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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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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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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자찬 같아 적이 민망하지만, 내 별명은 '멋진 신사'다. 풋내기 교사 시절, 아이들이 스승의 날 즈음에 지어준 것이다. 어설펐을지언정 최선을 다해 수업하고, 함께 운동장에서 뛰며 땀 흘리는 모습을 높이 쳐준 셈이다. 그로부터 지금껏 아이디처럼 쓰고 있다.

동료 교사들이 지어준 별명도 있다. '딸깍발이.' 신규 교사 티를 벗고, 4~5년 차쯤 되었을 때 술자리에서 처음 불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콰해진 터라 그저 장난말로 여겼지만, 언뜻 칭찬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충고와 비판 같기도 해 술 깬 뒤엔 기분이 묘했다.

본디 '딸깍발이'란 맑은 날에도 딸깍거리는 나막신만 신고 다닌다는 뜻에서 가난한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궁핍한 살림에도 글만 읽는 '남산골샌님'과 동의어로, 대개 조롱의 의미로 사용된다. 한편으론 비록 가난하지만 지조 있는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아이들과 동료 교사가 지어준 두 별명은, 어감으로야 하늘과 땅 차이지만, 의미만 놓고 보면 별로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과분한 찬사도, 동료 교사의 칭찬 같은 충고도, 모두 나의 '평범하지 않은' 삶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말 그대로, '남다른' 교사라는 거다.

'실천합시다'

굳이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우선 채식주의자다. 동물을 먹기는커녕 동물의 털로 만든 의류조차 입지 않는 비건(Vegan)은 아니고, 채식의 단계로 보면 육류를 먹지 않는 페스코(Pesco)로 산 지 얼추 20년이다. 생선도 먹고, 유제품도 먹으니, 채식주의자라 부르기가 좀 뭣하긴 하다.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채식을 실천해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이나 당위 따윈 없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교과서에서 공장식 축산의 폐해와 관련된 글을 읽고서다. 당시 '동물권'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만, 축산 폐수가 수질오염의 주범이라는 것만으로도 충격이 컸다.

당시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법정 스님의 짤막한 수필도 채식을 결심하는 데 자극이 됐다. 쇠고기 1인분을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30인분의 곡식이 사료로 쓰인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존을 예로 들며, 멀쩡한 밀림과 농경지가 목초지로 개간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실린 교과서도 있었다.

문득, 학교 수업 시간에 가르치고 배웠다면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공교롭게도, 교과서에 수록된 탐구활동의 제목도 '실천합시다'였다. 교사로서, 배움과 실천이 별개라면,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반성을 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담배 피우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금연교육을 시킬 수는 없다. "백해무익하다면서, 왜 선생님은 담배를 끊지 않느냐"는 아이들의 반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반문에 당당해지기 위해 나 역시 담배를 끊었다. 2004년 4월 3일이라는, 그 날짜까지 또렷이 기억한다.

교사의 솔선수범 없이 아이들에게 배운 대로 실천하라는 가르침은 '흰소리'일 뿐이라는 생각에 시작한 채식. 생활의 불편함은 스스로 감내하면 됐지만, '남다른' 선택으로 인한 편견과 시선이 더 큰 문제였다. 선한 의지로 시작했는데, '근본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채식한다고 하면 십중팔구 이유나 계기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솔직하게 답변하면, 대부분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인다. 어떻게 배운 대로 일일이 실천하면서 살 수 있느냐며 충고를 건네기도 하고, '그래 너 잘 났다'는 식의 비아냥거림도 적지 않다.

<또 하나의 약속>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또 하나의 약속>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 또 하나의 가족 제작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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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교직 22년 차인 여태껏 보충수업을 해본 적 없다는 것도 '남다르다'고 조롱받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지방 고등학교의 경우, 대학입시에 철저히 종속된 현실에서 보충수업은 필수적인 학사일정이자, 오랜 관행이다. 역사 교사이니 대학입시와 관련이 없는 교과도 아니다.

