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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을 하러 자주 찾는 짜장면 가게에 갔다. 배가 엄청 고팠고, 들어가자마자 볶음밥과 우동을 시켰다. 음식이 바로 나왔다. 중국집은 어느 곳이든 속도로 승부를 거는 것 같다. 배가 부르니 식사가 끝나갈 즈음 식당 내의 여러 가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들어와 당당히 식탁을 닦아달라고 요구하고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둘의 대화를 이어간다.

빈 그릇을 정리하고 나오는데 짜장에 소주 한 병 놓인 테이블에 시선이 간다. 지금은 낮 2시. 진정한 술꾼을 만난다. 밖에 나와 우리끼리 말한다.

"짜장엔 뭐니 뭐니 해도 고량주지."
"맞아, 짬뽕에는 소주가 맞고."


역시 술꾼들의 대화다. 한동안 술을 끊었다가 최근 서운해서 일주일에 한 번만 마시자고 했다. 어젯밤이 바로 그 날이었고, 오랜만에 들이켰던 술로 인해 숙취가 있어 우동 국물을 속 깊은 소리를 내며 먹고 나온 길이지만 술의 합은 나름의 기준이 있다.

여행을 갈 때도 우리 것의 알코올은 필수품이다. 굳이 팩 소주를 챙겨간다. 며칠 버틸 정도의 양이지만, 이것이 떨어질 때쯤 현지의 술을 찾는다. 어디든 맥주는 음료쯤으로 생각하니 맥주에 대한 특별한 감흥은 없다. 스페인에서는 샹그리아, 이탈리아에서는 레몬소주를 즐겼고 러시아에서는 보드카가 좋았다.

우리는 잠에 들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아이들에게 변명처럼 말한다. 우리에게 술은 현실의 무게를 덜기 위한 친구다. 조금씩 고장 나서 삐걱거리는 것을 완화하기도 하고, 직장에서의 갈등이나 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밀도를 느슨하게 풀어주기도 한다. 늘 긴장하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낸다는 것은 촘촘한 수레바퀴를 짊어지거나 그 속을 통과하는 것이므로.

내가 많이 좋아하는 시인 신동엽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술을 마시며 남과 북의 극단적 대립을 걱정하고 염려했던 것 같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고 있던 1960년대의 우리 땅. 한반도의 철조망, 쇠붙이들의 싸움으로 점점 녹슬어가는 우리의 농촌과 남과 북의 동포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시고 잔 밤에는 그 철조망이, 쇠붙이가 두만강 이북과 서귀포 그 아래로 사라지는 재미있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부분)
                                                                    신동엽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자다가 참
재미난 꿈을 꾸었어.

그 중립지대가
요술을 부리데.
너구리새끼 사람새끼 곰새끼 노루새끼들
발가벗고 뛰어노는 폭 십리의 중립지대가
점점 팽창되는데,
그 평화지대 양쪽에서
총부리 마주 겨누고 있던
탱크들이 일백팔십도 뒤로 돌데.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
물방게처럼
한 떼는 서귀포 밖
한 떼는 두만강 밖
거기서 제각기 바깥 하늘 향해
총칼들 내던져 버리데.
 
우리의 꿈은 어떨까. 헤어날 수 없는 미로를 헤매다 깨기도 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정체 모를 그 무언가가 어른거리다 말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나는 그대로이고 가족들의 과거 속에 개입하기도 한다. 또 가끔은 학창 시절로 돌아가 언덕 꼭대기에 있던 학교 정문을 간당간당하게 통과하기도 한다. 가슴 아프거나 가슴 조이거나 하지만 재미있는 꿈은 아니다. 역시 나는 범인이다.

딱 한 번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남과 북의 철조망이 사라지는,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러시아를 통과해 유럽으로 가는 그 긴 여정에 내가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한 달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가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그 귀한 경험을 꿈에서라도 해 볼 수 있으면, 그렇게 신동엽 시인이 꾸던 꿈을 꿈에서나마 내가 이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시를 읽으며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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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을 떠나니 다양한 삶의 모습이 보입니다. 순간을 포착하고 싶고, 책에 대해서도 사회의 이야기도 글로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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