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초기만 해도 손예진과 현빈의 열애설과 북한 미화를 통한 노이즈 마케팅을 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내조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 <별에서 온 그대> 같은 히트작을 집필했던 박지은 작가의 '무리수'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신년과 설날 두 번에 걸친 결방도 경쟁이 치열한 주말 드라마에서 시청률에 악영향을 끼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16일 많은 화제 속에 종영된 tvN 주말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이야기다.

많은 불안요소를 안고 출발했던 <사랑의 불시착>은 최종회 시청률 21.7%를 기록하며 <도깨비>(20.5%)를 뛰어 넘어 tvN 역대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웃음을 책임진 북한군 5중대 대원들, 끈끈한 정으로 뭉친 사택마을 주민들 등 조연 캐릭터들까지 골고루 사랑 받는 드라마가 됐다. 북한미화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실제로 <사랑의 불시착>은 탈북민들로부터 현실 고증이 잘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남북이 분단된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윤세리(손예진 분)와 리정혁(현빈 분)은 스위스에서 극적으로 재회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손예진과 현빈이 <사랑의 불시착>에서 '행복'을 담당한 주인공이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극 중에서 '슬픔'을 담당했던 또 다른 주인공도 있었다. 바로 '서브 주인공'이라는 한 마디로 묶어 버리기엔 시청자들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던 캐릭터 서단을 연기했던 배우 서지혜가 그 주인공이다.

'스타 되기 단계별 코스' 수료(?)하고도 슈퍼스타 되지 못한 서지혜
 
 <여고괴담>에 출연할 때까지만 해도 서지혜(가운데)의 배우인생에는 탄탄대로만 펼쳐지는 듯 했다.

<여고괴담>에 출연할 때까지만 해도 서지혜(가운데)의 배우인생에는 탄탄대로만 펼쳐지는 듯 했다. ⓒ 시네마서비스

 
고2 때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잡지모델로 데뷔한 서지혜는 드라마 <올인>과 <폭풍 속으로>, <결혼하고 싶은 여자> 등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러던 2005년, 많은 여성배우들을 배출한 <여고괴담>의 4번째 이야기에 출연하며 좋은 기회를 잡았다. 당시 <여고괴담-목소리>에는 서지혜 외에도 김옥빈, 차예련 같은 또래 배우들도 함께 출연했고 훗날 '김주영쌤'으로 유명해지는 김서형도 음악교사로 등장했다.

서지혜는 같은 해 드라마 <신돈>에서 노국공주와 반야로 1인2역을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춤 추러 갈래요?"라는 카피로 유명한 조승우와 함께 찍은 광고를 통해 서지혜는 자신의 얼굴을 대중들에게 더욱 각인시켰다. 하지만 <여고괴담> 출연과 지상파 드라마 주연, 화제의 CF 출연으로 이어진 '스타 되기 단계별 코스'를 모두 수료(?)했음에도 서지혜는 좀처럼 대형스타로 성장하지 못했다.

서지혜는 정준호와 김상중으로 대표되는 원년 멤버가 빠지고 이성재를 중심으로 제작된 2007년 개봉작 <상사부일체>에서 여주인공 김수정 역을 맡았다. 하지만 <상사부일체>는 전국관객 100만도 채우지 못하고 <두사부일체> 프랜차이즈의 종말을 알리는 작품이 됐다. 서지혜는 2006년 음악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와 2008년 허영만 원작의 <사랑해> 같은 드라마에도 출연했지만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언젠가부터 서지혜의 이름 앞에는 '서브주인공 전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실제로 서지혜가 출연한 작품에는 그보다 더 많은 분량을 가진 주인공이 존재했고 서지혜는 남자주인공을 좋아하는 역할이나 여자주인공을 방해하는 역을 주로 연기했다. 2012년에 방송된 KBS 일일드라마 <별도 달도 따줄게>에서는 오랜만에 주인공 한채원 역을 맡아 시청률 30%를 견인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일일드라마는 상대적으로 화제성이 썩 높지 않다.

