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로 여자농구 대표팀을 이끌고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는 여성 감독이 등장할 전망이다. 대한민국 농구협회는 10일 송파구 올림픽공원 협회 대회의실에서 경기력향상위원회를 열고 올해 도쿄올림픽 본선에서 대표팀을 지휘할 차기 감독 최종 후보로 전주원 코치와 정선민 전 코치 2명을 선정했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2월초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조 4개팀 중 3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무려 12년 만의 본선 진출이다. 하지만 최종 예선까지 대표팀을 지휘했던 이문규 감독의 계약기간이 만료됐고 협회가 논의 끝에 이 감독을 재신임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본선을 이끌 사령탑을 다시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6일까지 마감한 대표팀 사령탑 공개 모집 결과 전주원-정선민을 비롯하여 김태일 전 금호생명 감독, 하숙례 신한은행 코치까지 총 4명이 지원했다. 경기력향상위원회는 논의 끝에 전주원과 정선민에게 좀 더 높은 점수를 주며 최종 후보로 올려놨다.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대한농구협회에서 열린 경기력 향상위원회 면접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전주원(왼쪽), 정선민 감독 후보.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대한농구협회에서 열린 경기력 향상위원회 면접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전주원(왼쪽), 정선민 감독 후보. ⓒ 연합뉴스

 
여성 지도자 2명이 최종후보로 압축됨에 따라 두 사람 중 누가 감독이 되든 여자농구 올림픽 첫 여성 사령탑이라는 영예를 안게 된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여자골프 대표팀을 이끌었던 박세리 감독, 동계올림픽에서는 2018년 평창 대회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캐나다 출신 새러 머리 감독이 남북단일팀을 이끈 사례에 이어 역대 3번째이자, 단체 구기종목으로 국한하면 사상 최초다.

최종 후보 2인이 모두 한국 여자농구 역사에 손꼽히는 '스타 출신 지도자'라는 것도 화제를 모은다. 전주원과 정선민은 한국 여자농구의 마지막 황금기로 꼽히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이자, WKBL 신한은행 왕조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기도 했다. 전주원은 한국 여자농구 역대 최고의 가드, 정선민은 센터/파워포워드의 계보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현역 시절의 명성에만 의지한 것이 아니라 은퇴후 지도자로서도 다년간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는 평가다. 본인들이 한국 여자농구의 상징적인 인물들로서 여자농구 중흥에 대한 사명감과 공감대가 남다르다는 것도 강점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남성 스포츠계에서는 스타 출신들이 지도자로서도 활약하는 경우가 비교적 흔했다.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 허재 전 농구대표팀 감독,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성 스포츠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여자농구에서 여성 감독이 프로구단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이옥자 전 KDB 생명 감독과 유영주 BNK 감독 단 2명에 불과하다. 대표팀에서는 역시 여자농구 레전드인 정미라, 박찬숙 등 잠시 지휘봉을 잡은 일이 있으나 존스컵이나 동아시아 대회같은 친선전 성격이 더 강한 대회에서 한정된 임시 감독 성격이 짙었고, 아시안게임-올림픽같은 메이저급 대회에서는 모두 남성 감독들이 대표팀을 이끌었다.

전주원-정선민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게 된다면 그 자체로 여자농구는 물론 여성 스포츠계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이들은 누구보다 모범적인 현역 생활을 보내며 후배들의 귀감이 된 데 이어, 지도자로서도 이제껏 여자농구인들이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감독과 코치가 한 팀을 구성해 지원하도록 한 이번 공모에서 전주원 코치가 선수 시절 대표팀 룸메이트였던 이미선 삼성생명 코치와 짝을 맞췄고, 정선민 코치는 권은정 전 수원대 감독을 지명하며 코치진까지 모두 여성으로 구성됐다. 최종예선 당시 대표팀 운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각종 잡음들을 정리하고 분위기를 쇄신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권위적인 남성 감독 체제에서 종종 벌어졌던 소통의 문제를 개선하는데도 큰 영향이 있을 전망이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제성이나 인지도는 흠잡을 데 없지만 아무래도 전주원-정선민 모두 코치 경험만 있고 감독 경험이 없다는 것은 약점이 될 수 있다. 감독과 코치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서 한단계씩 올라가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하필이면 지휘봉을 잡자마자 나서야 하는 첫 데뷔 무대가 대표팀이 도전할수 있는 가장 큰 무대인 올림픽이라는 것은 분명 부담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칫 성과가 좋지 못할 경우 여성 감독의 능력이나 자질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전주원 코치의 사령탑 선임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보인다. 전주원 후보는 2011년 신한은행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2012년부터는 우리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위성우 감독을 보좌하며 우리은행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대표팀에서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6 여자농구 올림픽 최종예선, 2017년 아시아컵 등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코치 경력이나 국제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정선민 코치보다 앞선다. 여자농구 현역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위성우 감독과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며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습득했다는 것도 플러스가 될수 있는 부분이다.

협회는 이달말 이사회를 열고 전주원과 정선민 코치중 한 사람을 여자농구 올림픽대표팀 최종 사령탑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위기의 여자농구를 재건할 구원투수이자, 첫 올림픽 여성 사령탑의 영광을 거머쥘 인물이 누가 될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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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원정선민 여자농구대표팀 여성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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