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프로야구 출범의 배경에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다. 12.12 군사 반란과 5.18 무력 진압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세력은 독재 정권 연장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3S(screen, sex, sports) 정책을 펼쳤고, 프로야구 또한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광주항쟁을 숨기기 위해 열린 1980년대 프로야구의 오랜 강자는 광주를 연고로 하는 호랑이였다.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 KBS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 KBS

  
지난 13일 방영한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편은 80·90년대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던 '해태 타이거즈'의 기억을 되새긴다. 2018년 서울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아카이브 푸티지 다큐멘터리(과거 영상을 모아 만든 다큐멘터리) <88/18>의 성공에 힘입어 작년부터 시리즈로 기획된 <모던코리아>는 80년대 학생운동, IMF, 대학입시, 삼풍백화점 붕괴 등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과거 KBS가 촬영하고 보관해둔 영상으로 되짚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모던코리아>가 다루었던 소재에 비해, 프로야구를 다룬 '왕조'는 그 무게감이 다소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애초 5.18 민주화운동과 전두환 정권과 떼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공교롭게도 80년대 프로야구를 지배한 구단은 5.18과 지역감정의 한을 품고 사는 호남 대표 해태 타이거즈였다. 

<모던코리아> '왕조'에는 과거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응용 감독과 김봉연, 김성한 이순철, 장채근과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 뿐만 아니라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했던 팬들이 출연하여 과거 타이거즈의 영광을 기억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1980년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에 참여했던 임종수가 해태 타이거즈 팬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왕조'에서는 임종수가 광주 미 문화원 방화사건 주동자 였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해태 타이거즈가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시내 곳곳에 다방이고 술집이고 '오늘 하루는 웃자' 이런 것들이 많이 붙었습니다. 다른 지역과는 다른 분위기였을 것 같아요." (임종수) 

"해태 타이거즈 우승하고 (광주에) 내려오니까 지역에서 카 퍼레이드를 해주는데 "야~ 우리가 뭐 큰 일을 하긴 했는가보다."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 KBS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 KBS



해태 타이거즈는 5.18 상처가 깊숙이 베인 광주의 자존심과도 같았다. 프로야구는 지역연고제를 기반으로 추진했는데, 대구와 부산 같은 영남 구단은 삼성, 롯데와 같은 대기업이 구단주를 맡은 반면, 광주에는 구단을 맡을 대기업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제과 회사인 해태가 구단을 맡긴 했지만, 다른 구단에 비해서 모기업의 지원이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야구 출범 첫회에 선수단이 15명 밖에 되지 않아 김성한이 타자와 투수를 겸해 그 해 10승을 기록한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코끼리' 김응용 감독을 주축으로 우승까지 이어지는 해태 타이거즈의 헝그리 정신은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와 비견될 만한 기적이었다. 해태가 프로야구를 제패하니 호남 전역은 물론 고향을 떠난 호남 사람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해태가 서울에 경기 하러 오면, 그날 장사가 안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태를 향한 호남 사람들의 지지는 열광적 이었다. 

"단편적으로 말하면 이길 수 있는게 하나도 없었어요. 전라도에서는"(해태 타이거즈 팬 김창규) 

호남 출신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공공연히 있던 시절. 호남 사람들에게 해태 타이거즈는 절대 지면 안 되는 팀이었다. 이는 어느 팀의 팬이던 매한가지이겠지만, 전라도 사람들에게 야구는 야구 그 이상이었고, 5.18과 오랜 지역 감정에 상처받은 호남인들의 한풀이와도 같았다. 

그 뒤 선동열, 이종범 등 야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대형스타들의 연이은 등장으로 9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해태 타이거즈는 IMF 이후 모기업의 부도로 2001년 현대기아차그룹을 모기업으로 한 KIA 타이거즈의 출범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 KBS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영상들을 발굴하여 현대적 맥락에서 재구성하는 아카이브 푸티지 다큐는 과거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역사의 이면을 새로운 시선, 감각으로 마주하게 한다. 해태 타이거즈의 찬란했던 순간들을 5.18과 지역 차별과 같은 현대사의 그늘과 나란히 병치시켜 되짚어 보는 <모던코리아> '왕조'는 5.18로 시작해서 해태 타이거즈의 마스코트 호랑이의 울음소리로 끝난다. 

군소 구단으로 출발, 프로야구에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하며 명실상부 왕조로 군림했던 해태 타이거즈의 흥망성쇠는 70~80년대 고속 성장을 달리다가 IMF 때 휘청거린 한국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모던코리아>가 한국의 수많은 스포츠(야구) 구단 중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선택한 것은 성장스토리가 분명하고, 야구 이외의 사연이 가장 많은 팀이기 때문이다.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다룬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왕조’ ⓒ KBS


솔직히 <모던코리아> '왕조'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해태(기아) 타이거즈는 광주를 연고로 했던 우승 많이했던 구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모던코리아>를 통해 해태 타이거즈에 숨겨진 많은 함의들을 알게되니 지금은 사라진 해태 타이거즈에 대한 궁금증과 그리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80·90년대 한국사를 집약한듯한 해태 타이거즈에 묘한 감정이 생긴 것이다.

기자는 어릴 때라 기억조차 나지 않는 1992년 휴거 소동을 다룬 '휴거 그들이 사라진 날'(오는 20일 방영) 또한 어떤 이야기를 다룰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모던코리아 해태 타이거즈 프로야구 5.18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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