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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번역하기>는 처음부터 끌리는 책은 아니다. 시선을 끄는 제목도 아니다. 표지가 수려한 것도 아니다. <벤야민 번역하기>는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책으로 생각했다. 국문학 관련 책만 수백 권 이상을 낸 소명출판사 사장님조차 '책을 내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책이니까 내가 딱히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이 책을 내지 못할 이유가 뭐냐?는 저자의 물음에 대답을 못 해서 낸 책이라는데 이 책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이 책을 쓴 이유가 무엇인가? 는 질문을 하게 될 것 같다.

내가 두려움 없이 이 책을 주문한 이유는 저자인 김재준 선생이 1997년에 낸 책 <그림과 그림 값>을 출간되자마자 재미나게 읽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직장인이 쓴 발로 뛴 그림 수집 이야기가 쉽고 재미있었다. 읽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내용이 기억나는 책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20년 만에 만나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심정으로 이 책을 펼쳤다. 두어 쪽만 구경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덮었다. 다정다감하게 그림과 그림 값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그분에게 2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한자, 중국어, 영어, 독일어 그리고 어떤 나라의 언어를 알 수 없는 문자가 맥락 없이 섞여 있고, 맞춤법을 무시하며, 폰트의 종류 크기, 색깔도 제각각이다.

존칭어, 대화체가 갑자기 반말과 설명체로 바뀐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이 책은 독자들이 책이라는 상품에 기대하는 문법을 모두 지키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처음 만난 독자들도 이토록 당황하지는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책을 덮은 지 3일 만에 뭐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그토록 따뜻하고 다정한 글을 쓴 저자가 이럴 리가 없다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책장을 넘기었다. 

이 책이 난해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되었다.
 
Whanki 1975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김환기는 1974년 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뉴욕의 한 고서점에서 발견된 책 갈피 메모에서, 실은 그가 병원에 입원해 계속 작품 스케치를 남겼다고 한다. 세워서 그려진 유화가 아닌 책상에 눕혀진 수성캔바스 위의 수성물감의 작품. 그 작품들은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 메모에 의거해서 작품을 만들어 보았다. 그냥 내가 보기에 좋았다. - <벤야민 번역하기>중에서

그림을 좋아하는 저자 김재원 선생은 메모에 의지해서 그림을 재현했고 책을 수집하는 나는 포털 사이트에서 김환기가 책 갈피 메모를 남긴 책이 무엇인지 한참을 검색했다. 그림 수집이야기인 <그림과 그림값>이 1997년에 나왔는데 나는 2011년에 헌책과 희귀본을 수집하는 이야기 <오래된 새 책>을 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헌책 수집 이야기가 <그림과 그림 값>에서 기원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벤야민 번역하기>가 난해하다고 느낀다는 것은 인내심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당장 18쪽에서부터 '준법 상태가 예외상태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왜 모든 책은 소설, 시, 희곡, 철학, 여행서 따위의 틀 속에 속해야만 하는가? 왜 모든 책은 일정한 맥락을 유지하면서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가? 왜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질문을 하지 못했는지 이상한 일이다. 

책이 자동차 부품도 아닌데 왜 '규격'에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벤야민 번역하기>는 누가 만든 지도 알 수 없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책에 관한 구속을 벗어난 책이다. 형식에 구속되지 않은 철학, 독서, 사회비평, 전쟁과 사회, 예술에 대한 글이 이어진다. 애초에 형식에 가둔 책이 아닌데 형식의 눈으로 이 책을 읽으니까 난해하고 이상한 책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벤야민 번역하기>는 어느 한 장르로는 담을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지식과 담론 그리고 새로운 시각이 가득하다. 저자가 담으려는 광대한 지식과 자유로운 이야기 거리는 <벤야민 번역하기>라는 그릇으로만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달라진 것이 없다면 책을 읽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벤야민 번역하기>는 좋은 책이다. 앞으로 언급될 흥미롭고 통찰력 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책을 틀 속에 사로잡아 넣어서 그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알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책을 즐기는 범위를 제안하는 한계도 버릴 수 있게 해준다.  

<벤야민 번역하기>를 읽으면서 한 단락 또는 한 문장을 독립된 책이라고 생각을 해보자. 그 순간부터 당신에게는 환장할 만큼 재미나고 통찰력이 넘치는 지식의 대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모름지기 책은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만 잠시 잊어준다면 이 책만 큼 재미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모름지기 책은 줄거리가 있어야 하고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이야기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잊어 준다면 이 책은 인생의 색다른 경험을 당신에게 선물해줄 것이다. 이 책을 넘기다 보면 만나게 되는 흥미로운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한다. 

