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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가 보편적인 독일의 근로 방식
 재택근무가 보편적인 독일의 근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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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가 반강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 착용, 손 세정제 사용 등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통해 감염되다 보니,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방책일 것이다.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권하고 있는 이유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것도 있지만, 확진 환자 1명이 다녀가면 건물 전체를 폐쇄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택근무, 즉 홈 오피스(Home Office)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한국인의 생활패턴뿐 아니라 직장인의 근로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일할 맛 나는 대리, 재택감옥에 있는 과장, 심심한 상무'라는 글이 올라왔다. 어떻게 보면 이 한 문장이 재택근무를 통해 확인된 한국 기업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를 보여준 것이다.

전형적으로 한국 기업은 피라미드식 구조와 군대 문화가 바탕이 되어있다. 사원과 대리가 매우 많은 한국 기업의 구조상 이들은 주로 자칭 일개미로, 거의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즉 회사의 모든 데이터와 자료는 이들의 손에서부터 나온다. 상하 수직적인 한국 기업의 구조상, 직장 상사와 팀장 혹은 그 이상의 임원들은 대부분의 업무를 '보고받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본인들이 직접 문서를 만들기보다는 부하직원 혹은 부하직원의 부하직원으로부터 올라온 업무 결과를 보고 받은 후 하루를 마무리한다.

최근 블로그나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가족과 함께 저녁 있는 삶을 즐길 수 있지만, 그만큼 업무 능률을 희생해야 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재택근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 모르겠고, 언제 일을 시작해서 끝을 내야 할지 감을 못 잡겠다는 것이다. 또한 노트북을 통해 회의하는 '스카이프 미팅'에 익숙지 않은 부장들로 인해 회의가 진행되지 않고, 때로는 헤드폰을 통해 아이들 말소리가 전해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근로의 정의는 사무실에 모여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 단위의 프로젝트보다는 집단 프로젝트 중심과 공동체 방식의 업무 배분이 보편화된 것이 한국 기업들의 실상이다. 사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집에서 정말 근무하냐"는 의심부터 하기 쉽상이다. 그만큼 재택근무라는 시스템 자체가 한국 회사 문화 기준에 생소한 것은 사실이다.
  
독일은 변명을 만들지 않아도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독일의 자유로운 재택근무
 독일의 자유로운 재택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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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달리 독일은 이미 재택근무, 홈 오피스라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고 자주 홈 오피스를 한다. 왜 독일에서는 홈 오피스라는 것이 자연스럽고 자유로울까? 해답은 바로 독일 기업 근로 문화에 있다. 독일도 회사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필자가 경험한 독일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적어보자면 이렇다.

우선 독일 회사에서는 개인 업무 위주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물론 여러 사람이 한 프로젝트에 속해있지만, 그 속에서 확실한 업무 분장과 책임분배를 통해 대부분 혼자 일을 한다. 그래서 사무실에 있더라도 미팅을 제외하고는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다. 다 같이 회사 사무실에 온다고 하더라도 한국처럼 대리가 사원을 데리고 일을 하지는 않는다.

직원 구성 또한 상하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이다. 한국처럼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과 같은 직급이 있지 않고, 독일은 팀장 밑에 모두 동등한 위치의 팀원이 있다. 1년 차 된 팀원이 있기도 하고 30년 차 된 팀원이 있기도 하다. 팀장은 한국처럼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20대 직원이 팀장이 될 수도 있고, 경력 3년 차가 경력 30년 차 직원의 팀장이 될 수도 있다. 나이가 아닌 개개인의 능력과 선택에 따라 팀장이 된다. 

독일인뿐 아니라 유럽인들은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출장도 혼자 다닌다. 사실 팀원들끼리 스케줄을 공유하지 않고 크게 관심도 없다. 그래서 오늘 누가, 왜 안 나왔는지 팀장 말고는 잘 모른다.
  
