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선수 출신 방송인 서장훈은 현역 시절 한국프로농구 역대 최고의 선수였다. 개인 통산 1만 3231점-5235 리바운드는 프로농구 역대 개인 최다득점-리바운드 기록이며 향후 최소한 수 년간은 깨지기 어려운 불멸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화려한 성적과 달리 현역 시절의 서장훈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와는 거리가 있었다. 너무 압도적인 실력 때문에 상대팀에는 언제나 경계 대상 1순위였고 상대의 집중견제와 거친 파울에 시달리다 보니 코트에서 표정관리가 안 되어 인상을 쓰거나 심판에게 자주 항의하는 장면이 팬들에게 부각되어 나쁜 인상을 남겼다. 보통 선수들과 다르게 자기 주장이 강하고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는 일부 팬들에게는 건방진 이미지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서장훈이 진정으로 팬들과 거리감을 좁히지 못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프로스포츠의 본질'을 바라보는 인식차이에 있었다. 서장훈은 항상 "스포츠에서 즐기라는 이야기가 가장 듣기싫다"고 주장했다. 서장훈은 은퇴 후 한 토크쇼에 출연하여 "스포츠의 목적은 승리를 얻는 것이고, 운동선수는 승패를 내는 걸 직업으로 삼는 사람인데 그걸 즐기라는 이야기는 말장난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코트에서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심판에게 항의하던 것도 그만큼 절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이기고 싶은 순수한 승부욕에서 비롯되었다는 해명이다.

서장훈의 운동철학이 그대로 드러난 <핸섬>

이러한 서장훈의 운동철학은 그가 감독을 맡은 <진짜농구, 핸섬 타이거즈>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서장훈은 연예인 농구단의 감독을 맡아 아마추어 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장르는 예능이지만 <핸섬>은 다큐를 연상시킬 정도로 분위기가 매우 진지하다. 기존 예능에서 흔히 볼법한 출연자들의 장난스러운 만담도, 제작진의 유머나 센스넘치는 자막 등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서장훈은 방송에서도 연예인 선수들에게 '여기서 예능할 생각 하지말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농구에 진지하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서장훈과 <핸섬>의 모순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분명히 예능인데 예능임을 굳이 거부하는 것은 마치 호부호형을 못하게 했던 홍길동의 서러움을 연상시킨다. <핸섬>이 차라리 전문적인 농구단이나 서장훈의 개인 사비를 들여서 구성된 선수들이라면 납득이 된다. 하지만 <핸섬>은 어디까지나 방송을 위하여 구성된 팀이고 선수들은 농구를 좋아하는 연예인일 뿐이다. 굳이 그 본질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기괴하게도 아마추어 연예인 선수들을 모아놓고 '승부에만 집착하는' 예능아닌 예능을 만들려는 것일까.

<핸섬>의 분위기는 서장훈의 농구철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마치 농구 훈련소에 입소한 신병처럼 선수들은 진지하다 못해 경직되어 있다. 능동적으로 즐기는 농구보다는 조교 서장훈의 통제에 따라 농구하는 기계처럼 수동적으로 움직인다. 경기중 실수라도 저지르면 선수들은 벤치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다.

고양시청과의 친선경기에서처럼 서장훈이 웃는 얼굴로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독려할때는 벤치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하지만 대패한 삼성전자 반도체 레드팀과의 경기처럼 팀 전체가 총체적인 난국에 빠졌을 때 서장훈의 일방통행적이고 유연하지 못한 리더십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주장 이상윤과의 언쟁처럼 '할 수 있는데 못한다고' 생각하는 서장훈은 '하고싶은데 안 되는'평범한 선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 프로농구단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스타 출신 지도자들이 실패하기 쉬운 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럴 때 중간에서 적당히 분위기를 조율해줄 코치나 연예인 MC같은 역할도 없다.

시청자들에게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데자뷰인 이유는, 바로 서장훈이 4년전에 고등학교 감독로 출연했던 <우리들의 공교시>와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연령대가 높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문제점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그나마 <공교시>처럼 화를 내고 코트를 떠나버리지는 않았지만, <핸섬>에서도 끝내 선수의 마음을 다독이지 못한 채 자기 할말만 마치고 등을 돌려 자리에 앉아버리는 것으로 작전타임은 무겁게 끝나버린다.이 장면은 <핸섬>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애초부터 서장훈과 <핸섬>이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고 밀어붙인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전문 선수들도 아닌데다 어쩌면 일반인들보다 스케줄이 빡빡하고 불규칙한 연예인 멤버들로 급조된 농구팀을 구성해놓고, 한 달 만에 아마추어 대회에 도전을 선언한 것은 누가봐도 무리수였다. 시간이 촉박하고 선수들의 기량은 올라오지 않다보니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부족한 기량을 메우기 위하여 주입식으로 속공과 패턴에 매달리지만, 그마저도 선수들의 기본 체력과 농구이해도를 감안하지 못한 무리한 전술은 금세 한계를 드러낸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 선수들에게 즐거워야 할 농구는 어느새 힘겨운 노동이 되어버린다. 

