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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의 폭력-편견사회에서 장애인권 바로보기, 시몬느 소스 글, 김현아 옮김
 시선의 폭력-편견사회에서 장애인권 바로보기, 시몬느 소스 글, 김현아 옮김
ⓒ 한울림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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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유일하다. 유일성에 자리를 내어주자. 유일성이 보편성이다." - 시몬느 소스 <시선의 폭력: 편견사회에서 장애인권 바로보기>  P. 159
 
 
세상에 영원히 회자될 말이 있다.

'오늘 한 명의 장애인을 만났다면, 당신은 세상의 모든 장애인 중 단 한 명을 만난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비장애 세상에서도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듯, 장애인들도 각자가 고유성을 지닌 개별적인 존재다. 장애를 진단할 때의 기준은 있지만, 같은 진단명을 갖고도 개인마다 갖고 태어난 기질이나 성향, 양육의 환경과 사는 국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산다.

장애의 유형에는 얼핏 보아도 바로 구별이 되는 장애가 있는가 하면, 일반인들의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장애도 많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처한 어려움과 욕구가 쉽게 읽히지도 들리지도 않아서 일상생활에서 더 많은 장벽을 경험하며 살기도 한다.

"한국인이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멜버른에 이민을 오고 나서 메디케어(한국의 국민건강보험과 유사한 제도)에 가입하고 각종 시스템에 연결하기 위해 센터링크(한국의 동사무소나 구청의 복지정책을 담당하는 기관과 유사)를 방문한 나에게 직원이 던진 질문이었다. 멜버른의 가장 많은 이민자 집단이 중국인이니 멜버른 이민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착각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난 한국에서 10년 동안 미국에서 온 영어사람(미국인)으로 오해받고 살았어요."

내 하소연을 듣고 브라질 출신의 남편이 건넨 말이다. 그제야 용무를 보고 돌아와서도 계속 나를 괴롭히던 이해할 수 없는 불쾌감의 원천을 찾을 수가 있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직원의 타 문화 이해에 대한 낮은 인식이 빚어낸 결과이다. 동양에서 온 아시아인들은 대부분이 중국인일 거라는 선입견, 중국과 근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중국어 사용자일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으면 쉽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었다.

이처럼 장애나 비장애와 무관하게 '오로지 하나의 인류'인 우리는 일상의 곳곳에서 거칠고 무례하게 취급을 당할 때 당황스럽고 감정이 상한다. 마치 플라스틱 두부판에 놓인 두부를 오로지 사각모양으로 잘라 내듯 개성도 취향도 없는 존재로 다뤄지길 거부하듯이.

"I'm autistic. (나는 자폐를 가지고 있어)"

나와 함께 보조교사 자격증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엘리(가명)는 수업 첫날 본인 소개를 이렇게 시작했다. 두 아들의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Autistic Spectrum Disorder)를 진단받는 과정에서 본인도 비슷한 특성(trait)이 있음을 의심하고 40살에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이 분야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일화이다. 아이 셋을 진단받다 아빠가 같은 특성을 지녔음을 깨닫기도 하고, 조부모 세대에서 특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눈이 엄마 닮았네.'
'발이 아빠 닮았네.'
'그러고 보니 성격이 꼭 할아버지네.'

비장애 세상에서 어린아이들을 보며 흔하게 사용하는 이런 표현들이 새삼스럽거나 충격적인 광경이 아니라면, 장애의 세상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게 나타날 수 있다. 물론 표현의 내용은 다르겠지만.

오늘도 호주 텔레비전에 내보낼 '자폐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위한 캠페인' 광고 촬영에 갔다 오느라 지각한 엘리는 새로운 인생을 사느라 바쁘다. 자폐인들을 위한 자선기관에 본인의 이야기를 실어 제2의 엘리, 제3의 엘리에게 용기와 정보를 제공해 주고,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게스트로 초청받는다.

수업 중 그녀가 들려주는 진정성 있는 삶의 증언과 그녀의 특별한 시선으로 읽히는 세상을 엿보는 일은 소중하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평생을 본인 자신이 아닌 정형인의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커버링(또는 마스킹)을 하고 살아왔다는 엘리가 마침내 정체성의 퍼즐을 맞춘 후 던지는 질문들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반면에 세상을 읽어내는 기존 문법을 다시 공부하라는 독려이기도 하다.
  
"왜 정형인들은 우리가 자폐성을 없애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
"자폐성은 나의 여러 가지 특징 중 단지 하나일 뿐인데 왜 나를 엘리가 아닌 자폐로만 받아들이지?"
"나를 고치려 하지 말고, 환경을 배려해주고 차별의 시선을 거둬주면 되잖아?"
 

세상에는 당사자로서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타인들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맥락의 말들이 있다. 엘리의 삶이 만들어 내는 질문들은 내가 장애에 관심을 가진 후 들은 말 중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말들이었다. 내 삶에 리히터 규모 10에 버금가는 대지진을 불러일으켰고, 장애에 대한 나의 좁은 시각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은 말들이 멀리멀리 퍼져 많은 사람에게 들릴 수 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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