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6 19:00최종 업데이트 20.02.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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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구시 남구 대명동 신천지 대구교회 인근에서 남구청 보건소 관계자가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대구 남구청

 
더 강하고 더 빈번해진다

'판데믹'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생태학이 관심을 가지고 수리 모델을 개발하던 것은 90년대 초중반 정도로 기억한다. 종의 이동과 관련된 모델의 후속 작업 같은 것이었다. 인간의 지역적 이동이 늘어나면서 생겨나는 부속 현상이 세계적인 전염병인 판데믹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판데믹에 대한 중요도가 더 높아졌다. 흔히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3대 위험 요소로 기후변화, 빈곤, 그리고 판데믹을 꼽는다. 2014년에 출간된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책에서는 핵 위협, 에너지 위기, 수도직하 지진 등과 함께 판데믹이 일본을 위협하는 10가지 요소의 하나로 분석되어 있다.

기후변화와 이동의 대규모 증가, 인수공통질병의 강화와 함께 판데믹 등장의 주기도 점점 더 짧아질 것이고, 그 대응도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일회성 대책이 아니라 더 강하고 더 빈번해질 판데믹에 대해서 사회가 민감도를 높이고 시스템도 정비하는 기회로 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바이러스의 성격으로만 본다면 에볼라는 실패한 바이러스로 분류된다. 숙주에 대한 공격이 너무 강해서 숙주의 이동성이 현저히 떨어져서 파괴력에 비하면 전파력이 높지 않다. 그 반대가 감기다. 감기에 걸렸다고 하던 일을 다 멈추고 죽어라고 병원에 가지는 않는다. 새로운 종이 등장할 때마다 공격력과 전파력을 새롭게 검토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양상으로만 본다면 적어도 한국에서의 코로나19는 성공한 바이러스다. 잠복기가 극단적으로 길어서 2주가 된다. 그 사이에 이동성이 극대화된다. 반면에 메르스 등 최근의 판데믹에 비하면 파괴력은 약하다. 긴장도가 덜 높다. 잠복기가 길고 초기 통증이 적을수록 바이러스의 이동성이 높아진다. 이 바이러스의 특징이 그렇다. 그래서 무서운 거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는데, 독감이 더 심하게 유행했다. 추우면 이동성이 줄어드는데, 따뜻해진 날씨로 환자 이동성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더 늘어난 것이다. 같은 이치다. 꼭 사망률이 높아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만이 무서운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를 정치의 시각으로 보는 것 같다. 정치 양극화를 통해서 많은 사건을 정치적 유불리로 판단하는 경향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고 할 사람들도 있고, 심각성을 오히려 무시하고 정부가 잘 하고 있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판데믹을 정치적인 이유로 보지는 않으려고 한다. 잘 대처하는 것이 우선이고, 점점 더 빈번해질 판데믹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과잉 대처가 낫다. 느슨하게 했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는 것보다는, 비록 불편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평을 하더라도 과잉 대처 쪽이 사태 해결에는 도움을 준다. 다른 건 몰라도 경제가 위축된다고 정부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권유했던 것은 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의 잠복기가 어느 정도 지나서 '아웃 브레이크' 발생 직전의 잠깐 있었던 휴지기에 대한 판단 오류인 것 같다.

각급 학교의 개학을 연기했다. 이제부터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같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신종 플루 때에는 타미플루가 있어서 이걸 어떻게 확보하고 어떻게 보급할 것이냐, 이게 큰 문제였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미흡한 상황에서 대응의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대구의료원에서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제적으로 제일 큰 조치는 추경일 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이게 우리가 해보지 않은 종류의 장기전이다. 자영업자가 우선적으로 문제가 되겠지만, 경제활동의 위축은 단순히 자영업자에게 머물지 않는다. 한국의 많은 중소기업들은 운전자금 자체가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강남의 아주 큰 학원들 아니라면 학교 개학 연기에 맞춰서 휴원에 들어가는데, 동네의 작은 학원들은 몇 달씩 쓸 인건비를 마련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청이나 하도급을 따라 내려가면 맨 마지막에는 프리랜서들이 있다. 1차 산업부터 3차 산업까지, 공교롭게도 때 아닌 특수를 누리게 되는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대부분 충격이 온다. 이 충격을 어떻게 완화하고 일상적인 경제적 삶의 타격을 줄일 것인가, 이게 추경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정당국이 해보지 않은 어려운 계산이다.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주로 긴급 융자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했다. 그런데 판데믹 같은 장기적 사건의 경우에는 융자로 잠깐 버틴다고 되지 않을 사람들이 많다. 기간 중 경제적 손실분에 대해서 어떻게 지원금을 줄 수 있는가,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가, 이런 작지만 어려운 계산 앞에 있다. 이걸 잘 해야 재정당국이 판데믹에 잘 대처했다고 할 수 있다.

돈도 돈이지만 제도의 탄력성도 이번 기회에 높여야 할 것 같다. 한국은 많은 경우 연간 단위로 돌아간다. 그렇게 연간 단위로 미리 잡힌 행사 같은 것들이 취소된다. 기존의 틀로 하면 지금 생기는 많은 문제는 지난 연말에 계획을 잘못 잡은 것이다. 그러나 그걸 누가 알 수 있겠나? 급작스러운 취소와 연기, 이런 일들이 번번히 일어날 것인데, 그 때마다 실무자가 책임지는 건 좀 그렇다. 그러나 지금 제도가 그렇다. 비상 사태에 맞춰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이런 연장선에서 총선 연기에 대해서도 검토를 안 하면 안 될 것이다. 학교 개학이 지금처럼 1주 정도 늦춰지고 정상화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3월 내내 학교가 개학을 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수업일수 맞추는 정도가 아니라 좀 더 큰 사건인 집단 유급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몇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시나리오로 만들어서 검토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한·중·일 이 세 곳이 큰 문제이지만, 유럽 같은 곳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서 판데믹 대처라는 눈으로 총선 연기를 포함한 많은 제도적 적응에 대해서도 지금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기존의 제도가 잘 예비하지 못한 분야가 생겨난다. 그 때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의원 공백,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행정력 자체가 부족해서 정상적으로 선거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을 아주 배제할 수도 없다. 대통령의 결정과 국회의 특별법, 어색한 조합이지만 이보다 더 위험한 판데믹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 시나리오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정말 어려운 사람에게 더 많이

코로나19는 판데믹 초기다. 그렇지만 경제는 그 와중에도 돌아간다. '경제적 패닉'이 오지 않게 관리하는 것, 최소한의 경제적 일상을 보장하는 것, 그런 것들이 추경을 비롯한 긴급 경제대책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피해액 집계를 제일 잘 하는 대기업들만 손실 보존을 받게 된다. 좀 다르게 해야 할 것 같다.

모든 재정정책은 부수적으로 부의 재분배 효과를 발생시킨다. 경제적 일상이 고통스러워진 사람들에게 그 돈이 더 많이 가야 하지만, 행정적으로 편하게만 하면 그 반대가 된다. 추경은 더 크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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