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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초 시위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진압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사복체포조. 일명 백골단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종 집회와 시위현장에서 백골단은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였다. 
진압이라는 미명아래 남녀노소 가릴것없이 무차별적으로 휘둘러지는 그들의 엄청난 폭력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컴퓨터에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던 90년대초 시위진압을 하는 경찰 사복체포조, 일명 백골단 모습의 사진을 보면서 이명박정부 출범이후 그들의 모습을 다시금 시위현장에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멈추는듯 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종 집회와 시위현장에서 백골단은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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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0년 11월 11일 고려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일어났다고 난 기억한다. '기억한다'고 한 이유는 내가 겪고도 '일어났다'고 단정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적인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그 일에 관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친구들의 증언을 들었다. 확실한 것은 두 가지다. ▲ 11월에 민중대회가 고려대학교에서 열렸다 ▲ 대강당, 학생회관, 경영대, 법대 후문에서 대회를 진압하려는 경찰과 이를 저지하려는 학생들 사이에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가는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불확실한 것은 그 해가 1989년인지 1990년인지다. 내가 2학년 때인 1990년으로 알고 있으나 1989년일 수도 있다.

나의 스무 살(그때 내가 2학년이었다면 '나의 만으로 스무 살') 그때 그 사건이다. 
  
대운동장에서 마주한 백골단
  
그날 나는 문과대 사수대(쇠파이프, 돌, 화염병으로 진압경찰에 맞서는 조직)의 일원으로 대운동장에 배치됐다(참고로 지금은 대운동장 자리가 중앙광장으로 바뀌었다). 경찰이 민중대회를 불법집회라며 강제해산하겠다고 했으니 진압하러 들어오는 길목에서 경찰을 막아야 했다. 경찰이 교내로 들어오는 길은 학교 정문과 법대 후문이었다. 내가 속한 문과대 사수대는 학교 정문으로 들어오는 경찰을 제지하는 역할이었다.

20여 명쯤 되는 사수대 틈에 끼어 대운동장에 도착했는데 벌써 전경과 백골단(사복체포조)이 대열에 맞춰 대운동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참고로 전경은 전투경찰을 줄여 쓴 말로, 군에 입대했다가 차출되었기에 군복을 입었다. 백골단은 하얀 헬멧에 청남방과 청바지, 운동화를 착용한 경찰이다. 하얀 헬멧에 방독면을 쓰면 해골처럼 보여 백골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은 시위대를 체포하는 것이 임무이다 보니 날쌔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전경과 달리 차림이 가벼웠다. 붙잡히면 뼈도 못 추릴 정도로 맞기 때문에 이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문과대 사수대와 백골단(줄 맨 앞에는 백골단이 그 뒤로 전경이 도열해 있었다)은 50m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마주했다. 학생 중에서도 혈기 왕성하고 자라나는 새싹인 2학년이다 보니 대열 맨 앞에 서 있었는데, 바로 눈앞에 백골단 여러 명이 서 있는 걸 보자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렸다.

사수대장이 동요하는 나 같은 애를 봤는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구호를 따라 외쳤지만 진정이 되지 않았다. 10분여간 투쟁가도 부르고 구호도 외쳤지만, 백골단은 그런 우리를 아무 표정 없이 보고만 있었다(그게 더 무서웠다).

그때 백골단 내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뭐라고 하자 경찰들이 그 자리에 앉았다.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기로 한 모양이었다. 경찰은 앉아있고 우리는 서 있는 채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사수대장 말로는 법대 후문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했다. 경찰이 진압 시점을 놓고 고심하는 모양이었다. 사수대장은 우리도 앉아서 기다리자고 했다. 넓은 대운동장 한가운데에서 학생과 경찰이 그렇게 마주 앉았다.

먼저 손 내민 백골단 대장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때 갑자기 아까 그 대장 같은 백골단이 일어나더니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뭐야, 쟤 왜 저래'하고 긴장하고 있는데 그가 우리 사수대장에게 오더니 '담배 있느냐'고 물었다. 사수대장이 피식 웃더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백골대장(대장 같은 백골단이라 쓰기가 너무 길어서)은 그 자리에 서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우리 사수대장도 담배 한 대 꺼내 피워 물었다. 백골대장은 자리로 돌아가 다시 앉았다. 잠시 후 그가 우리 쪽을 보고 말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는 성북경찰서 소속이다. 고려대 데모는 주로 우리가 진압한다. 그동안 얼굴도 모르고 서로 싸웠는데 잠깐이지만 서로 인사라도 하자. 그런 뜻에서 우리가 먼저 노래 한 곡 하겠다."

내 귀를 의심했다. 백골단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다니. 이어서 나온 그들의 노래는 더 놀라웠다.

"나가자 개떼같이 성북 건아여, 장안을 뒤흔드는 젊은 호랑이."

성북경찰서 경찰들이 고대 응원가의 가사를 살짝 바꿔 '성북 ○○중대가'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환호했다. 백골단도 신이 났는지 더 크게 불렀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사수대장이 말했다.

"이번엔 우리가 답가를 하겠다."
  
20여 명가량 되는 문과대 사수대가 일어나 고대 응원곡 중 하나인 '엘리제를 위하여'를 춤과 함께 불렀다. 그러자 백골단 중 몇 명이 일어나 우리의 율동을 따라 했다.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우리의 춤이 끝나자 백골단장이 한 곡 더 부르겠다고 하더니 대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역시 고대 응원곡 중 하나인 '뱃노래'를 개사해 불렀다. 백골단과 함께 춤추며 놀다니 꿈만 같았다.

안녕, 다음에 봐

그때였다. 서관(문과대 건물을 서관이라 불렀다. 시계탑이 있는 고려대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쪽에서 고성이 들리더니 이내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펑'하는 사과탄(당시 경찰이 손으로 던지는 최루탄을 사과처럼 생겼다 해서 부른 이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대운동장에서 놀던 우리는 일제히 춤과 노래를 멈추고 서로 바라봤다. 이내 64연발 다탄두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같이 놀았는데 바로 싸워야 하나 망설이는 것도 잠시 백골대장이 우리 쪽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저쪽으로 간다, 나중에 또 보자."
  
백골대장을 포함한 백골단 몇 명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더니 서관 쪽으로 이동했다. 우리도 서둘러 대열을 정비해 서관으로 향했다. 같이 놀지 않았더라면 서관에서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우리도 서로 싸웠을 것이다.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경찰이 그 자리에서 싸우지 않고 자리를 피한 것 같다. 

그날로부터 10년 후인 2000년 가을 극장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봤다. 영화 속 남한군 이수혁 병장과 북한군 오경필 중사가 친하게 지내다가 살기 위해 서로 다시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문득 그때 그 백골단들이 떠올랐다. 이후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날이 생각난다.

그때 그 백골단 형님들 잘 지내시지요?

태그:#백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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