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테니스 1위 권순우 선수(22)가 지난 2월을 지금까지 자신의 테니스 생애에서 최고의 한 달로 만들었다. 인도 타타 오픈(2월 3일 개막)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 오픈(2월 10일), 델레이 비치 오픈(2월 17일), 멕시코 오픈(2월 24) 등 쉴새 없이 이어진 4개의 투어 대회에서 모두 8강에 진입하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권순우는 이 과정에서 '진기록 아닌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뉴욕 오픈을 시작으로 멕시코 오픈에 이르기까지 3개 대회 8강전에서 권순우를 꺾은 선수가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 마지막 대회인 멕시코 오픈 준준결승에서는 살아있는 전설, 나달 선수를 만나 나름 선전하기도 했다.
  
 권순우 선수의 최근 5년 성장세는 일본 출신 테니스 스타 니시코리의 20세 전후와 아주 흡사하다.

권순우 선수의 최근 5년 성장세는 일본 출신 테니스 스타 니시코리의 20세 전후와 아주 흡사하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권순우의 성적은 그가 획득한 랭킹 포인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권순우는 2월 한 달 총 225점을 획득했다. 이로써 그의 랭킹은 타타 오픈 개막 시점인 2월 초 세계 88위에서 멕시코 오픈이 끝난 직후인 3월 2일 69위로 뛰어올랐다.
 
20계단 가까운 랭킹 상승은 보통은 작은 투어 대회 1회 우승과 맞먹는 일이다. 실제로 가장 낮은 등급의 세계 프로테니스협회(ATP) 250대회 우승자에게 250점의 랭킹 포인트가 부여되는데, 권순우가 4개 대회에서 획득한 225점은 이와 근사한 수치인 것이다.
 
권순우는 지난 2015년 프로로 데뷔했다. 그간의 성적만 보면, 권순우는 한국 테니스계 출신 스포츠 셀럽으로 조만간 부상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 속도가 눈부시다.
  
 최근 3개 대회에서 권순우를 8강전에 꺾은 뒤 결국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선수들. 왼쪽부터 나달, 오펠카, 에드먼드.

최근 3개 대회에서 권순우를 8강전에 꺾은 뒤 결국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선수들. 왼쪽부터 나달, 오펠카, 에드먼드. ⓒ 위키미디어 커먼스

 
아시아권 남자 테니스 선수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린 바 있는 케이 니시코리(30세, 일본) 선수의 이맘때와 비교해 권순우의 성장세는 전혀 뒤지지 않는다. 올 연말까지 세계 30~50위 사이에 포진할 수 있다면,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선수임을 입증하는 하나의 증표가 될 수 있다.
 
권순우는 니시코리와 마찬가지로 만 17세에 프로로 전향했다. 니시코리 선수가 5살 때부터 테니스를 시작한 반면, 권순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라켓을 잡았다. 권순우는 중학교 때까지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반면, 니시코리는 14살 때 미국 플로리다 명문 테니스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받았다.
  
권순우와 니시코리 랭킹 변화 권순우의 최근 5년과 비슷한 나이 때 일본인 테니스 스타 니시코리의 랭킹 변화. 성장 속도와 패턴이 너무도 흡사하다.

▲ 권순우와 니시코리 랭킹 변화 권순우의 최근 5년과 비슷한 나이 때 일본인 테니스 스타 니시코리의 랭킹 변화. 성장 속도와 패턴이 너무도 흡사하다. ⓒ 김창엽

 
권순우가 늦게 입문했다는 점 등을 감안해, 권순우의 18세~22세 5년의 기록을, 니시코리의 17세~21세 5년 기록과 비교해 보자. 두 선수 모두 이 5년 중 첫해를 세계 600위 언저리에서 시작해, 두 번째 해에 300위 안팎에 이르렀고, 이후 3번째 해에 크게 순위가 상승한 뒤 4번째 해에 똑같이 하락하는 패턴을 보였다. 그리고 5번째 해에 비슷하게 100위 안에 랭크 된다.
 
두 사람은 만 8살 차이가 있다. 둘 다 태어난 달이 12월이다. 니시코리가 본격적으로 세계적 선수로 자신을 각인시킨 것은 22살 나던 해인 2012년이었다. 그해 초 니시코리는 세계 25위에 랭크됐으며,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이 시작되기 전에는 확고한 톱10 선수로 거듭난다. 올 한해가 권순우에게 더없이 중요한 시기라는 점을 니시코리의 랭킹 패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권순우가 실력으로 자신의 랭킹을 뒷받침할 수 있다면, 스포츠 셀럽이 될만한 요소를 고루 갖췄다. 기술적으로는 지켜보는 이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공격 테니스를 구사하고, 지기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기가 잘 죽지 않는 성격도 매력적이다.
 
권순우의 어릴 적 사진들 가운데는 까치 발로 서고 있는 모습이 유난히 많다. 초중등학교까지 키가 작은 편이었던 그는 작은 키가 무척이나 속상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지기 싫어하는 그에게 작은 키는 가장 커다란 콤플렉스 중 하나였다고 그의 어머니는 설명한다. 또 권순우의 누나 중 한 사람은 2015년 미스코리아 경북 진에 뽑힌 적도 있는 등 가족 신상도 관심을 끌만하다.
 
권순우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현재로선 속단하기 힘들다. 부상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고, 별안간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점 가운데 하나는 많은 테니스 팬들이 원하듯, 그가 세계 30위 안에 장기간 머무를 수만 있다면 한국 테니스의 역사는 다시 써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축구, 야구, 골프, 피켜 스케이팅 등의 프로 스포츠 종목과는 달리 그간 테니스에서 걸출한 한국 출신 세계적 스타는 없었던 까닭이다. 반짝 스타가 아니라 적어도 2~3년쯤은 유지될 수 있는, 테니스계의 '코리언 센세이션'이 탄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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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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