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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오판하게 자문한 비선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지난 한달간 정부 방역 실패의 단초를 제공한 인사들입니다. 이들이 지난 한 달 간, 방역을 인권의 관점에서 해야 한다며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무증상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함으로써 엄청난 피해를 야기하였습니다."

지난달 24일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연 대한의사협회의 입장문 중 일부다. 이날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이들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의료계의 대표인 양 정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며 "전문가 자문그룹 역시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이들에 대한 전격적인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첫 번째 요구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즉각 경질이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3일 <중앙일보>는 <의료 사회주의 김용익 사단, 이중 코로나 실세는 靑 이진석 https://news.joins.com/article/23720315>이란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는 기사에서 최 회장의 인터뷰를 기사화했다. "누가 대통령의 귀를 붙잡고 비선 역할을 했나"는 장 논설위원의 질문에 최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대통령에 직보가 가능한 인물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친하다고 들었다. 이 교수의 의견이 이 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수도 있다."

<중앙일보>와 의협 최대집 회장의 콜라보

"들었다"와 "전달됐을 수도 있다"는 '카더라 통신'과 같은 표현이 눈길을 끈다. 이어 해당 기사는 "익명을 원한 의료계 소식통"과 "또 다른 의료인"의 말을 빌려 '의료 사회주의자', '(청와대) 비선 라인'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등장시켰다. 해당 기사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략 이러했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출신이자 19대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을 지낸 김용익 이사장이 비선 실세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을 거친 의사 출신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김 이사장의 의중을 청와대에 전달한다.

같은 고대 선후배 관계인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등이 이 실장에게 자문을 하는 관계다. 그 과정에서 다른 감염병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다.'

최 회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월 말부터 '중국인 입국 금지'를 정부에 제안한 의협에 대해 정부여당이 "정치적 프레임을 걸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랬던 최 회장의 '비선 자문단' 주장이 <중앙일보>의 손길을 거치면서 '비선 실세', '의료 사회주의' 논란으로 확대된 셈이다.

기사가 논란이 된 다음날인 4일 '범학계 코로나19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관련기사: "국가재난 상황에 모든 것을 정파화... 전문가에게 모욕적" http://omn.kr/1msnn). 보건당국의 감염병 대응전략 수립을 위해 메르스 사태 이전부터 활동해 온 감염병 전문가들이 모인 대책위가 최 회장의 인터뷰를 근거 삼은 <중앙일보> 기사와 연이은 보수야당의 협공으로 인해 해체를 맞은 꼴이 됐다.

헌데, 이 <중앙일보> 기사에 분통을 터트린 이가 있었다. KBS 정연욱 기자였다. 6일 공개된 KBS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서 정 기자는 "아주 비열한 기사"라며 <중앙일보>와 장 논설위원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며 분개했다. 주말 KBS <뉴스9>의 앵커를 맡고 있는 정 기자는 왜 이 기사에 이토록 분개했을까.

독대 한 번, 전화 한 통화 없이 가능한 '비선 실세'

"이 기사는 일단 최대집 의협 회장의 인터뷰 형식을 빌렸어요. 최대집씨가 한 얘기를 담아왔는데, 이게 맞다고 칩시다. (그래도) 기사로 내려면, 당사자(이재갑 교수)한테 전화는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결과적으로 이재갑 교수랑 (기자가) 기사 쓰기 전에 통화도 안 했어요. (기사에서) 이 교수는 이렇게 해명했다, 이렇게 썼잖아요. 이건 기사가 나간 걸 보고 이재갑 교수가 그 기자한테 전화해서 따져서 수정한 거예요. 대단히 죄질이 안 좋죠."

<중앙일보> 기사가 나간 직후 이 교수를 직접 만났다는 정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기사 속 주요 '비선 실세'로 지목 당한 이재갑 교수는 바쁜 일정 속에 기사를 쓴 장 논설위원의 전화를 두어 통 받았지만 결국 실제 통화로는 이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이 교수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엔 장 논설위원이 받지 않았고, 결국 당사자의 반론이 전혀 담기지 않는 기사가 버젓이 기사화됐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관련 당사자들의 해명과 반론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지만 대부분 응답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이진석 실장과 대학 선후배 관계지만 연락을 안 한다"는 이 교수의 해명성 '워딩'도 실렸다. 정 기자의 설명에 의하면, <중앙일보>의 이러한 반론 게재 과정도 석연치 않았다. 이 교수의 경우만큼은 특히나.

