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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시작하며, 너무나 어두운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제 부족함을 깨뜨리기 위해 저는 결단을 거듭하였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을 할 때, 비로소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 그 길이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제 곁에 있었던 여러분께서 그 길을 밝혀주셨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고통마저도 소중함으로 느꼈고, 가장 낮고 가장 험난한 길이 저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험지보다 더 한 험지에 가겠노라 여러분께 약속하였습니다. 결국 그곳은 문재인 정권과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강력하게 싸울 수 있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 8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페이스북 글 중 일부

한 달여의 장고 끝에 종로 출마를 선언한 다음날인 지난 8일, 황 대표는 기도를 올리는 것 같았다. 얼핏 성경에 나올 법한 '어두운길', '험난한 길', '두려움' 표현들도 그렇거니와 고난 끝에 '밝은 빛'을 발견하는 서사도 꽤 닮아 있었다. 물론 그 끝엔 '대정부 투쟁'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일요일이던 9일 황 대표가 종로 젊음의 거리를 방문했다. 황 대표의 전격적인 험지 출마 선언 이후 첫 종로 방문이었다. 언론들이 일제히 기사를 쏟아냈다. <황교안, 종로 공실상가 방문…"종로 경제 반드시 살릴 것"(<한겨레>)과 같은 기사가 대표적이었다.

종로에 있다가 자신의 모교인 성균관대 방향으로 자리를 옮긴 황 대표는 요즘 말로 '라떼 이즈'(나 때는 말이야)와 같은 장광설을 늘어놨다. 청년 지지자들과 같이 걷던 황 대표가 이런 얘기를 꺼냈다.
"내가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이었는데 학생회장 마칠 때 학도호국단이 생겼어요. 근데 조직이 잘 안되니까 학생회장을 맡아 달라. 그래가지고 거의 2학년 마칠 때, 아니 3학년 마칠 때 끝부분에 발대식 같은 걸 하느라고 내가 학도호국단장을 했지."

학창시절 학도호국단장을 맡았던 경험을 자랑삼아 꺼내놓은 황 대표. 옆에서 걷던 지지자가 "세대가 달라서 생소한데 (학도호국단이) 보이스카웃 같은 건가요?"라고 물었고, 이어지는 황 대표의 답은 이랬다.
"기존 학생회 조직을 학도호국단으로 바꾼 거예요... 학생회 없어지고 그래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그런 측면이 있죠. 그대로 옮긴 건데, 출범이 어려우니까, 학생회장 맡고 있던 나한테(맡겼지)..."

잘 알려진 대로, '고등학교와 대학 내 설치된 학생 관변 단체'라 학도호국단은 이승만 정부가 설립했다 4.19 혁명 이후 해체됐고,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이 1975년 10월 유신 이후 정권 유지 차원에서 재설치했다. 군사문화의 잔재라는 시민들과 학생들의 반발 속에 민주화 요구에 못이긴 전두환 정부가 1985년 폐지했다.

이렇게 본인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평가하는 학도호국단 회장 경력을 "보이스카웃"이냐 묻는 청년 지지자에게 소개한 것이다. 황 대표는 이러한 경력을 2018년 출간한 <황교안의 답-황교안, 청년을 만나다>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 학창시절을 떠올리던 황 대표는 또 하나 역사적 비극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끌어 올렸다. 문제의 발언은 이 장면에서 나왔다. 
 
 21대 총선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학교 인근 분식점을 찾아 떡볶이를 먹고 있다.
 21대 총선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학교 인근 분식점을 찾아 떡볶이를 먹고 있다.
ⓒ 자유한국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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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황교안의 역사 인식
"여기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 2천(년)... 1820... 1980년... 그때 뭐 하여튼 무슨 사태가 있었죠? 1980년. 그래서 학교가 휴교 되고 뭐 이랬던 기억도 나고 그러네요." (9일 <미디어오늘> 유튜브 영상, <오뎅 먹던 황교안 "1980년 무슨 사태 나서 휴교"... 중국인 금지하자더니 관광객 감소 걱정> 중에서>

모교인 성대 앞을 찾은 황 대표가 청년 지지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학도호국단 회장을 역임한 뒤 성대에 입학한 당시 대학생 황교안에게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휴교를 맞았던 기억뿐일까. 과연 어떤 의미였길래 5.18을 "무슨 사태" 정도로 가볍게 규정한 걸까.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광주MBC 송일준 사장은 10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무슨 사태'라고? 정치1번지 종로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이 되려하고, 무려 대통령을 꿈꾸는 이의 인식이다. 기가 막힌다. 말이 안 나온다. 올해가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인 건 알고나 있을까."

청년들 앞에서 학도호국단 회장 경력을 자랑스레 얘기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뭐 하여튼 무슨 사태"라고 말하며 가볍게 넘기는 황 대표. 이러한 역사인식을 그저 청년 지지자들 앞에서 한 가벼운 말 한 마디로 넘겨도 괜찮을까.

이는 그가 당 대표를 맡은 지난 1년간 한국당 의원들이나 지지자들이 왜 그리 자주 5.18 관련 망언들을 뱉으며 논란을 자처했는지, 또 왜 한국당은 5.18 망언의 당사자인 이종명 의원을 제명하지 않는지, 또 왜 광주시민들은 지난해 5.18 기념식 때 황 대표의 광주 방문에 거세게 항의했는지를 되새기게 하는 장면이 아닐까.

황 대표의 발언이 논란이 된 10일 오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은 일제히 논평을 내고 황 대표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황 대표는 이날 종로구 당원들과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광주(민주화운동)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발언"이라며 "1980년도에 내가 4학년 때의 얘기를, 그때의 시점을 생각한 것이었다"이라고 선을 그었다(관련기사 : 뭇매 맞은 황교안 "80년 무슨사태" 발언 ..."뼛속까지 공안검사" http://omn.kr/1mika).

황 대표에게 다시 영상과 자신의 발언, 태도 모두를 확인해 보시길 권하는 바다. 청년 지지자들 앞에서 고등학생 시절 학도 호국단 회장 경력을 자랑한데 이어 성대 재학시절 1980년 이야기를 꺼내며 "무슨 사태", "휴교" 운운한 자신의 모습을. 과연 그 누가 이 '증거 영상'을 보고도 "전혀 관계없는 발언"이라 여길지, 본인 스스로가 판단해 보시길 바란다. 

태그:#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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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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