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꿈이 뭐니?"

요즘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질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열아홉 살인 지금까지 어른들이 자주 묻곤 한다. 어른들이 '꿈이 뭐니?'라고 묻는 건 나이에 따라 다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부터 불편한 질문이 됐다. 어렸을 때 '꿈이 뭐니?' 물어보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답하면 됐다. 반면 열아홉 살 내게 '꿈이 뭐니?'라고 물어보는 것은 '넌 어떻게 먹고살래?'다. 어떻게 먹고 살 계획인지 답해야 한다.

꿈을 물어본다지만 사실은 내가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내 꿈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돈을 벌어서 먹고살지 궁금해한다. 이것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나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어요'라는 말로 대답을 피했다.

자꾸만 먹고 살 고민을 하라고 재촉하는 어른들은 나를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졸업하면 일단 돈을 벌어야 하나 싶다가도, 아무 목적 없이 돈만 벌고 싶지는 않다.

꿈은 돈을 버는 직업을 갖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요즘 들어 나는 당장 하고 싶은 것은 없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지 조금씩 마음이 굳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뤄나갈지 고민하면서 여러 시도를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사회가 나아갈 미래를 고민해보거나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삶을 살고 싶다. 아직은 이런 삶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이렇게 살기 위해 어떤 방법이 내게 맞는지 찾아보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여러 직업도 가져보고, 활동도 하면서 내게 맞는 방식으로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게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정한다고 해도 "어떻게 먹고 살래?"라고 묻는 어른들의 물음에 답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하는 삶이 돈을 많이 버는 삶이 아니라면 더욱 답하기 힘들어진다. 지금의 나는 이 지점에 막혀있는 것 같다.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생계의 안정은 필수적이지만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기에는 시간도, 체력도 없다. 꿈이 뭔지 찾았다 해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부모님께 내 생활을 기댄 채 내 꿈의 방법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부모님께 기댈 수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에 부모님께 받은, 혹은 내가 모아둔 돈이 사라지기 전에 꿈의 방법을 찾는 동시에 나의 생계를 책임질 방법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누른다. 일종의 타임어택이다.

운이 좋다면 내가 원하는 삶과 먹고 사는 방법이 일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찾지 못한다면 "이 정도면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라며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기엔 너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억울한 것은 어릴 때 원했던 삶과 지금 원하는 삶이 다르듯 지금 내가 원하는 삶과 미래의 내가 원하는 삶도 다를 것인데 지금 모든 것을 정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이 고민 속에서 나는 '기본소득'을 알게 됐다.

기본소득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알았어요

기본소득은 나를 "어떻게 먹고 살지?"라는 매우 해결하기 힘든 고민에서 꺼내 주었다. 내 평생 동안 조건 없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돈이 보장되는 사회는 더 이상 '먹고 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이다. 기본소득은 먹고살 돈을 벌기 위해 흘려보내야 할 시간을 나에게 다시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내 인생의 자유이용권을 받은 기분이었다.

기본소득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평생 동안 나의 권리로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리니까, 혹은 나이가 많아서 받는 게 아니라 그저 '나'이기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나의 억울함도 풀어줬다. 지금 모든 것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천천히 결정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줬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지금 정한 것도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기반을 가지게 된다. 먹고 살 방법이 충분하지 않아서 안정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지금과는 다르게 가장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은 꿈을 찾는 타임어택을 끝내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꿈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줄 것이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도...?

나와 내 주변 또래들은 이제 집안 사정은 헤아릴 줄 안다. 그리고 각자 가정의 사정이 매우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어떤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줄 수 없다는 것 역시. 기본소득은 주변에 기댈 곳이 없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인생의 자유이용권이 될 것이다.

비단 청소년, 청년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포기하거나 놔버렸던 꿈들을 다시 잡을 수 있게 하지 않을까? 기본소득은 어릴 때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인생의 어느 때이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동안 꿈이 뭐냐고 묻는 어른들에게 '아직 꿈을 찾고 있어요' 같은 애매한 답을 하기보다 "제 꿈은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라고 답하고 싶다. 어른들이 물어오던 꿈이 아닌 꿈 말고, 기본소득은 나에게 진정한 의미의 '꿈'을 물어왔다. "꿈이 뭐니?"라는 물음이 그 사람 삶의 가치와 방향을 묻는 것이 되도록,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제천간디학교 학생입니다. 학교의 사회참여 과정에 따라 기본소득당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습니다.


태그:#꿈, #기본소득, #졸업, #미래, #막막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