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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한 달도 안 남았다. 어느 때보다 정치권 소식이 풍성할 때인데, 코로나19 뉴스로 뒤덮인 세상에 이질감이 느껴진다. 나는 다른 측면에서 불안하다. 이렇게 많은 국민이 의료적 사안에 사로잡혀있는 동안 누군가 저 위에서 '꼼수' 부려서 이상한 법을 통과시키는 건 아닐까, 나쁜 짓 한 사람이 스리슬쩍 풀려나는 건 아닐까 등, 일종의 망상에 잠기곤 한다(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망상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꼼수'의 사전적 의미는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이다. 2011~2012년, 팟캐스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나는 꼼수다>에 힘입어, '꼼수'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그 전보다 확실히 높아졌다. 당시 방송은 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법망을 피해 사리사욕을 채워갔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파헤쳐줬다.

꼼수에도 경중은 존재할 것이다. 수백억 원을 횡령한 것과, 어떤 마스크 회사에서 제품을 품절 처리한 뒤 가격 인상으로 몇천만 원을 챙긴 것은 일단 액수에서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크든 작든 꼼수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주 부지런히 법망을 피해간다는 것. 결국 불법 행위로 지칭할 만한 근거가 부족한 행동은 영원히 꼼수로만 남는다. 이렇게 성공한 꼼수의 기획자는 결국 법의 헛점을 활용해 영리하게 돈 번 사람이 된다.

당장 우리 주변에도 크고 작은 꼼수가 너무나 많아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어떤 옷 가게 사장은 카드결제가 불가능하다며 계좌이체를 종용하고, 어떤 이는 자기 마음대로 법인카드로 술을 마신 뒤 부하 직원에게 조작을 지시한다.

일간지는 항상 꼼수 현안에 대한 고발로 가득하다. 그 중 요즘 가장 이슈인 것은 '비례당 꼼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통과되자 보수정당과 여당이 차례로 '위성정당'이라고도 불리우는 비례당을 새롭게 창당한 것이다. 이 사태를 보니 갑자기 작년까지 뜨거웠던 음반 사재기 논란이 오버랩되었다.    
   
두 사안은 전혀 다른 종류 같으나 온 국민을 들썩이게 한 꼼수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전자는 다른 정당을, 후자는 다른 가수를 이기기 위한 꼼수다. 전자는 현행 법의 테두리 안에서 불법이 아니며, 후자는 불법이라 한들, 불법임을 입증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두 건 모두 분명 잘못된 행동이라는 데는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말인 즉슨, 이 두 사안은 현행 법이 지닌 구멍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는가? 법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게 제대로 된 순서일진데, 기대가 없어서일까?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상황이다. 이제 눈 앞에 떡하니 놓여져있는 꼼수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일단 우리네 인생에서 꼼수 자체를 배제하기가 힘들다면, 꼼수의 경중을 주체에 따라 크게 두 갈래로 나누면 좋겠다. 일단 조직적인 것인지, 개인적인 것인지가 중요하다. 조직적인 꼼수는 무조건 철저한 계획 하에 수행되며, 꼼수를 통해 얻는 이득도 한 개인보다는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주체가 공인인지 아닌지 봐야 한다. 누구를 공인으로 정의내리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나는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을 대표해 일하는 사람을 공인으로 본다. (꼼수로 인해 챙긴 이득이 얼마나 큰가도 중요하겠으나, 이는 비례당과 음원 사재기 두 꼼수 사례에서 아직 명확히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잠시 논외로 한다.)

이 기준에서만 본다면 비례당 꼼수는 아주 악질이며, 음원 사재기는 주체가 공인은 아니란 측면에서그보다는 살짝 약한 강도의 꼼수로 판단된다. 그런데 체감상 국민은 비례당 꼼수보다 음원사재기 꼼수에 더 예민했던 것 같다. 이미 비례당 꼼수에 대한 심판은 이래저래 물 건너갔고, 그새 보수 정당과 그 비례당 사이 또 다른 갈등이 빚어지며 국민은 이를 '팝콘각'으로 지켜볼 뿐이다. '배신당한' 군소정당만이 외롭게 원칙을 부르짖다 외면당했다. 

오랜만에 누군가의 비웃음이 들리는 것만 같다. "그렇게 원칙대로만 살다가 손해보는 거다",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다"... 

어딜 가도 "법 없이도 살겠다"는 말을 들어오신 내 아버지에게 가족들이 장난 삼아 하던 말들이다. 평생을 소시민으로 묵묵하게, 꼼수 같은 건 꿈도 안 꾸고 개미처럼 살아오신 그 인생에 적어도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은데, 이미 세상은 원칙의 편이 아닌 것도 같아 씁쓸하다. 꼼수와 꼼수의 대결에 원칙이 설 자리는 존재할 것인가.

태그:#꼼수정당, #4.15총선, #비례정당, #연동형비례대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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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만들기와 글 쓰기를 좋아하는 여행 가이드. 포토그래퍼 남편과 함께 온 세계를 다니며 사진 찍고, 음악 만들고, 글 써서 먹고 사는 게 평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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