"3월 3일자 지면판을 보면, 이 교수가 해명했다는 문장이 없어요. 근데 (해당 기사가 실린 <중앙일보>) 조간을 보고 이 교수가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장 논설위원한테 다시 전화해서 이러이러하다 항의를 했더니, 이 교수 말씀으로는 장 논설위원이 허허 웃기만 했대요. '그렇게 됐네요', 그러면서.

기사에서 '이(진석) 실장과 친한 게 결과적으로 비선실세'라는 근거가 익명을 원한 의료계 소식통인데, 이 교수 설명으로는 이 실장하고 메르스 때는 같이 일을 했대요. 근데 지금은 이 실장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니까, 본인은 연락을 안 했대요. 지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는 조언은커녕 대화도 한 적이 없대요. 그리고 김용익 이사장과는 지금까지 한 번도 독대를 한 적이 없대요." (정연욱 기자)


그러니까 정 기자가 전한 이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이진석 실장과 단 한 번도 연락한 적 없고, 더욱이 김용익 이사장과는 단 한 번도 독대한 적 없는 이 교수가 문재인 청와대와 방역당국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비선실세' 중 하나로 둔갑한 셈이다. 최 회장과 익명을 원한 의료계 소식통의 미확인 소문을 단정적으로 기사화한 <중앙일보>의 '정파적' 보도로 인해.

<중앙일보>의 허술함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출신인 김용익(68) 이사장은 의료계의 대표적 진보 성향의 학자다.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민주연구원 원장을 역임하고 19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을 지냈다. 참여연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활동한 그는 공공의료 확대를 주장해온 핵심 이론가로 진보 진영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

<중앙일보>가 해당 기사에서 묘사한 김 이사장의 경력이다. 전형적인 진영논리, 낙인효과가 술렁거린다. 논리는 간단했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사태 대응이 "재앙"급이고, 그 배경에 "진보 성향 학자"가 "비선 실세"로 청와대를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라는 것.

<중앙일보>는 이렇게 '감염병에 좌우가 없다'는 진실마저도 '정권 비판'을 위해 간단히 뛰어 넘어 버렸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그저 최 회장과 몇몇 '익명을 원한 의료계 소식통'의 인터뷰를 근거 삼아. 기사가 나간 직후, 이 교수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드디어 이렇게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네요. 전문가의 의견이 비선자문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비하되다니요. 죄송합니다. 비선자문은 이제 물러나겠습니다."

<중앙일보>가 이 교수와 함께 이 실장에게 자문을 많이 한다고 지목한 엄중식 가천대 교수는 같은 날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대한의사협회 감염관리분과 위원장이었던 자신이 청와대 비선 자문단으로 지목받은 것에 대해 황당함을 토로하는 글이었다.

"2017년인가부터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감염관리분과 위원장을 하다가 지난 12월부터 이재갑 교수가 자리를 이어받았고 위원으로 남은 상태에서 유행 초기 의협 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있었는데...난 도대체 정체가 뭐지...박쥐네...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내가 문제인 것이 맞네..."

이렇듯 엄중식 교수가 비꼰 <중앙일보>의 허술함은 또 있었다.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2월 2일 대통령 주재 첫 청와대 자문회의에는 백경란 감염학회 이사장,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전 감염학회 이사장) 등 A급 감염병 전문가들은 초청도 받지 못해 왕따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은 '왕따'란 표현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었다. 백 이사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 주재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 참석했고, 오 교수는 신종 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비선자문단'도, 그 반대편에서 '왕따'를 당한 전문가들도 실체나 구성 요건 자체가 불분명했던 것이다.

"어디서 주워 들은 걸 가지고 (기사를 쓰고)... 이재갑 교수를 제가 편드는 게 아니라 감염내과 교수들이 요즘 살신성인하잖아요. 자기 시간 쪼개서 환자 돌보고 언론 통해서 여러 가지 알리고 하는 분들을 가만히 앉아서 뒤통수를 쳐야 합니까? 그 의도가 도대체 뭐예요? 의료사회주의란 말부터 엮으려면 책임을 지고 취재를 해야 하잖아요, 기자가."

<중앙일보> 기사를 향해 "아주 비열한 기사", "죄질이 나쁘다"던 KBS 정연욱 기자가 분개한 이유다.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 출연도 마다않았던 감염내과 교수의 입을 틀어 막고, 청와대의 방역 대책을 '의료 사회주의'로 몰아가며, 방역당국과 협조 하에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한 대책을 세우던 대책위를 해체시킨 <중앙일보>와 의사협회.

국가 재난 상황에서도 정파적 이해를 위해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 내려 안간힘을 쓰는 이들의 '의도' 안에 과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자리하고 있긴 한 걸까.

태그:#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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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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