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녕들 하신가요.

저는 대구 시민도 아니고, 가까운 지인 중에 확진자가 있지도 않아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지도 않은, 평범한 20대 대학생입니다. 저는 요즘 핸드폰을 켜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뉴스를 쓱 훑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시겠지요. 걱정이 태산인 나날입니다.

어제는 주변 약국과 편의점을 1시간 가량 돌아다니면서 마스크 구입을 시도했습니다, 이것은 평범하게 불안한 일상을 보내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자괴감의 기록
 
25일 부산 동래구 메가마트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날 메가마트는 방역 마스크 5만장이 입고돼 1인당 10장이 한정 수량으로 판매 됐다.
 25일 부산 동래구 메가마트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날 메가마트는 방역 마스크 5만장이 입고돼 1인당 10장이 한정 수량으로 판매 됐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어제는 조금 여유롭게 일어나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가까운 지하철 역 근처를 또 한 바퀴 돌았습니다. 최종적으로 제 손에 쥐어진 결과물은 KF94 마스크가 5개 들어 있는 제품 두 세트, 그리고 KF94와 KF80이 혼재된 마스크 5장였습니다. 

이것도 많이 구한 거긴 합니다. 하지만 보통 제가 들을 수 있던 얘기는 "언제 들어올지 몰라요"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번 코로나19 정국에 한 번쯤 들어봤을 그 얘기. 지하철 안에 있는 편의점에는 한 달 내내 마스크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떤 약국 앞에는 네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기에 저도 따라 섰습니다. 앞서 말한 KF94 5입짜리가 총 여섯 세트가 있었죠. 결과적으로는 네 명의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 때문에 줄을 선 것은 아니었지만, 한 명이 두 개 이상을 살 경우 나는 그냥 돌아갈 수 없는건가 불안해했습니다. 제발 한 개 이상 사지 말길. 그래놓고 저는 두 개를 집었습니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하나만 사세요'라고 하면 어쩌지 걱정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두 세트를 결제하고 나서 집에 와서야 두 세트의 가격이 5만 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 평소였다면 그 가격에 마스크를 살 일이 없었을 텐데, 모두가 아무 생각 없이 마스크를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어떤 편의점에서는 한 개 이상 팔지 않았으며, 다른 편의점은 몇 개를 집어와도 딱히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남들에게 피해를 준 게 아닌가 걱정이 되다가도, 아마 다른 사람이 남은 마스크를 다 집어 갔으면 저도 똑같이 이기적이라고 비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괴감이 드는 나날입니다.

약 1시간 동안 돌아다니면서 제가 제일 많이 본 광경은 약국에서, 혹은 편의점에서 들어가자마자 빈손으로 나온 사람들의 무리였습니다. 이게 현실이라는 게 잘 안 믿깁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들은, 잘 버텨내고 계시나요?

그래도 혐오하지 않을 수 있기를 

사회적 불신이라는 게 사실 별거 아닐지도 모릅니다. 공포 앞에 인간은 하염없이 나약하고,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뿐인데 그것이 '불신'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겠죠. 저는 사회적 재난 앞에 개인은 어쩔 수 없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공포가 내 것이 되는 순간, 이런 다짐은 별로 쓸모가 없어지더군요. 

다짐한대로 행동하기 힘든 때일수록 더 굳게 다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가 누구 탓인지, 누구 책임이 제일 큰지 따지기에 바쁜 나날입니다. 누구는 중국인을 막지 않는 정부 탓이라고 하고, 누구는 이게 다 신천지 탓이라면서 누군가에게는 관심 없을 '이단 논쟁'을 갑자기 끌어오곤 합니다. 

저는 방역 전문가가 아니라서, 누구를 막아야 하는지, 신천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전염병 앞에서는 모두가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고, 바이러스가 의도적으로 누군가는 피해가진 않는다는 것이겠죠. 최근에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신천지 신도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 침입해서 '분탕질'치는 행위가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입니다.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는데 그 공포로 남들을 골탕 먹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착잡합니다. 

저는 오늘도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과연 몇 개의 마스크를 살 수 있을까요. 부디 혐오하지 않고 우리 모두 잘 버텨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코로나19, #공포, #마스크, #전염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