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체 상영관의 97%를 차지하고 있는 3대 대기업 극장체인

국내 전체 상영관의 97%를 차지하고 있는 3대 대기업 극장체인 ⓒ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 스크린독과점에 대한 개선 요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총선을 앞두고 국내 반독과점 진영이 상영과 배급 '겸업 금지'에서 '겸업 제한'으로 방향을 일부 바꾸었다. 
 
영화계는 이를 바탕으로 21대 국회에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에 나서기 위해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20대 국회에 계류된 영비법 개정안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오는 4월 총선을 통해 구성되는 21대 국회에서 어떻게든 규제방안이 만들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장호, 정지영, 박광수, 정윤철 감독과 이용관 부산영화제 이사장, 이준동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신철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 문성근, 정우성 배우,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대표, 주진숙 한국영상자료원장 등 영화인들은 17일 "'97% 독과점의 장벽'을 넘어 모두에게 유익한 영화생태계를 창조하는데 우리 모두 '함께' 나가고자 한다"며 '겸업 제한' 내용을 담은 '(가칭)포스트 봉준호법'을 제안했다. 
 
영화계가 기존에 주장해 오던 '겸업 금지'에서 '겸업 제한'으로 전환한 이유는 입법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난색을 표하는 방법 대신 현실적인 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영화계는 상영과 배급의 분리를 통한 겸업 금지를 주장해 왔으나, 정치권은 이미 이를 허용하고 있는 다른 산업과 비교하며 부정적 반응을 나타내왔다.
 
영화계가 기존 방향을 수정해 내놓은 겸업 제한은, 3개 극장 체인이 97%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극장의 점유율을 일정 부분 제한하자는 것이다. 현재 극장과 배급사의 관계에선 극장이 우위를 보이고 있는데, 겸업 제한을 실행하게 되면 양측 관계를 대등하게 바꿀 수 있을 거란 판단이다. 

영화산업을 수직계열화하고 있는 대기업의 경우 극장의 이익이 배급보다 더 좋은 탓에 극장의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배급의 경우 대기업 배급사들의 점유율이 극장 점유율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배급사는 제작 투자를 하고 극장 개봉을 통해 수익을 내서 새로운 영화에 재투자한다. 하지만 극장이 우위에 있는 구조 때문에, 일부 극장에서 무료 초대권을 남발하고 또 광고 홍보비를 배급사에 떠넘기는 등 부적절한 사례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을 나누는 부율도 한국영화의 경우 극장과 배급사가 5대 5고, 해외영화는 4대 6이다. 한국영화만 배급사의 몫이 상대적으로 적어 형평성 논란이 있다. 일부 극장의 경우 5.5대 4.5로 조정이 이뤄지기는 했으나 소수다.

한국영화 배급사들의 수익을 늘리기 위해선 극장과 부율을 조정해야 하는데, 대기업 배급사들은 이에 소극적이다. 배급사 이익을 늘리면 상대적으로 극장 이익이 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장의 점유율을 제한할 경우 다양한 극장 체인이 생겨날 수 있고 이로인해 대기업 수직계열화의 폐해를 일정 부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크린독과점 금지하고 독립예술영화전용관 늘려야
 
 200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당시'한국경쟁' 초청작 <플란다스의 개> 상영 후 주연배우 배두나와 함께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봉준호 감독

200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당시'한국경쟁' 초청작 <플란다스의 개> 상영 후 주연배우 배두나와 함께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봉준호 감독 ⓒ 전주영화제

 
스크린 독과점 금지와 독립·예술영화 및 전용관 지원 제도화 역시 영화계가 다양성 확보를 위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봉준호가 다시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해 특정 한 영화가 최대 81%의 상영을 점유한 날 개봉작은 모두 106편이었다. 2000년에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도 만일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였다면 제작 기회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독립영화 개봉 편수는 전체 개봉 편수의 10%에 달하지만 관객점유율은 0.5%에 불과할만큼 독립영화 점유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특색있는 영화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예술영화의 경우 영화의 모태로서 한국영화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영공간 등 다각적인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
 
'(가칭)포스트 봉준호법'을 제안한 영화계 인사들은 "영비법 개정을 통해, 멀티플렉스에 독립·예술영화상영관을 지정하여 해당 상영관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인정한 독립·예술영화를 연간 영화 상영일수의 60/100 이상 상영하도록 하고, 국가는 해당 상영관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도 스크린에 걸릴 기회조차 얻기 힘든 미래의 봉준호들은 씁쓸하고 허기진 반지하를 탈출할 길이 막막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는 21일까지 영화인들의 서명을 받은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각 정당에 영비법 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봉준호의 수상으로 한국영화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영화산업구조 개선이 중요하다는 게 영화인들의 의견이다. 이하영 전 시네마서비스 이사는 "지금의 우리 영화산업은 좋은 제작사가 영화를 잘 만들어서 배급사가 돈을 벌면, 그 돈이 제작 판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그렇게 돈이 돌지 않다 보니 제작 환경은 더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라 결국 고사직전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도 19일 기자회견에서 "만일 요즘 젊은감독들이 <플란다스의 개>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투자를 받고 촬영에 들어갈 수 있는가 냉정하게 질문해 본다"며 "젊은감독들이 산업에 흡수되지 못하고 독립영화만 만드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영비법 스크린독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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