우리 민족이 민중이 주체가 되어 권력을 비판하고 교체하는 아시아 국가에서 드문 민주주의의 성취를 이룬 것은 유교적 이념을 받아들인 유교 지식인이 가톨릭을 수용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19세기 후반에 일반 민중이 스스로 선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유교를 대표하는 시스템인 과거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인쇄기술과 서적의 보급이라는 문화적 인프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틀을 이룬 경제개발계획과 농지개혁은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 초대 농림부 장관인 조봉암은 '평년작 기준으로 한 해 소출의 3할을 5년에 걸쳐 땅값으로 상환하는 조건으로 농지를 분배'하는 가장 성공적인 토지개혁을 했으며 1958년에 경제계획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는데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시작이 되었다.

책은 원전으로 읽어야 제대로 참뜻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모든 독자가 여러 가지 언어를 통달할 수는 없다. 그럼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우선 가장 원전에 충실한 번역본(예를 들면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을 고른다. 그런 다음 해당 원서의 언어에 대한 기초적인 실력을 쌓는다. 번역본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어떤 단어를 이렇게 번역했는지에 관한 궁금증이 생길 때 원서에서 그 부분만 찾아서 확인해 본다. 이렇게만 읽어도 원서로 읽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번역본으로 읽으면서도 원서가 가지고 있는 맛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왜 철학 책이 이해가 안 될까?
언어감수성이 부족해서, 특히 유럽 언어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 왜 영어를 못할까?
영어만 하니까. 오로지 영어에 대한 실용적 욕망에 사로 잡혀서.
- <벤야민 번역하기>중에서

비스켄슈타인이 '나의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한 것이 철학과 밀접한 관련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외국인과 대화를 하면서 '날씨' 이야기와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되었나는 질문을 던지고 나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 영어를 오직 기능에만 초점에 맞춰서 공부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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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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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벤야민 번역하기>에서 가장 감탄했던 에피소드를 살펴보자. 필립 로스의 소설 울분(indignation)에 나오는 주인공 마커스는 학구적이며 모범적인 학생이다. 아버지의 간섭이 싫어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오하이오 주의 작은 학교에 편입을 한다. 그 학교에서도 이런 저런 갈등을 겪은 그는 한국전쟁에 징집되어서 1952년 어느 날 20살 생일을 3개월 앞두고 전사한다. 

신을 믿을 수도 찬송가를 들을 수도 없었던 마커스는 교회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채플을 등한시 한 그에게 학장은 대학을 다니는 내내 매주 수요일마다 채플에 참석해야 퇴학을 시키지 않겠다고 엄명했다. 마커스는 순종 대신에 학장의 책상을 내리치면서 욕설('X까 씨X')을 내뱉었다. 마커스의 학창시절과 꿈과 희망은 욕설로 종지부를 찍었고 오하이오보다 훨씬 더 먼 한국에서 스무 살이 채 되기 전에 죽었다. 학사 학위도, 미래도, 생명도 그렇게 함께 사라졌다.

평범한 독자는 이 대목에서 대체 원문의 어떤 말을 'X까 씨X'로 번역했는지 궁금해 한다. 1950년대 미국 대학생이 그런 욕을 한 것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낀다. 원문은 'F*** you'다. 번역가는 아무래도 이 욕설만으로는 주인공의 분노를 표현하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비범한 저자 김재준 선생은 번역의 문제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소설 속 주인공 마커스가 혹시 실존 인물이 아닌지에 관한 호기심을 가졌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모든 미군의 명단과 통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기게 된 호기심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히 책과 자료를 모으는 것이 인문학의 출발 지점이라는 것을 이 사례로도 증명이 된다. 

한국 전쟁 미군 전사자 중에서 마커스의 고향 출신이 16명, 그 중에 19살은 3명, 그 중 1952년에 전사한 미군은 단 한명 그의 이름은 Russell John Graf 1933년생. 원산에서 전사했고 뉴저지에 안장됨.

필립 로스의 소설 울분(indignation)은 실존 인물 러셀(Russell John Graf)
를 모델로 삼았다.

번역, 통계, 전쟁사, 문학이 어우러진 이 에피소드는 <벤야민 번역하기>를 대표한다. 내 개인적인 의견이 그렇다. 책은 원래 독자에 따라서 다르게 읽히는 것이 정상이다. <벤야민 번역하기>를 읽고 나니 오히려 <그림과 그림 값>이 낯설다.

<벤야민 번역하기>에 등장하는 비정상적인 것들로 오해받는 것들의 진가를 다른 책을 읽으면서 느낀다. 다른 책들이 밋밋하고 심심해서 못 읽겠다. 한동안 다른 책을 읽을 수 없는 난독증으로 고생할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이후 오랜만에 겪는 일이다.

벤야민 번역하기

김재준 (지은이), 소명출판(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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