트
ⓒ 꿈틀리인생학교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24시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붙어있으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전국에서 모인 29명, 모두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라왔다.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사람을 믿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각자 마음속에 숨겨둔 아픔과 사연까지 포용하며 그 사람을 이해하는 건 너무 아팠다.

마음속엔 믿음을 빙자한 기대가 있었고 그 기대를 저버리자 편견이 자라났다. 친구들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며, 너무 자기 자신을 억압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의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이토록 아프고 어려운 일인지도 몰랐다. 모두 서로가 처음이었고 꿈틀리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1년이 후딱 지나갔고 친구들, 선생님들에게서 배운 작고 큰 가르침들을 잘 정리하여 다시 새로운 인생을 꾸려나갈 시간이 왔다. 여전히 진로를 확정 짓지 못해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1년 전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 생각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대해 많이 배웠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하고, 불안한 나의 미래를 공유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꿈틀리인생학교 졸업, 내가 결정한 것들

졸업 후 마음을 추스르며 현실로 돌아와 천천히 계획을 세워봤다. 일단 이번 해 나의 계획은 고졸 검정고시를 위해 공부를 시작하고 비건베이킹, 바리스타, 사진, 기타 등을 배우러 다닐 예정이다. 채식하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동물과 환경, 제로웨이스트 그리고 다양한 인권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나만의 가치관을 세워나가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해서 전국에 있는 꿈틀리 친구들과도 여행을 가려 한다. 나름 바쁜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그러나 비건베이킹도 등록하고 필라테스도 등록했지만, 바깥 상황 때문에 모두 취소됐다. 친구들을 보고 싶지만 약속도 다 취소했다. 강제 집순이가 되어 검정고시 공부를 하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뜨개질을 하다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물론 친구들과 연락하는 데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고 있다.

꿈을 꾸고 일어나면 그 기억이 조금씩 사라지는데, 이 기억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나에게 꿈틀리에서 1년은 너무 꿈만 같던 시간이라 그때의 기억이 사라지고 희미해질수록 사진첩을 뒤져가며 다시 확인하고, 기억한다. 이제는 꿈에서 깨어나 내가 정한 나의 삶의 속도에 맞춰 조금씩 로망을 실천해나가는 인생을 살아볼까 한다.
  
일년동안 수고하여 수확한 쌀 !!!
 일년동안 수고하여 수확한 쌀 !!!
ⓒ 꿈틀리인생학교

관련사진보기

 

꿈틀리 인생학교란?

덴마크가 국가별 행복지수 1위의 나라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제도에 있습니다. 한국형 에프터스콜레 꿈틀리 인생학교는 청소년들이 '옆을 볼 자유'를 실컷 누리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입학상담 및 학교생활 등 궁금한 것은 연락주세요.
: 032-937-7431
: https://ggumtlefterskole.blog.me/

덧붙이는 글 | 신현서(라온)은 꿈틀리인생학교 4기 졸업생입니다.


태그:#꿈틀리인생학교, #인생학교, #에프터스콜레, #강화도, #꿈틀리
댓글

삶을 숨가쁘게 달려온 청소년들에게 '옆을 볼 자유'를 주는 1년의 시간, 한국형 에프터스콜레 꿈틀리인생학교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