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재능' 존 존스가 천신만고 끝에 3차 방어에 성공했다.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존 존스는 9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도요타 센터에서 열린 UFC247 메인이벤트 도미닉 레예스와의 라이트 헤비급 3차 방어전에서 심판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존스는 2009년 12월 맷 해밀과의 경기에서 수직 엘보우를 사용하다가 반칙패를 당한 이후 무려 10년 2개월 동안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물론 각종 사고와 약물 문제로 징계를 받았던 기간은 제외된 것이다).

힘들게 승리하긴 했지만 논란이 많았던 경기였다. 존스는 뛰어난 운동능력을 갖춘 레예스를 상대로 경기를 지배하던 과거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크게 고전했다. 메인이벤트가 논란 속에 끝난 반면에 코메인이벤트로 열린 여성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는 챔피언의 압도적인 힘을 재확인했다. 챔피언 발렌티나 셰브첸코가 동급 1위의 도전자 캐틀린 추카기언을 3라운드 KO로 가볍게 제압한 것이다.
 
 셰브첸코(왼쪽)은 계체행사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던 추카기언의 안면을 엉망으로 만들며 3차 방어에 성공했다.

셰브첸코(왼쪽)은 계체행사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던 추카기언의 안면을 엉망으로 만들며 3차 방어에 성공했다. ⓒ 발렌티나 셰브첸코 인스타그램 캡처

 
스트로급으로 가기엔 무겁고 밴텀급으로 가기엔 가벼웠던 셰브첸코

'여성부의 1대 여제' 론다 로우지가 옥타곤을 떠난 이후 현존하는 UFC 최강의 여성파이터는 단연 '암사자' 아만다 누네즈다. 2016년 7월 미샤 테이트를 꺾고 여성부 밴텀급 챔피언에 오른 누네즈는 로우지,라퀠 페닝턴,홀리 홈, 저메인 데 란다메 등 동급 강자들을 모두 꺾으며 체급을 평정했다. 급기야 2018년12월에는 여성부에서 적수가 없다던 크리스 사이보그마저 KO로 누르고 여성부 최초로 두 체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최근 10연승을 달리고 있는 누네즈는 그 중 7번을 KO 혹은 서브미션으로 경기를 끝냈을 정도로 뛰어난 피니시율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누네즈가 두 번이나 상대하고도 아직 피니시를 시키지 못한 상대가 있으니 그 주인공이 바로 셰브첸코다. 2016년5월 누네즈와의 첫 만남에서 판정패했던 셰브첸코는 1년 6개월 후 재대결에서도 접전 끝에 1-2 판정으로 패했지만 역대 누네즈를 가장 괴롭혔던 상대로 꼽힌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셰브첸코는 어린 시절부터 언니 안토니나 셰브첸코와 함께 태권도, 킥복싱 등을 익히며 자연스럽게 격투기와 가까워졌다. 발렌티나보다 4살 많은 안토니나 셰브첸코 역시 UFC 플라이급 파이터로 활약하고 있는데 UFC 데뷔 후 2승1패를 기록하며 현재 플라이급 11위에 올라 있다(2018년11월 옥타곤 데뷔전에서는 한국 파이터 김지연에게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다).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 한국, 러시아 등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던 셰브첸코는 종합격투기 데뷔 후 7연속 피니시 승리를 거두며 일찌감치 뛰어난 재능을 뽐냈다. 킥복싱으로 다져진 셰브첸코의 타격본능은 여성부 경기에서 흔히 보기 힘들었다. 셰브첸코는 2010년 훗날 UFC에서 다시 만나는 리즈 카무치에게 생애 첫 패배를 당했지만 중소단체에서 4연승을 거둔 후 2015년 UFC와 계약했다. 

셰브첸코는 킥복싱과 무에타이 대회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금메달과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고 종합격투기에서도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UFC에서는 한 가지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바로 어중간한 체격이었다. 2015년 당시 UFC 여성 디비전은 밴텀급(-61.2kg)과 스트로급(-52.2kg) 밖에 없었기 때문에 50kg 중반 체급에 어울리는 셰브첸코가 활약할 체급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셰브첸코는 고민 끝에 감량이 아닌 증량을 선택했다.

플라이급 전향 후 5연승으로 3차 방어 성공, 적수가 없다 

탁월한 격투 감각과 경험을 두루 갖춘 셰브첸코에게 체중 핸디캡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셰브첸코는 밴텀급에서도 사라 카프만과 홀리 홈, 줄리아나 페냐 같은 강자들을 차례로 꺾으며 순식간에 타이틀 전선으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선천적인 근력의 차이는 경험이나 감각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판정 논란도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셰브첸코가 누네즈의 벽을 두 번이나 넘지 못한 결정적 이유다.

그러던 2017년 12월 UFC에도 드디어 여성 플라이급이 신설됐고 셰브첸코는 미련 없이 플라이급으로 체급을 옮겼다. 플라이급 데뷔전에서 프리실라 카초에이라를 서브미션으로 가볍게 제압한 셰브첸코는 2018년12월 요안나 옌드레이첵과의 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판정으로 승리하며 여성 플라이급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밴텀급에서 무거운 선수들을 상대했던 설움(?)을 자신의 체급을 찾으며 시원하게 날린 것이다.

UFC에 여성 플라이급이 생기자 셰브첸코 외에도 많은 파이터들이 플라이급으로 망명신청(?)을 했다. 하지만 셰브첸코는 1차 방어전에서 제시카 아이를 2라운드 KO로 꺾었고 2차 방어전에서는 자신에게 생애 첫 패를 안겼던 카무치를 판정으로 제압하며 설욕에 성공했다. 셰브첸코는 오랜 기간 킥복싱 선수로 활약한 타격가지만 KO승(6승)보다 서브미션 승리(7승)가 더 많을 정도로 그라운드 이해도가 매우 높은 파이터이기도 하다.

셰브첸코와 맞붙기 전 플라이급 랭킹 1위까지 올라갔던 추카기언 역시 셰브첸코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1라운드 후반 강력한 팔꿈치 공격으로 일찌감치 경기 분위기를 압도한 셰브첸코는 3라운드 초반 테이크다운에 이은 위력적인 파운딩으로 가볍게 경기를 끝냈다. 유효타의 숫자가 무려 40-17이었을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였다. 3차 방어에 성공한 셰브첸코는 플라이급 전향 후 5연승 행진을 달렸다.

코너 맥그리거 이후 두 체급 챔피언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셰브첸코에게도 밴텀급 재도전이나 스트로급 도전을 바라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누네즈와의 3차전이나 스트로급 챔피언 장 웨일리와의 슈퍼파이트를 기다리는 격투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2체급 타이틀에 도전하든 플라이급에서 위대한 기록을 이어가든 선택은 셰브첸코의 몫이다. '플라이급의 여제'에겐 충분히 이를 선택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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