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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에 위치한 한 패스트푸드점. 텅 비었다.
 대구 중구에 위치한 한 패스트푸드점. 텅 비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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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고예? 아이고. 하루종일 TV에서 떠들어대니 더 불안하기만 하지, 안 그렇습니꺼? 그런다고 사태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이 봐봐, 여기도 아무도 없잖습니꺼. 장사하는 사람 다 죽으라카는 거요, 뭐요?"

지난 2월 28일 저녁 8시, 대구광역시 중구 한복판에 있는 한 햄버거 가게. 습기 찬 마스크를 벗어놓고 빵을 한 입 베어무려는데 옆에 있던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스무개가 넘는 테이블은 아저씨와 내가 앉은 곳만 제외하곤 텅 비어있었다.

"도시가 완전 죽었잖아. 내 평생 이런 건 처음 봅니더."

50대쯤 돼 보이는 아저씨는 창 밖의 검은 거리를 가리키며 일어서려 했다. 금요일 밤의 번화가라고는 너무도 무기력한 그 조용한 거리.

동대구행 열차 플랫폼, 그곳엔 적막뿐
  
텅 빈 동대구역 플랫폼.
 텅 빈 동대구역 플랫폼.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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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 대구에 왔다. 코로나19 대응회의를 마친 여당 수석대변인이 "대구경북에 대한 최대한의 봉쇄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했다가 난리가 난 바로 그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늘 정신 없는 서울역도 한산하긴 했지만 동대구행 열차가 서있는 4번 플랫폼은 운영 중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적막이 흘렀다. 대합실 사람들은 나처럼 4번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는 몇 안 되는 이들을 힐끗힐끗 흘겨봤다. 대구에서 돌아온 건너편 트랙의 열차는 흰색 방호복을 입은 요원들로부터 대규모 방역 세례를 받고 있었다.

두 시간도 채 안 걸려 도착한 동대구역의 고요는 더했다. 마스크를 쓴 공무원들은 말도 없이 대구로 들어온 여행객들의 체온을 체크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역전의 택시들은 길게 줄지어 서있었다. 대구시청까지 이동하는 눅눅한 택시 안에서 기사님은 "손님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며 혀를 찼다.

250만 인구가 다 어디로 갔는지 대구의 시내는 인적이 드물었다. 평소엔 어깨가 닿을 정도로 붐빈다는 종로, 동성로, 대현지하상가 등 대구의 대표 거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문을 연 곳은 대부분 편의점이나 몇몇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이었다. 간간이 문을 연 식당들은 배달만 하지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월급을 줄 형편이 안돼 직원들을 한동안 쉬게 해 서빙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저녁 먹을 식당을 구하려 30분을 넘게 돌아다녀야 했다. 대구시청이 있는 시청 사거리에서 공평 사거리까지 걸쳐있는 서쪽 도로변 상 15개 가게 중 정상 영업을 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인적이 드문 대구 시내.
 인적이 드문 대구 시내.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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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아예 출입할 수 없게 한 건물도 있었다. 첫날 무심코 마스크를 안 끼고 밖에 나갔다가 거리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걱정스런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지금 대구에서 마스크는 자기를 위한 보호막이라기보단 상대에게 불안을 주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표식이다.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다들 어쩌다 헛기침이라도 하면 꼭 "사레가 걸려서..."란 해명들을 덧붙이고야 만다.

이제 대구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건 길고양이들 뿐이다. 마스크를 낀 시민들은 이따금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구급차가 어디서 멈춰 서나 가슴을 쓸어 내리며 쳐다본다.

25일 첫째 날만 해도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는 499명이었다. 5일이 지난 3월 1일 오늘 대구 환자만 2500명선을 넘어섰다. 전국 총 3526명 중 2569명이 대구 환자다(1일 오전 9시 기준). 햄버거집에서 만난 그 아저씨 말이 떠올랐다. "도시가 완전히 죽었다고..."

대구 구호품 기부 항목은 '매일 업데이트'
  
대구 중구에 위치한 공감 게스트하우스가 의료봉사자들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에서 구호품이 왔다.
 대구 중구에 위치한 공감 게스트하우스가 의료봉사자들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에서 구호품이 왔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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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나가고 난 다음날부터 바로 전국에서 구호품이 왔어요. 도시락에 라면에 비누, 물, 음료수, 과일, 컵밥... 여기 맥주까지 왔네요. 하하하."

3월 1일 아침. 며칠째 머물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는데 한 직원이 켜켜이 쌓인 종이 박스를 가리키며 웃었다.

대구 중구에 있는 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허영철 대표가 며칠 전부터 대구로 오는 의료 봉사자들을 위해 숙소 3동 중 2동을 무료 개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였다. 2월 28일부터 이 소식이 언론에 소개된 후 곧장 이곳 게스트하우스로 후원품이 쏟아졌다(관련 기사 : 대구 사회적기업, 코로나19 의료진에 숙소 무료 제공).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는데 볕이 따뜻했다. 이날 대구의 낮 기온은 14도까지 올랐다. 며칠간 비가 오고 궂었던 하늘에 모처럼 해가 나고 맑았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봄이 온 것 같았다.

