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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나블루스 부린마을에 거주하는 수하(가명)는 자신의 첫 번째 아이가 자폐성 장애를 지녔음을 알았을 때부터 슬퍼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녀는 그동안 마을에서 자폐성 아이의 존재를 쉬쉬하고 외부에 드러내지 않았던 관행을 거부했다. 자신의 아이도 다른 비장애 아이들처럼 교육을 받길 원했기에 아이의 입학을 위해 더욱 뛰어 다녔다. 어렵게 입학의 기회를 얻어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냈지만 아이는 등교 1주일 만에 학교에서 내쳐졌다. 수하는 분노하고 절망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사연을 온라인에 알리고 마을 내 장애아동의 부모들을 모아 작은 조직을 만들면서 여성 활동가가 되었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명문 '안 나자'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마리엠(가명) 역시 졸업과 동시에 엄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도 적었고 남편 역시 마리엠이 외부에서 일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남편의 폭언과 폭행으로 이혼하였지만, 2살짜리 딸과 노모를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제리코에 위치한 작은 공장에서 간신히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도시마다 설치된 이스라엘의 검문소와 일상적 통제정책으로 매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섰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공장마저 문을 닫자 지금은 난민캠프에서 아이들의 사연을 번역해 외국에 알리는 업무를 하며 캠프내 작은 조직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수년 동안 팔레스타인 현지를 방문하며 지역에 필요한 연대활동을 조사한 사단법인 '아디'는 2019년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와 라말라의 여성단체와 여성 활동가들을 만나며 현지수요조사를 수행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수하와 마리엠의 사연들과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조사과정을 통해 아디는 그들의 '피해자성'을 확인하기보다는 '저항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감히 이야기하건데 그들은 금전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본인들 스스로가 외부의 지원을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가부장적 문화가 주는 여성폭력적 억압과 이스라엘 식민 점령정책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그들 스스로의 자립과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향한 희망과 의지를 계속 피력했다.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 여성의 존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거나 종교적 이미지가 강하게 투영된 하나의 집단화된 존재로 인식된다. 한 번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진 않았지만 누구나 이슬람여성의 억압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녀들은 이스라엘의 점령정책때문에 병원에 가지도 못한 채 앰뷸런스에서 아이를 사산하는 일상을 겪으면서도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미명하에 온갖 폭력에 노출된 중층의 억압적 구조 속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그 상황을 뚫고 나오는 여성들의 목소리조차 지리적 거리와 사회문화적 편견 때문에 오롯이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아디는 1년 동안의 현지조사를 통해 그녀들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그리고 2020년부터 바보의나눔이라는 민간재단의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에 여성지원센터 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은 팔레스타인 여성이 겪는 점령 폭력(ORV, Occupation related violence)과 젠더 폭력(GBV, Gender based violence)에 대항하고 피해생존자를 지원하는 현지자원을 개발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앞서 언급한 수많은 수하와 마리엠과 같은 여성 활동가들에게 자립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교육과 실습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한다. 나아가 여성 활동가들의 성장을 통해 그 지역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사업의 목표이다.

현지 활동가들과 사업을 논의하면서 한 현지 여성 활동가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했다. "왜 팔레스타인이에요?" 순간 머릿속 여러 생각들이 스치며 어리버리 대답했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아디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마도 이 사업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지 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지는 아직 장담할 순 없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인권연대 웹진 <목에가시>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이동화님은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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