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 본선 메달권 진입에 도전하는 김학범호의 '와일드카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령제한이 없는 월드컵이나 대륙선수권 대회와 달리 올림픽은 기본적으로 23세 이하 선수들이 출전하지만 최대 3장에 한해서 24세 이상 선수들을 와일드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와일드카드는 이미 올림픽 축구의 중요한 변수이자 히트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는 A대표팀이 출전했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나이 제한이 생겼고, 와일드카드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부터 도입됐다. 올림픽 참가국들은 전력보강을 위하여 와일드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기존 연령대별 대회에서는 나이 제한 때문에 보기 어려웠던 거물급 스타 선수들도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게 됐다.

와일드카드는 역대 올림픽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한 카메룬에는 '검은 표범' 파트릭 음보마가 5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으로 카메룬을 사상 첫 올림픽 정상으로 이끌었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브라질의 에이스 네이마르(PSG)가 와일드카드로 출전하여 홈에서 조국에 올림픽 금메달을 선사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도 거물급 선수들의 와일드카드 출전이 잇달아 거론되고 있다. 네이마르는 지난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와일드카드로 브라질 대표팀에 합류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스페인의 베테랑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레알 마드리드), 독일의 토마스 뮐러(바이에른 뮌헨), 이집트의 모하메드 살라(리버풀), 이탈리아의 잔루이지 부폰(유벤투스) 등은 스스로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을 밝히거나, 자국 대표팀에서 합류를 원하는 선수들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다만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는 유럽선수권대회(유로 2020)-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같은 중요한 대회들도 잇달아 열린다. 각국을 대표하는 스타 선수들은 소속 구단의 동의없이 올림픽까지 출전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도 1996년 애틀란타 대회 이후 올림픽마다 꾸준히 와일드카드를 활용했다. 1996년 애틀란타 대회에서는 황선홍- 하석주-이임생, 2000년대 시드니 대회에서는 김도훈-강철-김상식,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도 유상철-정경호,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김정우-김동진,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정성룡-박주영-김창수, 지난 2016년 리우 대회에서 손흥민-장현수-석현준까지 모두 A대표급 선수들이 와일드카드로 부름을 받았다.

와일드카드는 '양날의 검'으로도 통한다. 잘 쓰면 대표팀의 전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오히려 기존에 팀이 다져온 조직력을 해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축구의 역대 와일드카드도 높은 기대와는 달리 엇갈린 평가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한국축구의 역대 와일드카드는 '부상의 저주'에 시달린 경우가 유독 많았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와일드카드였던 공격수 황선홍과 수비수 이임생은 모두 대회 도중 부상으로 교체되며 팀전력에 큰 보탬이 되지못했고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선 당초 와일드카드였던 수비수 홍명보가 대회 개막전을 하루 앞두고 종아리 부상으로 강철로 갑작스레 바뀌면서 대표팀 수비조직력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도 원래 낙점됐던 김남일과 송종국이 연이어 부상으로 낙마하여 선수를 바꿔야했다. 역대 최고성적을 기록한 2012년 런던 대회에서도 수비수 김창수와 골키퍼 정성룡이 8강에서 연이어 부상을 당하며 이후 전력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등 징크스가 이어졌다.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대표팀의 특성상 와일드카드 선수들의 병역문제와 자격 논란도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2012년 런던 대회의 박주영은 역대 대표팀 와일드카드 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사례다. 당시 소속팀 아스널에서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하고 있던 박주영은 병역 논란까지 겹쳐 여론이 좋지 않았으나 홍명보 감독은 과감하게 그를 와일드카드로 발탁했다.

박주영은 좋지 않은 경기력에도 올림픽 본선에서 2골을 기록하며 한국축구의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고 병역혜택까지 받았다. 하지만 병역혜택을 받은 이후에도 소속팀에서의 부진과 대표팀에서의 각종 특혜 의혹에 시달리며 논란은 계속됐고, 불과 2년 뒤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올림픽과 정반대로 홍명보호 '의리축구' 파동의 중심에 서며 결국 대표팀의 흑역사로 전락했다.

손흥민은 2016년 리우올림픽 당시 한국축구의 최고스타이자 해결하지 못한 병역문제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손흥민은 조별리그에서 2골을 넣으며 나름 선전했으나 정작 온두라스와의 8강전에서 탐욕스러운 플레이와 결승실점으로 이어지는 뼈아픈 실책으로 도마에 오르며 와일드카드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손흥민은 2년 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김학범호의 와일드카드로 다시 한번 선발되며 금메달과 함께 명예회복을 이룰 수 있었다.

김학범 감독은 이미 2018 아시안게임에서 와일드카드로 재미를 본 바 있다. 공격수 황의조-손흥민, 골키퍼 조현우로 구성된 와일드카드 조합은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한국축구의 대회 2연패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만해도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진 황의조의 발탁을 두고 인맥축구 논란 등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김학범호는 결과로써 모든 선입견을 깔끔하게 불식시켰다.

하지만 아시안게임과 비교하여 선수구성과 대회의 수준도 달라진만큼 와일드카드 선발 기준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표팀의 강점으로 꼽히는 것은 미드필드진이다. 우승을 차지한 AFC U23챔피언십 원두재를 비롯하여 본선에서는 합류가 기대되는 23세 이하 유럽파 선수로 이강인, 백승호 등의 자원이 있어서 중원은 큰 걱정이 없다. 원톱도 오세훈과 조규성이라는 잠재력 있는 유망주들이 있다. 반면 상대적인 취약 포지션은 2선 라인과 수비진이 꼽힌다.

올림픽은 아시아 무대보다 수준이 높은 만큼 최전방과 최후방에 각각 확실한 무게중심을 잡아줄 만한 선수가 필요하다. 수비진은 김민재, 김영권, 김문환, 김진수 등 A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주전급 선수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골키퍼는 송범근이 U23 챔피언십에서 안정된 활약을 보여줬지만 특수 포지션과 올림픽 본선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미 와일드카드 경험이 있는 조현우에게 다시 눈길을 돌릴 수도 있다.

문제는 공격진이다.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뽑을 만한 선수들이 대부분 유럽파라서 올림픽 차출을 쉽게 장담하기 힘들다. 올림픽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정한 의무 차출 대회가 아니어서 해외파를 발탁하기 위해서는 소속 구단과 합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창훈, 황희찬, 이재성 등은 경험과 멀티포지션 능력을 두루 갖춰 소집만 가능하다면 하나같이 김학범호의 전력에 큰 보탬이 될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차출이 어렵다. 아시안게임에서 김학범호의 핵심이었던 황의조도 당시는 J리거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유럽파가 됐다. 이들 대부분이 이미 지난 두번의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병역혜택을 받은 상황이라 올림픽 출전에 대한 동기부여가 떨어지는 데다 이를 두고 소속팀을 설득할 명분도 부족하다는 것은 역대 와일드카드 선발과 비교하여 김학범 감독이 가장 어려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감독 개인의 안목이나 의지보다도, 협회 차원의 노력과 지원이 더 절실하다.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 이상의 성적을 노리는 김학범호에게 와일드카드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김 감독은 일단 '모든 한국 선수가 와일드카드 후보'라며 여론의 높은 관심에도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놓고 있지만 속으로는 고심이 매우 깊을 듯하다. 감독의 훌륭한 지도력도 결국 최상의 선수구성이라는 뼈대가 뒷받침될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올림픽 본선에 도전하는 모든 국가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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