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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중국 상하이에서 근무 중이다. 우한에서 신종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그는 춘절 연휴를 이용해 집에 돌아와 있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상황을 지켜봤다.

1월 20일, 국내에서 첫 환자가 발생했을 즈음, 이미 한국에 왔기에 바이러스와 무관했지만 유치원에서는 아이를 등원시키지 말아달라고 했다. 당황했지만 납득이 갔다. 아파트 입주지원센터에도 사전신고를 해 두었다. 남편은 자발적으로 외출 자제에 들어갔다.

마스크 찾아 헤맨 한 달 반
 
재택 날 처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마스크 구매 대기자 줄에 합류했습니다. 언론보도가 실감나는 하루였어요. 난리통을 겪었지만 1시간여를 기다려 사무실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금스크 2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 1시간째 늘어선 줄 재택 날 처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마스크 구매 대기자 줄에 합류했습니다. 언론보도가 실감나는 하루였어요. 난리통을 겪었지만 1시간여를 기다려 사무실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금스크 2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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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은 가족 내부에서 시작됐다. 시어머니가 극심한 불안에 사로잡힌 것이다. 업무 중 수시로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 구매 여부를 묻고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셨다.

일하는 도중 걸려오는 전화가 부담스러웠지만 '나중에 통화하자'라고 끊고 나면 혼자 TV와 마주하며 마음을 졸이고 있을 노인의 뒷모습이 아른거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렵게 주문에 성공한 마스크는 남편이 떠나기 전날까지 오지 않았다. 양가 가족이 어렵사리 구한 마스크를 모두 모아 남편을 보냈다.

상품 준비 중이라고 떠 있는 마스크 주문을 취소해 버렸다. 30만 원 상당이었다. 지난 4월 상하이 미세먼지가 걱정되어 샀던 N95 마스크 50장의 가격은 쿠폰 할인 받아 약 2만 원 정도였다. '금스크'라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

그 주가 끝나갈 무렵, 대구·경북지역을 시작으로 내가 사는 부산에서도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재난문자의 진동음도 잦아졌다. 수시로 울려대는 경보음과 하루 종일 틀어놓은 TV 속 상황은 불안도가 높은 시어머니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외출도 못 하고 홀로 있는 시어머니는 한국의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상하이의 아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전화의 빈도와 함께 나의 스트레스도 늘어갔다. 마스크 구매의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출퇴근 시 쓸 것도 떨어졌다.

인터넷 구매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일부 업체들이 합리적 가격에 게릴라 판매를 한다기에 알림신청을 해 두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어린 아이와 씨름해야 하는 워킹맘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아무리 시도해도 마스크를 사기는 어려웠다.

재택을 하게 된 날, 아이 손을 잡고 약국으로 갔다. 고민하다가 약국에 들어가 물어봤다. 총 250매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수를 세어보니 110번째쯤 될 것 같아 대기자 줄에 합류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야 250개 중 50개는 소형이었음을 알게 됐다.

적은 인원, 배송물량이 수시로 변하는데 따른 약국 측의 오류였다. 오래 줄을 선 사람들 중 일부는 화를 냈다. 구매자 이력을 시스템에 입력하고 마스크를 주느라 눈 코 뜰 새 없었던 약사에게 험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리 통에 줄은 엉망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새치기를 했다.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사람은 신분증 하나에 2매밖에 판매가 안 된다는 약사의 말에도 "이 놈의 정부는 아이 많이 낳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혜택은 안 주고 말이야" 소리를 지르고 거칠게 마스크를 낚아채 가 버렸다. 인심좋게 비타민을 몇 알 챙겨 주시던 약사 선생님이 봉변을 당하는 모습을 일곱살 아이도 함께 봤다. 아이는 얼어붙었다. 약사는 지친 눈으로 희미하게 웃으며 아이를 향해 작게 말했다.

"OO이 왔구나?"

귀한 마스크를 건네 받으며 '수고가 많다, 힘내시라'는 말과 함께 왼손으로 파이팅을 하고 서로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나왔다. 다음에 가 보니 추가 인원을 투입해 입고 현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종류별로 갯수를 미리 공지하는 표시를 해두었다. 
 