이는 휴가 사용 시 팀장에게만 스케줄을 알리는 독일 문화 때문이다. 이것도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유럽의 문화가 반영된 것이며 서로 관심을 크게 가지지 않는다.
  
독일은 육아와 개인 가족의 사생활을 더 중요시하는 편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휴가를 쓰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편이고 유치원 행사가 있거나 아이 생일인 날에는 휴가를 자유롭게 쓰거나 오후 1시에 퇴근한다. 아무리 프로젝트가 긴박하게 돌아가도, 내 사생활이 더 중요하고 내 가족이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독일의 문화다.

이런 근무 문화 때문에 독일에서는 재택근무가 자유롭고 자연스럽다. 노트북만 있다면 근무지에 크게 상관없이 개인 업무를 할 수 있다. 설령 회의가 있더라도 메신저를 통해서 하거나 스카이프 미팅으로 진행하면 그만이다.

독일은 일부로 변명을 만들지 않아도 대부분의 상사가 재택근무를 허락해 준다.

"내일 택배가 오기로 해서 집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재택 근무할게요."
"와이프가 아파서 아기를 같이 봐야 하기 때문에 재택 근무할게요."
"내일 회의가 없으니 집에서 혼자 일할게요."


한국 직장인으로서 말하기 힘든 사유이지만, 독일에서는 누구 하나 눈치 보지 않고 팀장에게 통보식으로 연락한다.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상사는 팀원을 믿고 허락해준다. 팀장은 팀원이 집에서도 100% 효율성으로 일한다는 것을 신뢰하고, 팀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지 않는다.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팀워크를 쌓아나가는 것, 바로 이 점이 독일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의 이직률이 낮고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아닐까 생각된다.

만약 상사가 팀원이 재택근무를 신청해놓고 일을 안 할 거로 의심한다면 그 팀의 신뢰는 깨져버릴 것이고, 독일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이상이 생길 것이다.  

재택근무의 장점
 
워킹맘들의 걱정을 덜어줄수 있는 재택근무
 워킹맘들의 걱정을 덜어줄수 있는 재택근무
ⓒ 최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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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재택근무를 잘 활용하면 개인적으로 장점이 많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간단한 청소, 다림질 같은 소소한 집안일을 할 수 있다. 재택근무가 아니었으면 다음 날로 미룰 수도 있는 일이지만, 재택근무를 통해 금방 끝낼 수 있다.

또한 회사에 출근해야 할 경우 아침 일찍부터 출근 준비로 정신이 없다. 아이가 있는 집은 화장을 하면서 유치원에 가야 하는 아이를 깨워 옷을 입히는 일은 일상이다. 부모는 밥을 거르고 출근을 하더라도 내 아이는 꼭 밥을 먹여 학교에 보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경우 러시아워로 인한 교통 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줄어드는 시간은 적어도 30분 이상일 것이다. 하루 중 30분이라는 추가 시간은 하루를 '24시간 30분'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불가피한 재택근무이지만, 그동안 한국의 모든 직장인이 꿈꿔왔던 저녁 있는 삶이 생긴 것이다. 

재택근무가 업무 능률에 미치는 영향은 개인차가 있을 것이고, 본인이 맡은 업무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최근 한 직장인은 '상사의 메신저에 대답하느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한국 직장 상사는 부하직원의 시간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일까? 왜 한국 기업 상사는 부하 직원을 못 믿고 행동 하나하나를 매시간 체크하려고 하는 것일까?

빠르게 돌아가야 하는 한국 기업 문화 탓도 있겠으나 서로 간의 신뢰야말로 이제는 한국 기업 문화 속에 녹아 들어가야 할 때인 것 같다.

이번 계기를 통해 한국 문화에 맞게 재택근무가 변형해 나간다면, 한국 직장인들이 조금 더 만족스럽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로 문화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태그:#코로나 바이러스, #재택 근무, #홈오피스, #한국 근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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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는 딸바보 아빠입니다^^ 독일의 신기한 문화를 많이 소개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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