서브 주인공으로 출연한 작품들 중에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서지혜의 대표작은 2014년 SBS에서 방송됐던 드라마 <펀치>였다. 서지혜는 <펀치>에서 유명 국회의원의 혼외자식으로 아버지의 지역구에 출마해 아버지를 몰락시키려는 야심을 가진 최연진 검사를 연기했다. 서지혜는 차갑고 냉정한 반부패부 검사 역을 잘 소화하다가도 남몰래 좋아하던 박정환 검사(김래원 분) 앞에서는 넌지시 속마음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었다.

10년 넘게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부지런한 배우, 5월 신작 출연 예정
 
 <흉부외과>는 2005년 <신돈>이후 13년 만에 서지혜가 가장 분량이 많은 여성배우로 출연한 작품이었다.

<흉부외과>는 2005년 <신돈>이후 13년 만에 서지혜가 가장 분량이 많은 여성배우로 출연한 작품이었다. ⓒ SBS 화면캡처

 
서지혜는 2016년 <질투의 화신>에서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의 딸이자 표나리(공효진 분)와 이화신(조정석 분)이 일하는 방송국 SBC 아나운서 홍혜원 역을 맡았다. 불로불사의 양장점 디자이너 샤론을 연기한 2017년 KBS 드라마 <흑기사>에서는 비주얼로 보나 연기로 보나 <지붕 뚫고 하이킥>시절 이후 최고의 폼을 보여주던 신세경에게도 뒤지지 않는 매력을 뽐내기도 했다.

그는 2018년 SBS 드라마 <흉부외과 - 심장을 훔친 의사들>에서 태산병원 이사장의 딸이자 흉부외과 조교수 윤수연을 연기했다. 물론 극중에서 심장이식수술을 받고 깨어난 윤수연이 풀메이크업 상태라는 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 점을 제외하면 서지혜는 데뷔 첫 의사 연기도 무난하게 소화했다(물론 <흉부외과>는 방영기간 내내 한 번도 두 자리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하며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흉부외과> 이후 서지혜는 2019년 <사랑의 불시착>을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돌풍에 휘말려 북한에 불시착한 윤세리와 사랑에 빠지는 리정혁의 약혼녀 서단 역이었다. 인물 소개만 봐도 윤세리와 리정혁의 사랑을 방해하다가 상처 받는 서브주인공 역할이었다. 실제로 서지혜는 극 초반까지 우아함과 도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출연했던 드라마 제목처럼 '질투의 화신'으로서 본분(?)을 다했다.

하지만 박지은 작가는 서지혜를 단순한 서브주인공으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구승준(김정현 분)과의 감정이 깊어진 서단은 <사랑의 불시착>에서 가장 애틋하고 슬픈 부분을 담당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특히 북한을 떠나는 구승준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냉정하게 공항을 떠난 후 택시 안에서 구승준이 준 반지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20년 가까운 경력이 쌓인 서지혜의 연기내공이 돋보였다. 

서지혜는 지난 2017년 예능프로그램 <인생술집>에 출연해 자신을 "예쁘지만 뜨지 못하는 배우"로 분류하는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했다(서지혜는 이미 자신의 위치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서지혜는 오는 5월부터 시작되는 웹툰 원작의 MBC 월화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에 주인공 우도희 역으로 캐스팅됐다. 지난 10년 동안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에게 감히 "안 떴다"고 평가하는 것은 서지혜에 대한 커다란 실례가 아닐까.
 
 <사랑의 불시착>에서 애절한 멜로연기를 선보였던 서지혜는 오는 5월 또 하나의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애절한 멜로연기를 선보였던 서지혜는 오는 5월 또 하나의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 tvN 화면 캡처

 
서지혜 사랑의 불시착 서단 여고괴담 - 목소리 저녁 같이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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