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 (주)시네마달

 
누구에게나 힘든 기억은 있다. 너무 큰 상처는 잊고 싶지만 잊기 힘든 고통으로 기억된다. 반백 살 동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다시 들추기 힘든 기억은 말을 통해 기록된다. 영화는 기록되지 않았던 전쟁을 겪지 않은 타국의 세대가 써 내려간 시각이다.

영화는 <반짝이는 박수소리>로 청각 장애를 가진 부모님과 자신의 일상을 담은 이길보라 감독의 5년 만의 신작으로 전편에 이어 자전적인 이야기를 한다. 이길보라 감독은 월남전 참전 군인의 손녀다. 영화의 출발은 평소 고엽제 피해로 암 투병 중에도 참전 용사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할아버지를 마주하게 되면서부터다. 베트남으로 카메라를 들고 간 4년여간의 기록이며 가족의 역사와 실제 역사의 불일치가 기폭제다.

한국과 베트남은 전쟁으로도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1955년 베트남 전쟁은 발발 후 1964년 미국이 개입하며 국제전으로 커졌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총 32만 5천여 명의 한국군이 참전했다. 한국은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6.25 전쟁 이후 나라를 재건하게 되는데, 흔히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급속한 경제 도약을 이뤘다는 말로 대변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베트남 정부는 한국과의 수출 문제로 이야기를 오히려 꺼린다. 소수의 피해자는 분명 있는데 다수의 권력이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 (주)시네마달

 
영화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 전쟁의 한국군 양민 학살을 주제로 세 명의 증언을 듣는 시간이다. 전쟁의 비주류,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사람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카메라는 맨 정신에 듣기 힘든 증언부터 각자의 방식으로 지내는 제사를 천천히 기록한다. 베트남 다낭에서 가까운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이면 제사를 지낸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가족을 위해 위령비를 세우고 50년간 제사를 지내왔던 것이다.

그날 가족을 모두 잃은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는 내가 살아갈 이유는 먼저 간 가족을 챙겨주기 위함이라며 혈혈단신이던 지난날을 회고한다. 당시 부모님의 권유로 마을을 피해 다낭으로 가 있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와 전쟁의 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다. 한국군 주도 땅에서 농사짓다가 시력을 잃은지 10년째인 응우옌 럽 아저씨는 누가 죗값을 치르겠냐며 화조차 내지 않는다. 나는 다만 젊은 세대가 듣기 원하니 이야기할 뿐이라는 자조 섞인 증언만을 내뱉을 뿐이다. 그날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딘 껌 아저씨도 있다.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사람을 죽이던 남자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생히 전한다. 이들은 보고 겪은 역사이자 생존 자체가 증거라며 힘주어 말한다.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 (주) 시네마달

 
한국군이 마을에 와서는 사람들을 한곳에 몰아 놓고 기관총으로 쏴 죽였으며 인기척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수류탄을 던져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증언이다. 잔혹한 패턴에는 한국군이 있었고 항상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했다는 것이다. 마약에 찌든 미국인과 달리 돈 많던 한국인은 라이따이한을 만들었다는 부끄러운 과거도 들춘다.

그들은 반세기가 지났지만 선명한 상처를 낸 그때를 구술로 풀어낸다. 평생 잊지 않기 위해 저 밑바닥에 꼭꼭 감추어 두었거나, 꺼내기 싫은 과거를 수만 번도 입 밖으로 내뱉었을 것이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의 가족, 친척들이 한순간에 죽었고 긴 시간이 지났어도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흔적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기억의 전쟁>은 누가 어떻게 민간인 학살을 벌였는지 잘잘못을 가리는 취지가 아니다. 참전 군인의 일부는 전쟁의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이다. 다만 전쟁 이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을 듣는 시간이다. 이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돋보인다. 흔히 공적 자료화면으로 갈음하는 역사 대신 불편한 장면들은 박물관 전시로 대체하거나, 생생한 개인의 증언으로만 구성된다.

이는 시민평화협정에서 탄씨의 말에 덧입힌 음향효과가 대표적이다. 이로써 관객도 그때 기억을 간접적으로나마 공유할 수 있다. 새로운 영화 작법이면서 각자의 전쟁 이미지로 상기해볼 수 있는 객관적인 체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호평 중학교 학생들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바로잡겠다고 다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성숙한 시민사회의식과 제대로 된 교육이 양국의 낙관적인 미래를 약속하리라 기대한다.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 (주)시네마달

 
베트남 참전 용사의 입장도 들어 볼 수 있다. 자신들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철칙으로 여겼다며 양민 학살은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당시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라를 위해 싸웠을 뿐이며 내가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상황,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벌어진 참사는 무엇으로도 대신하기 힘들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양가적인 감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일본 위안부 문제를 거론할 때와 사뭇 다른 태도다. 일본에는 피해자로서 사죄를 요구하면서 베트남에는 가해자로 사죄하지 않는 상황. 일본군 피해자로서 시위에 나선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하는 장면은 여러 질문을 던지게 한다.

단단하게 채워진 침묵의 결속은 한두 번으로 깨지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여러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잊히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 역지사지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다음 세대는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할 억이다.

영화는 2018년 4월 진행된 시민평화법을 통해 가능성에 한 발짝 다가갔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주심을 맡아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진상규명에 대한 손해배상 모의 법정이 열렸었다. 이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열린 일종의 모의재판으로 법적인 효력은 없으나 과거의 불행을 공론화하는 자리였다.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영화 <기억의 전쟁> 스틸컷 ⓒ (주)시네마달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 전쟁으로 기록되지 않았던 역사를 다룬 유일무이한 영화다. 고백하건대 베트남 전쟁에 무지했던 것을 반성한다. 영화로써 인간의 양면성과 내재된 폭력,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 돈을 던질 수 있을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잔인한 역사가 바로 전쟁인 것을.
기억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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