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남자의 자격>을 연출한 신원호 PD와 < 1박2일 >의 이우정 작가가 의기투합해 드라마를 만든다고 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7>은 최종회 7.6%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응답하라> 시리즈의 위대한 서막을 알렸고 멜로에 집중한 <응답하라 1994>는 두 자리 수 시청률을 넘겼다. 이어 <응답하라1988>은 박보검, 혜리, 류준열, 라미란, 유재명 같은 스타들을 탄생시키며 19.6%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세 번에 걸쳐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시청자들은 <응답하라>의 4번째 시즌이 과연 몇 년도를 배경으로 나올지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응답하라> 시리즈 대신 2017년 교도소라는 낯선 공간을 배경으로 한 블랙 코미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하 <슬빵>)을 신작으로 선보였다. <슬빵>은 <응답하라 1998> 정도는 아니었지만 11.2%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상파 드라마들을 압도했다.

지상파를 머쓱하게 하는 성적으로 케이블 드라마의 위상을 끌어올린 신원호-이우정 콤비는 오는 12일 첫 방송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3년 만에 시청자들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7년 전 신원호-이우정 콤비의 작품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배우가 대본이 채 나오기도 전에 출연을 결정하며 신원호-이우정 콤비에 대한 깊은 믿음을 드러냈다. 여전히 대중들에게 '칠봉이'로 기억되고 있는 배우 유연석이 그 주인공이다.

10년의 무명 생활 끝에 만난 <응답하라1994>의 칠봉이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는 서브 주인공이었음에도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였다.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는 서브 주인공이었음에도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였다. ⓒ tvN 화면 캡처

 
널리 알려진 것처럼 유연석은 한국영화 최초의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통해 데뷔했다. <올드보이>에서 유지태의 아역인 어린 이우진을 연기한 유연석은 처연한 눈빛 연기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올드보이> 회상장면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독차지한 배우는 유연석이 아닌 이수아 역의 윤진서였다(유연석은 박찬욱 감독 영화로 데뷔한 김태리와 <미스터 션샤인>에서 호흡을 맞췄다).

유연석은 군복무를 마치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지만 데뷔작 <올드보이>를 넘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심야병원> <런닝, 구> <열여덟, 열아홉> 등에서 순수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지나치게 착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대중들은 유연석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유연석은 이미지를 변신해 2012년에 개봉한 두 편의 영화에서 악역 연기를 통해 관객들의 미움을 받는 쪽을 선택했다.

유연석은 2012년 봄에 개봉한 <건축학개론>에서 본인에게 호감이 있는 신입생 서연(배수지 분)에게 흑심을 품은 강남선배 재욱을 연기했다. 특히 유연석이 수지와 함께 자취방에 들어가 불이 꺼지는 장면이 나왔을 때 남성 관객들은 유연석에게 엄청난 반감을 품기도 했다. 유연석은 같은 해 겨울에 개봉한 <늑대소년>에서도 순이(박보영 분)에게 흑심을 품은 집주인 지태 역을 맡아 얄미운 연기를 하다가 늑대소년 철수(송중기 분)에게 험한 꼴을 당했다.

하지만 '나쁜 남자' 유연석에 대한 남성 대중들의 반감이 동질감과 호감으로 바뀌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13년 방송된 <응답하라 1994>에서 '코리안특급' 박찬호와 미남선수 고 조성민을 섞은 듯한 대학야구 최고의 투수 칠봉이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극 중 성나정(고아라 분)을 짝사랑하는 칠봉이의 순애보는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유연석은 남자 주인공이자 나정의 남편인 쓰레기(정우 분)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응사>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유연석은 드라마에 함께 출연했던 손호준, 바로와 함께 <꽃보다 청춘-라오스편>에 출연해 의외의 예능감을 뽐냈다. 유연석은 <응사> 이후 영화 쪽으로 눈을 돌려 <제보자>와 <상의원> <은밀한 유혹>에 잇따라 출연했다. 하지만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개봉한 세 편의 영화는 모두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10년의 무명 생활을 끝내고 스타가 된 배우의 성공스토리로는 다소 아쉬운 결과였다.

제작진과의 의리와 신뢰로 선뜻 출연 결정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비록 짝사랑만 하다 끝나지만 <미스터 션샤인>의 구동매 역시 유연석의 대표 캐릭터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비록 짝사랑만 하다 끝나지만 <미스터 션샤인>의 구동매 역시 유연석의 대표 캐릭터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 tvN 화면 캡처

 
유연석은 2015년 홍자매 작가가 집필한 제주도 배경의 드라마 <맨도롱 또똣>을 통해 지상파 드라마 주연을 맡았다. <맨도롱 또똣>은 적지 않은 열성 시청자를 거느린 작품이었지만 방영 기간 내내 한 번도 두 자리 시청률을 넘기지 못할 만큼 시청률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유연석은 <맨도롱 또똣>에서 느낀 시청률의 아쉬움을 2016년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해 날려 버렸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유연석이 연기한 일반외과 전문의 강동주는 김사부(한석규 분)와 돌담병원 식구들을 통해 의술은 물론 의사로서 가져야 할 바른 마음가짐을 배우며 인간으로서도 한층 성장한다. 특히 거산대 의대 4년 선배이자 돌담병원의 '미친 고래' 윤서정(서현진 분)과의 멜로 연기는 <응사>에서 짝사랑만 하던 아쉬움을 털어내기에 충분했다.

<김사부> 이후 한동안 활동이 뜸한 듯 했던 유연석은 2018년 김은숙 작가의 신작 <미스터 션샤인>으로 돌아왔다. 일본 사무라이 집단 무신회의 한성지부장 구동매를 연기한 유연석은 통칭 '애기씨'로 불리는 고애신(김태리 분)을 동경과 집착에 가깝게 짝사랑하는 감정을 애틋하게 표현했다. <응사>에 이어 또 한 번 여주인공과 이뤄지진 못하지만 <미스터 션샤인>은 <응사> <김사부>와 함께 유연석의 '3대 대표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미스터 션샤인> 종영 후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에 출연했던 유연석은 12일 첫 방송되는 tvN목요 스페셜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오랜만에 시청자들을 만난다. 20년 지기인 의사 5명의 우정과 병원생활을 그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유연석은 환자들에게는 한 없이 다정하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예민한 소아외과 교수 정원 역을 맡았다. <김사부>의 강동주와는 다른 매력의 의사연기가 기대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출연을 결정한 유연석은 작년 연말 양우석 감독의 신작 <정상회담: 스틸레인3>의 촬영을 마쳤다. '코로나19'라는 변수 때문에 아직 정확한 개봉시기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유연석으로서는 데뷔 후 가장 스케일이 큰 작품에 출연하는 셈이다. 하지만 자신의 커리어에 알찬 필모그라피를 채워가고 있는 유연석의 2020년 시작을 알리는 작품은 다름 아닌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될 예정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대동기 5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병원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대동기 5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병원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 <슬기로운 의사생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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