대구는 죽지 않는다. 번드르르한 정치권이나 언론 덕은 아니다. <조선일보>는 대구시가 "'우한 폐렴'이 아니듯 '대구 폐렴'도 아니다"(2월 23일)라고 호소하는 데도 아직까지도 '우한 코로나'란 명칭을 고집하고 있다. 친여 정치 성향의 공지영 작가는 현재 대구경북이 겪고 있는 심각한 코로나19 상황을 여당이 아닌 미래통합당 쪽 지자체장과 연결 지었다가 논란을 일으켰다(관련 기사 : 공지영 "투표 잘하자" 글에 잇딴 비판... "코로나가 제물?").

대구는 죽지 않는다. 다름이 아니라 누군가 정성스레 박스 테이프로 꾹꾹 눌러 보내온 컵밥과 라면 때문이다. 위트 있게도 의료진 쉴 때 마시라고 보내온 캔맥주들 때문이다. 전국에서 휴가도 반납하고 달려온 의료 봉사자들 때문이다. 그 의료 봉사자들을 위해 당장 몇 천만원씩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무료로 방을 내주겠다는 게스트하우스 사장 때문이다.

종업원들 다 휴가 보내서 홀로 서빙 하느라 늦었다며 미안하다고, 이럴 때 다같이 힘내야 한다고 계란 '후라이' 하나 더 내주시는 어느 식당 주인의 마음씨 때문이다. 한숨 쉬며 걱정하던 그 식당 주인이 그나마 앞으로 몇 달 동안 임대료를 30%나 깎아줬다며 고마워하던 얼굴 모를 대구의 건물주 때문이다. 바로 옆 식당의 닫힌 문에 붙은 '코로나 조심하세요^^'란 작은 위로 쪽지 때문이다.

대구시 브리핑 자료에서 날마다 한 줄씩 추가되고 있는 '전국 구호품 기부 항목'란 때문이다. 또 몇 천원씩 보낸다는 이름 없는 누군가의 성금들 때문이다.

처음엔 시비를 거는 것 같았던 햄버거 가게의 그 아저씨도 대화를 마친 뒤엔 "그래도 멀리서 와서 고생이 많습니더. 고맙습니더"라고 인사를 하고 떠났다.  

3월 1일까지 대구시가 공식 발표한 후원 항목은 아래와 같다.

<2월 21일> ▲ 광주시, 전남도청 등(마스크·손소독제)

 <2월 22일> ▲ 배우 이영애(성금 5천만원) ▲ 신한금융그룹(마스크 1만개) ▲ 미르치과병원(마스크 6천개)

 <2월 23일> ▲ 배우 박서준(성금 1억원) ▲ 재해구호협회, 주식회사 시대, 구비테크, 더심플마켓, 글로제닉 등(마스크·손 소독제·향균 스프레이)

 <2월 24일> ▲ 이랜드 그룹(성금 10억원) ▲ 강원도청, 주한유럽상공회의소 등(마스크·보호복·손소독제·살균제·성금 등)

 <2월 25일> ▲ 금복주(성금 10억원) ▲ DGB대구은행(성금 5억원) ▲ 울산시(성금 1억원, 검체 진단 검사 지원)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성금 6천만원) ▲ 수원시, 식품의약품안전처, 희망브리지 재해구호협회, 한국세폭, 멀티바이오, 다이소, 풀무원, ㈜유바이오메드, ㈜이마트, 브이실드, 대구텍(마스크·손소독제·향균스프레이·식료품 등)

 <2월 26일> ▲ 티웨이항공, 가수 효민, 주식회사 티앤비 등(마스크·손소독제·식료품)

 <2월 27일> ▲ 삼성, SK, LG 등(기부) ▲ 방송인 장성규, 배우 손예진, 재경대구경북시도민회, 교촌에프앤비, 대구동신교회, 대구범어교회, 포항예수성심시녀회 등(성금) ▲ CJ제일제당, 위니아딤채, 한화그룹, 제주도청 등(마스크·손소독제·생필품)

 <2월 28일> ▲ 포스코, 현대중공업, 두산, 신세계, 효성, 네이버, CJ, GS, LS, 영원무역, 크레텍, 다비치안경 등(기부) ▲ 전 야구선수 이승엽, BTS 멤버 슈가, 가수 아이유, 배우 안재욱, 천주교대구대교구, 내당교회, 사랑의쌀나누기운동본부 등(성금) ▲ 가수 백지영, 그룹 잔나비와 잔나비팬클럽, KT&G, 아워홈, SPC그룹, 심테크, 육군본부, 남해해양경찰청 등(위생용품·생필품)

 <2월 29일> ▲ 배우 윤세아, 이서진, 정해인, 남주혁과 가수 아이린, 손나은, 야구선수 황재균(성금·생활용품) ▲  대성에너지, 아진피앤피, 유한양행, 라온건설, 휠라코리아, 삼원이노텍, 호식이두마리치킨, 아델스코 컨트리클럽(성금·생활용품) ▲ 조계종 제주표선육각사 등(성금·생활용품)

 <3월 1일> ▲ 전 야구선수 양준혁, 배우 성훈(성금·생활용품) ▲ 평화그룹, ㈜대주기계, ㈜푸드웰, ㈜신원, ㈜골드클래스(성금·생활용품) ▲ 대구동신교회 등(성금·생활용품)

태그:#대구, #코로나19,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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