한바탕 난리를 겪은 약국에서 미리 재고파악을 해서 종류별로 구매가능 매수를 구분해 놓았습니다. 여러 변수를 겪으며 판매자도 구매자도 조금씩 적응해 가며 협력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 개선된 판매방식 한바탕 난리를 겪은 약국에서 미리 재고파악을 해서 종류별로 구매가능 매수를 구분해 놓았습니다. 여러 변수를 겪으며 판매자도 구매자도 조금씩 적응해 가며 협력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 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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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3일은 쓰는 덴탈마스크 한 장에 의지해 매일 아침저녁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할 수 있는 일에 쏟아보기로 했다. 개인위생에 힘쓰고 불안해 하는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드렸다.

고립되어 있는 대구 이모님을 비롯한 지인의 안부를 종종 물었고 대구시민들과 의료진,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주었다. 연락이 뜸하던 친척, 친구들과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조금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정부 대책을 응원할 수 있었다.

공적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면서 회사 앞 약국에서 아이와 나의 마스크를 2매씩 총 4매를 살 수 있었다. 여전히 줄을 선다. 원하는 모델을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비싼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었던 마스크를 괜찮은 가격에 2장이나 살 수 있게 된 것은 대단한 변화였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왜 쓸데없이 사람들 줄을 세우냐고 불만이셨다.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의견은 달라진다.

어느 선진 국가에서도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는 없다. 5부제 시행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아직 보완할 점이 많다. 하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웠던 마스크를 이제는 줄을 서면 살 수도 있게 되었다.

서버가 다운되기도 하고, 줄서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줄에 합류하여 온갖 난리 끝에 마스크를 구매하며 느낀 분명한 한 가지는 우리는 불만에 따른 요구가 어느 정도는 반영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발달된 인터넷과 소통 문화는 인기 드라마의 결말만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각종 정부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현재 우리는 역사적으로 어느 때보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자 노력하는 정부 시스템에서 생활하고 있다.

완벽하지 않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해서 발전의 방향까지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쉽다. 그 에너지로 우리의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에 의한 유연하고 내실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같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어요
 
물싸움, 전미화 지음.
 물싸움, 전미화 지음.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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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함께 본다. 전미화 작가의 <물싸움>이라는 책이다. 잡초마저 누워 버리는 극심한 가뭄. 사람들은 저만 살겠다고 물싸움을 한다. 남의 논에 들어가는 물길을 막고 내 논에 물을 대느라 밤잠을 설친다. 

결국 동네 싸움으로까지 번진다. 그때 가장 나이 많은 농부가 한마디를 외친다. '팻물!'. 팻물은 극심한 가뭄 때, 농부끼리의 규약이다. 보와 가장 먼 논부터 물을 대 모두를 살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함께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싸우던 농부들은 힘을 합치고 당번을 정해 팻물을 행한다. 하지만 밤을 샌 당번들이 꾸벅꾸벅 조는 사이, 참지 못하고 몰래 자기 논에 물길을 대는 농부도 있다.

그림책 속 모습이 지금 우리를 보는 것 같다. 살겠다고 필요 이상의 마스크와 생필품 사재기를 하고, 고가에 팔아 수익을 남긴다. 정작 필요한 사회취약계층과 의료진은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양보 운동, 대구 경북 응원의 움직임과 자원봉사자들의 취약계층 돕기 활동 등은 이 사회가 행하는 팻물이며 코로나19의 종식이라는 가뭄의 단비가 내릴 때까지 모두를 살릴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불안과 공포, 불신만을 준 것은 아니다. 취약한 상황의 이웃, 자신의 이익 넘어 타인을 위하는 희생정신, 유연한 사회시스템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매일 아침 마스크 구매 대상자를 안내하는 문자가 울린다.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약국의 마스크 현황 정보를 포털 사이트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물론 시차도 있고 정확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밤낮으로 애썼을 수많은 이름 모를 관련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우리 모두의 합리적, 이성적인 판단과 대응으로 극복 가능할 것이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행운에 감사함과 자부심을 가져본다. 코로나19는 하나의 사건으로 지나가겠지만 이 시기를 치열하게 보낸 우리들을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역동적이고 열정적으로 민주사회의 힘을 보여준 2020년의 대한민국과 시민들의 모습을.

물싸움

전미화 (지은이), 사계절(2017)


태그:#코로나19,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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