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포스터

▲ ==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포스터 ⓒ Amblin Entertainment

 
1995년에 개봉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배우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로맨스 드라마이다. 2400만 달러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7150만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벌어들였다. 원작인 동명의 소설 역시 무려 37주 동안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1월 KBS에서 방영했으며 같은 해 10월과 13년 뒤인 2012년 6월에 재방영, 마침내 2017년에 이르러 재개봉까지 하였다. 더불어 지난 2018년 가을 막을 내린 동명의 뮤지컬 역시 높은 흥행을 기록했다. 불륜이라는 식상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약 25여 년의 간의 긴 시간 동안 이 작품의 우리의 곁에 남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한 남매가 변호사로부터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유품을 정리하며 어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던 중 남매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자신을 화장하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뿌려달라는 어머니의 유언. 이미 어머니의 묏자리를 봐둔 데다가, 그렇게 뜬금없는 장소에 유해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들은 남매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발끈한다. 하지만 여동생인 캐롤린이 어머니의 유품 중에서 의문의 일기장들과 함께 자신들 앞으로 남겨진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이야기는 진짜 주인공을 향해 초점을 맞춘다.

미국 아이오와의 조용한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 프란체스카 존슨. 가족이 4일의 여행을 떠난 사이 오랜만에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된 그녀는 한 남자와 만나게 된다. 바로 그녀의 집 근처였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찍으러 온 사진작가 로버트다.

가정에 메여 살며 잃어버린 꿈을 곱씹던 프란체스카와 평생을 떠돌이로 살아오던 로버트는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되고, 이윽고 둘은 짧은 시간 동안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결혼 뒤 처음으로 누군가의 아내나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오롯이 한 사람으로서 다른 이를 사랑하게 된 프란체스카. 하지만 둘에게 허락된 시간은 짧았고, 마을을 떠나야 하는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함께 가자고 애원한다. 꿈에 대한 갈망과 가족에 대한 의무감 사이, 프란체스카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어찌 보면 이 영화를 저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 영화에 등장했던 주요 장소들은 '불결한 정사의 흔적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광신도에 의해 불태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이 작품은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것일까.

 사랑이기 이전에 인생에 대하여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기로 결정한 순간 어떤 면에선…사랑이 시작된다고 믿지만, 그건 사랑이 멈추는 때이기도 해요."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중


영화는 단 나흘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자극적인 연출은 자제하고 있다. 불륜을 다루는 상업영화라면 으레 있을법한 짜릿함, 일탈, 선정성 등의 요소는 이 작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간간이 등장하는 에로틱한 대사마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느긋한 전개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연출이 가능했던 이유는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이 바로 '프란체스카의 삶' 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이용하여 주인공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혼하기 전에는 어디에 살았으며,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결혼 후에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두 사람은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 덕분에 시청자는 자연스레 로버트를 사랑하는 프란체스카에게 공감하고, 그녀의 사랑이 아닌 그녀를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보여주는 게 아닌, 그들이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담담히 풀어내는 것. 바로 이 때문에 영화는 불륜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애틋하게 느껴진다.

"내가 당신과 함께 떠난다면 불행해질 거예요. 그리고 아름다운 나흘을 평생 후회하겠죠."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중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떠나지 않는다. 프란체스카는 결국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로 하고, 로버트는 끝까지 그녀에게 선택의 주도권을 넘겨주며 그녀를 존중한다. 그리고 프란체스카는 담담히 일상을 살아나간다. 아이들을 길러 결혼시키고, 남편과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집과 가정을 돌본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그리고, 나흘의 꿈을 간직한 사람으로. 

영화는 분명 불편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불륜이라는 것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미로운 재즈와 명배우들의 연기, 애틋한 연출이 나타내고자 하는 건 비단 미화만이 아니다. 결국 가정에 남기로 한 그녀의 성숙한 선택과 대비되며, 동시에 그것을 더욱 부각한다,

그녀는 만일 이 사랑이 이뤄진다면 그 끝이 파멸임을 알고 있었다. 로버트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끝까지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나'에 대하여

영화는 기혼여성이 겪는 사회적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하고 있다. 로버트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란체스카의 대사에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고, 또한 로버트 역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영화가 개봉하고 긴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이런 주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2020년의 대한민국에 와서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아이오와의 프란체스카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25년 전의 현실과 지금의 현실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나아가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을 미담으로 만드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불륜 로맨스라 치부할 수도 있는 이야기. 영화는 어째서 약 25년이나 흐른 지금까지도 그런 이야기가 우리의 곁에 남아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관람하며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조금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청소년기자단에서 자체적으로 만드는 신문인 무구유언 12월 호에 실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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