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농구는 지난 9일 세르비아에서 막을 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농구 세계예선에서 B조 3위를 차지하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세계 랭킹 3위 스페인, 아시아 최강 중국 같은 난적들과의 경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영국과의 경기에 '올인' 한 이문규 감독의 전략이 결과적으로 올림픽 본선 티켓을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 여자농구의 기둥 박지수(KB스타즈)는 귀국 인터뷰에서 올림픽 본선 진출에 대한 기쁨보다는 스페인전(46-83)과 중국전(60-100) 대패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대표팀의 문제는) 다들 아시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딱히 할 말은 없다"고 말하는 박지수의 표정에는 주전 선수에게만 지나치게 의존한 이문규 감독의 경기 운영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묻어 있었다.

하지만 세르비아에서 나흘 동안 세 경기를 치르며 녹초가 된 선수들에게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휴식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16일부터 곧바로 여자프로농구 일정이 재개되기 때문이다. 여자프로농구는 팀별로 많게는 10경기, 적게는 9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치열한 순위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규리그 우승과 플레이오프 막차 티켓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농구 팬들의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대 4명 합류하는 호화군단 KB와 '김정은 변수' 우리은행
 
 아킬레스건을 다친 김정은이 후반기에 제대로 활약을 할 수 없다면 우리은행의 전력에도 큰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아킬레스건을 다친 김정은이 후반기에 제대로 활약을 할 수 없다면 우리은행의 전력에도 큰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4라운드까지 우리은행 위비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였던 KB는 올림픽 예선 휴식기 전까지 16승5패로 우리은행에 반 경기 앞선 1위를 차지했다. KB는 지난 시즌 최우수 외국인 선수 수상자이자 이번 시즌에도 득점 1위(20.14점)를 달리고 있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 카일라 쏜튼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에 198cm의 신장을 자랑하는 국가대표 센터 박지수가 골밑을 지키고 있으니 쏜튼의 활동반경은 더욱 넓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KB가 쏜튼과 박지수에게만 의존하는 팀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KB는 이번 올림픽 예선에 박지수 외에도 강아정, 심성영, 김민정까지 무려 4명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여기에 손등을 다쳤던 리그 정상급 살림꾼 염윤아도 휴식기 이후 복귀가 유력하다. 6개 구단 중 주전들의 무게감은 물론이고 선수층이 가장 두꺼운 팀인 KB가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KB와 이번 시즌 내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팀이 바로 정상 탈환을 노리는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임영희(우리은행 코치)가 현역 생활을 마감했지만 정규리그 MVP 4회, 챔프전 MVP 3회에 빛나는 박혜진과 베테랑 포워드 김정은, 그리고 복덩이 외국인 선수 르샨다 그레이를 앞세워 꾸준히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임영희라는 뛰어난 선수가 은퇴했음에도 여전히 KB와 선두다툼을 벌일 수 있는 비결은 2년 차 가드 박지현과 혼혈 선수 김소니아의 성장 덕분이다. 이번 시즌 확실한 주전 선수로 도약한 박지현은 7.6득점 5리바운드 3.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박혜진의 파트너로 맹활약하고 있다. 뛰어난 투쟁심을 갖춘 김소니아 역시 8.8득점 6.9리바운드에 3점슛 성공률도 35.9%까지 끌어 올리며 우리은행의 훌륭한 공격옵션으로 성장했다.

KB와 우리은행이 시즌 끝까지 벌일 선두경쟁의 가장 큰 변수는 우리은행의 베테랑 포워드 김정은의 부상이다.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대표팀 경기에도 제대로 나서지 못했던 김정은은 귀국 후 치료를 위해 곧바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만약 김정은이 부상으로 후반기 정상적인 출전과 활약이 힘들어 진다면 정규리그 우승경쟁은 우리은행의 바람과 달리 KB의 부전승으로 싱겁게 끝날 수도 있다. 

반 경기 차이로 경쟁하는 3, 4, 5위... PO행 막차 티켓 주인공은?
 
 12.6득점 9.45리바운드 5.75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 중인 김한별은 정규시즌 MVP 후보로도 손색이 없다.

12.6득점 9.45리바운드 5.75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 중인 김한별은 정규시즌 MVP 후보로도 손색이 없다. ⓒ 삼성생명 블루밍스

 
KB와 우리은행이 반 경기 차이로 정규리그 우승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사실 더욱 치열한 순위 경쟁은 마지막 봄 농구 티켓을 걸고 싸우는 중위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3위 신한은행 에스버드와 4위 KEB하나은행, 5위 삼성생명 블루밍스가 각각 반 경기 차이로 사이 좋게 순위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3위 신한은행에 3경기 차이로 뒤진 최하위 BNK 썸 역시 아직 시즌을 포기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신한은행은 리그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김단비와 맏언니 한채진을 중심으로 뛰어난 팀워크가 돋보이는 팀이다. FA로 영입한 포인트가드 김이슬이 경기운영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고 베테랑 빅맨 김수연도 4.3득점 5.85리바운드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다만 비키바흐에서 엘레나 스미스, 아이샤 서덜랜드로 바뀌고 있는 외국인 선수의 잦은 교체는 신한은행의 후반기 가장 큰 불안요소다.

신한은행을 반 경기 차이로 추격하고 있는 하나은행은 득점 4위(18.05점), 리바운드 1위(11.95개)에 빛나는 외국인 선수 마이샤 하인스-알렌과 국가대표 슈터 강이슬을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마이샤와 강이슬, 베테랑 포워드 고아라 정도를 제외하면 확실한 주전 선수가 없다는 점은 하나은행의 고질적인 약점이다. 여기에 가드 신지현이 아킬레스건염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되며 후반기 활약이 불투명해진 점도 하나은행의 커다란 악재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은행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랐던 삼성생명은 이번 시즌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삼성생명은 김한별과 배혜윤, 박하나로 이어지는 트로이카가 건재하고 윤예빈, 이주연 등 신예들의 성장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리네타 카이저의 부상 퇴출 이후 합류한 비키 바흐의 성적(12.56득점 8리바운드)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물론 삼성생명은 집중력이 살아난다면 충분히 플레이오프 막차 티켓을 노릴 수 있는 팀이다.

최하위 BNK는 득점 2위(20.10점) 다미리스 단타스, 어시스트 1위(7.57개) 안혜지를 보유하고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초보사령탑 유영주 감독을 비롯해 주력 선수 대부분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은 편이라 좋은 경기를 펼치다가도 승부처에서 번번이 한계를 드러내곤 했다. 아직 산술적으로는 봄 농구를 노려볼 수 있지만 유일한 2할 대 승률팀인 BNK가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내기 위해선 큰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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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하이원큐 2019-2020 여자프로농구 김정은 김한별 순위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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