예능이 진지함과 승부욕을 추구한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의 진짜 목적과 존재가치다. <핸섬>이 농구라는 스포츠의 다양한 매력을 시청자에게 전해주는 게 목적이라면 꼭 진지한 분위기나, 성적에 대한 압박을 주는 서바이벌 형식만이 정답일 필요는 없다. <우리동네 예체능>이나 <뭉쳐야찬다>가 좀더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를 추구한다고 해서 해당 스포츠를 희화화거나 그 매력을 전달하는데 소홀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낚시를 소재로 한 <도시어부, 나만 믿고 따라와>는 아저씨들의 취미생활 정도로만 여겨지던 낚시를 일약 인기 예능 콘텐츠로 만들었다. <도시어부>는 말그대로 방영 2시간 가까이 출연자들이 '낚시하고 밥먹는' 단조로운 과정이 방송 분량의 전부다.

방송 전만해도 '이게 과연 예능이 될까' 의아했던 시청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도시어부>는 스포츠, 애니, 영화, 게임, 예능 등을 넘나드는 젊은 세대 서브컬쳐 문화와 인터넷 감각을 덧입힌 자막 및 편집으로, 자칫 지루한 다큐가 되기쉬운 낚시꾼들의 캐릭터나 일상을 '재해석'해낸 제작진의 센스가 돋보였다. 이처럼 그냥 '낚시를 보여주는 것'과 '낚시로 볼거리(방송분량)을 만드는 것'의 의미는 엄연히 다르다.

그에 비하면 <핸섬>은 농구를 그저 단순하게 '보여주기만' 할뿐, 농구의 매력을 어떻게 더 잘살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창의적인 고민은 없다. 구기종목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풀어낼 볼거리가 많은 농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겨우 이렇게 밖에 그려내지 못하는 것일까 싶을 정도다.

다큐에 가까울 정도로 농구 그 자체에 집중한다고 하지만 정작 반복되는 훈련과 수준낮은 경기력의 단조로운 나열은 오래가지 않아 지루함만 줄 뿐이다. 그것은 선수들의 기량과 노력 문제가 아니라, 바로 서장훈과 제작진이 이 프로그램을 풀어나가고자하는 접근방식과 이해도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핸섬>이 단순히 승부와 결과에 집착한다면 정식 프로농구 경기를 보지, 굳이 이런 딱딱한 프로그램을 볼 이유가 없다. 농구인기가 떨어진 시대에 <핸섬>이 아마추어리그 우승을 하건말건 시청자들에게는 그 결과가 그다지 중요한 흥밋거리나 매력포인트가 되기는 어렵다.

프로스포츠와 방송의 공통점 잊었나

서장훈이 이른바 '즐긴다'는 개념에 강박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그동안 많은 방송에서 해명한 바 있으며, 선수 시절의 입장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는 방송 프로그램, <핸섬>이라는 연예인 구단을 책임지는 감독의 입장이 되어서도 '농구'와 '농구 문화'를 바라보는 인식이 개인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태도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프로스포츠와 방송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팬(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도 즐기지 못하는 운동을 하면서, 그 소비자인 팬들에게는 이런 농구를 보고 즐겨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심각한 언어도단이 아닐까.

심지어 프로농구도 최근에는 과거의 성적지상주의와 폐쇄성을 내려놓고,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하여 변화하는 추세다. 근엄한 현역 프로 감독이 예능에 출연하여 먹방으로 농구를 홍보하기도 하고, 경기중 선수와 감독이 마이크를 차고 생생한 경기실황을 팬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팬들은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 대패하는 것보다 오히려 선수들이 팬서비스에 소홀한 것에 더 민감하다. 일부 선수들은 오버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현란한 세리머니나 퍼포먼스로 팬들을 즐겁게 하기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아무리 화려한 개인 기록을 세우든, 우승을 얼마나 차지하든, 팬들을 즐겁게 하지 못하는 농구는 그저 생산없는 공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다큐도 예능도 아닌 불친절하고 기괴한 방송이 되어버린 <핸섬>이 서장훈을 이 프로그램의 중심으로 선택한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실수는 아니었을까.
서장훈 핸섬타이거즈 이상윤 스포츠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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