보충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나선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하루 7시간의 정규수업만으로도 아이들이 버거워한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정규수업만으로 진도를 맞출 수 없다면 학습 분량을 줄이는 게 옳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른바, '0교시' 보충수업까지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루 서너 시간의 보충수업이 '기댈 언덕'이 되어 되레 정규수업이 느슨해지는 경우도 숱하게 봤다. 보충수업이 없다면 정규수업에 '올인'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동료 교사를 설득하는 건 녹록지 않았다. 역시나 교과서 진도와 대학입시를 핑계로 댔다. 

이구동성 취지야 좋지만 보충수업을 없애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학습 분량을 줄이자면, 교과서의 내용과 대학입시의 출제 범위를 문제 삼아야 하는데, 일개 교사로서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거다. 차라리 교육부 장관이 되는 게 더 빠른 해결책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결국, 아무도 하지 않겠다면, 나라도 한다는 식으로 20년 넘게 버텨왔다. 고군분투한 만큼 학교가 달라졌느냐면, 그건 물론 아닐 거다. '0교시' 따위의 황당한 수업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교과에서 행해지고 있고, 아이들의 살인적인 학습 노동은 계속되고 있다.

또, 삼성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도 조롱거리가 됐다. 지난 2014년 초에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관람한 뒤 시작한 것이니, 햇수로 7년째다. 당시 불매운동을 시작하며, 아이들 앞에서 그때까지 사용하던 낡은 삼성 휴대전화를 깨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다행히 휴대전화의 '노예 계약' 기간이 끝났던 터라 괘념치 않아도 됐다. 덩달아 가전제품은 물론, 컴퓨터, 시계, 의류 할 것 없이 삼성 계열사의 제품은 집에서 모두 치워버렸다. 계열사가 아니어도, 지금껏 삼성이라는 이름을 내건 제품과 서비스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면서 내내 울컥했다. 자본의 매정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윤을 위해 사람을 헌신짝 취급을 하고, 부모 앞에서 자식의 목숨값을 흥정하는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영화관을 나오며, 하다못해 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별명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로라하는 백화점과 마트에 발을 끊은 것도, 나아가 TV를 아예 보지 않는 것도 삼성 덕분이다. 과거 즐겨보던 종편과 오락 채널이 죄다 이른바 '범삼성 계열사'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긴 1정 연수를 받았던 한 지방 국립대의 급식위탁업체조차 삼성 계열사였으니,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즈음 아이들에게 반농반진으로 내기를 걸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삼성 제품을 쓰지도, 먹지도, 보지도, 타지도 않았다면 선물로 문화상품권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문화상품권조차도 '범 삼성 계열사'의 제품이라며 키득거렸다.

다행히 문화상품권을 챙길 필요가 없었다. 다만, 내기에 이겨서 더 씁쓸했다. 내기를 통해 삼성 제품을 만나지 않고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젠 아이들조차도 삼성이 대한민국 정부보다 더 힘이 세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여줘도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다. 되레 어제오늘의 일이냐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저들의 불법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고, 최근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사건 파기 환송심이 예정돼 있지만, 관심조차 없다. 결과가 뻔해 궁금하지 않다는 거다.

동료 교사도, 아이들도, 채식을 실천한다고 지구의 환경이 좋아지느냐고, 보충수업을 거부한다고 우리 교육이 변하겠느냐고, 삼성 불매운동을 한다고 삼성이 착해질 것 같으냐고, 대놓고 되묻는다. 함께하면 가능하다고, 나부터 실천하면 이룰 수 있다고 대답하지만, 그때마다 튕겨 나오는 느낌이다. 역시나 '딸깍발이' 같은 답변이라는 조롱과 함께.

하도 많이 들어온 터라,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그저 '남다른' 모습에 동료 교사와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공감하고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완벽하게 채식을 실천하는 한 사람보다 채식에 공감하는 열 사람이 훨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생뚱맞게 별명 이야기를 꺼낸 건, 이태 전 졸업한 한 아이가 보내준 선물과 그 안에 담긴 편지 때문이다. 낼모레 군대에 간다면서, 갑자기 선생님이 생각나서 보냈다고 했다. 편지의 맨 위엔 '딸깍발이 선생님께'라고 적혀있었다. 그 별명을 어떻게 알았을까, 순간 치부를 들킨 듯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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