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면회가 안 되니 욕하는 분도 있고, 소리치는 분들도 있어요. '다들 집에 가서 자식도 보고 남편도 보는데 나는 왜 면회가 안 돼!'라고요.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그래도 고마울 뿐이에요. 병원의 규칙을 따라주시니."

군산의 한 요양병원 사회복지사의 말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발병 이후, 지역 내 요양병원들은 환자들의 면회를 금지했다. 집단감염의 위험이 높을 뿐더러 고령일수록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나 역시 5년째 지역의 중·고등학생들과 함께해온 요양병원 봉사활동을 최근 들어 못 하고 있다.

코로나19는 한 국가의 위기대처능력을 시험하는 강력한 기준이 됐다. 사회가 먼저인지, 내가 먼저인지 생각해본 적 없이 자유롭게 살았던 모든 시민들에게 사회적 연대와 결속이란 무엇인가 물었다.

밥 먹고 사람 만나는 일을 공기처럼 당연히 여겨온 개인들의 자유를 박탈했다. 그 강도와 수위는 사회적으로 취약하고 불안정한 사람들, 소위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강력했다.

소소하게 연대해 왔는데... 그들에게 닥친 도전

나는 결혼 직후, 남편이 'IMF 실업자'가 되어 군산으로의 귀향을 선택했다. 전북의 3대 주요도시이자 해양 도시로서 거하게 풍족하지도 과하게 부족하지도 않은 곳. 귀향할 당시 27만여 명이던 지역 인구는 20년이 지난 지금 26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몇 년 전 지역 경제의 중추나 다름없던 대기업들이 공장을 폐쇄하고 조선소 가동을 중단하면서 군산은 순식간에 '고용위기지역'이 됐다.

그러나 군산시민만큼은 군산을 외면하지 않았다. 소시민들은 지역의 어려움 역시 모두의 일이라며 걱정했고, 경제난 극복을 위해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소소하게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나 또한 봉사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내 지역, 내 이웃과 더불어 잘살기 위한 작은 연결이 중요함을 깨알았다. 군산에서 작은 학원을 운영하게 된 나는 사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확장해 아이들과 함께 여러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벌써 8년째,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과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여파로 사적인 활동만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지역민들의 연결 또한 제약됐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옅어졌고, 개인적 서러움과 무력감 또한 커지는 듯했다. 어렵고 힘이 들수록 사람은 만나야 길이 보이고 소통해야 길을 만들 수 있는 법인데 말이다.

어느 날 지역의 봉사단체 단장 중 한 분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내가 "다른 때 같으면 지금 연간 봉사활동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아무것도 안 하니 이상해요"라고 말하자 그분이 넌지시 제안했다.

"그럼, 내일 코로나19 차단 마스크 만드는 데 나와요. 할 일이 많아."

뉴스로만 듣던 면 마스크 만들기 운동이 바로 내 옆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니. 다음 날 바로 작업장을 찾았다.

접촉은 어렵고 봉사자는 줄고, 그러나
     
면 마스크 제작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람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서로 마주보지 않고 작업 중이다.
 면 마스크 제작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람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서로 마주보지 않고 작업 중이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면 마스크 제작 과정
 면 마스크 제작 과정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지역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 중 성인들이 선택한 것 중 하나가 재봉교육이었다. 바로 그 재봉팀과 지역의 여러 봉사단체 회원 50여 명이 모여 마스크를 만들고 있었다.

유아용과 성인용 마스크를 구별해서 만드는 제작 과정에는 적지 않은 손길이 필요했다.

가장 기초 단계인 마스크의 부분 조각을 원형에 맞춰 자르는 일을 맡았다. 이마저도 손이 느리고 익숙하지 않아서 옆 봉사자가 5개 오릴 때, 나는 겨우 1개를 마쳤다. 하루에 200여 개의 마스크를 제작해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분들에게 전달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봉사자들은 이 특별활동 외에도 상시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 중 하나가 무료급식센터 운영이었다. 노인과 취약계층을 위해 지역의 봉사단체 30여 곳이 하루에 한 끼를 책임지고 매일 급식을 만들어 함께 밥을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발생으로 급식센터 운영도 어렵게 됐다. 사람이 다수 모이는 일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봉사단체들은 곧바로 밥 대신 빵과 우유로 대체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과정에서 그마저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몇몇 수혜자들은 '이것도 중단되는 거 아닌가' 하며 불안해 하시는 눈치라고 한다.

한 봉사자는 감염병의 여파로 소외되고 고립된 곳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 오는 날 도시락을 받아가려고 긴 줄 서 있는 사람들 보면 이 상황이 원망스럽지. 게다가 자원봉사자의 활동 참여도 감염 확산으로 미진해졌지. 첩첩산중이야."

위기 때는 늘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소위 국가적 위기상황이 있을 때마다, 폭풍의 핵심에는 늘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한가운데에 '자원봉사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의료진이 부족한 대구로 달려가는 사람들. 마스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손수 제작하는 사람들. 평범하지만 담대한 사람들. 연결의 힘을 아는 사람들. 지금 코로나19 사태 속 치열한 전선에도, 바로 그들이 있다. 위기에 대처하는 그들의 행동은 따뜻하며 끈질기다.

그들은 사회의 사각지대를 그 어떤 위대한 지도자보다도 먼저 찾아낼 줄 안다. 사각지대의 모서리에 누구라도 다칠 수 있음을 알고 끊임없이 헌신한다. 오늘도 그들은 소외되고 고립된 빈틈을 채우며 함께 살아야 할 이유와 기쁨을 나누느라 바빴다.

나는 그들에게 배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곧 사람간의 단절을 의미하는 건 아님을, 안전거리를 두고도 얼마든지 나눔과 연대를 실천할 수 있음을.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주부터 다시 무료급식 현장에 나가기로 했다.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강당에서 봉사자들이 재난 취약계층에게 나눠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구호세트를 포장하고 있다(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입니다).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강당에서 봉사자들이 재난 취약계층에게 나눠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구호세트를 포장하고 있다(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입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태그:#자원봉사자, #무료급식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