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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컨저링>이라는 공포영화 시리즈를 본 적이 있었다. 외국의 저택에 찾아가서 그 곳에 위치한 귀신에게 온갖 고통을 겪고 문제의 원인을 찾는 이야기다. <컨저링> 시리즈는 인기가 좋았는지 1편에 그치지 않고 계속 시리즈가 상영되었는데, 유령이 나타나서 상대를 깜짝 놀라게 하는 구조는 동일했다.

영화에 나오는 유령은 한국의 공포영화에 나오는 한 맺힌 귀신들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서양의 유령은 등장과 퇴치에 있어 기독교적인 요소가 많아서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인간이 죽은 후의 존재라는 개념은 비슷하지만 유령을 본 사람의 문화권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르게 묘사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어느 시대에나 유령은 존재했고, 죽은 자는 산 자를 통해서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책이 있어 읽게 되었다.

유령의 역사는 곧 사람의 역사


 
 유령의역사
 유령의역사
ⓒ 장클로드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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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역사'는 프랑스의 사학자가 중세 유럽의 유령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인 장클로드 슈미트는 프랑스의 역사학자로, 중세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성직자와 교부, 평신도의 기록물을 모아서 중세 유럽 사람들이 유령을 어떻게 바라봤고 기독교는 유령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를 연구하여 이 책을 저술했다.

저자는 유령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유령에 관한 기독교의 입장에 접근하고, 중세 기독교인 사이에 퍼져있던 유령에 대한 해석을 설명한다. 유령이 없는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름 웃기기도 하고 창의력이 넘치는 해석들이라서 내가 제대로 본 것이 맞나 눈에 힘을 주고 읽게 된다.

의외로 중세 초기에는 죽은 자가 세상에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는 해석이 강했다고 한다. 죽은 자가 돌아온다는 생각이나 의식이 기독교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이교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권위있는 성직자들이 이를 뒷받침했다.

교부로 유명한 기독교 학자 아우구스티누스도 산 자와 죽은 자가 직접 접촉할 가능성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그는 기독교도가 이교도처럼 죽은 자의 유해에 관심을 기울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교회 문헌 역시 유령에 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러나 11세기를 경계로 유령에 대한 유럽인의 태도는 극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수도사나 성직자들이 유령을 다룬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13세기에는 평신도들도 이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아무 유령이야기나 중세 성직자들이 다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책에 따르면, 중세에는 낮에 본 환시 속의 유령 이야기가 믿을 만하다고 여겨졌다고 한다. 중세의 유령은 보통 꿈이나 환시 속에서 나타났다.

중세 초기에는 꿈이 대체로 매우 미심쩍은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꿈은 교회 권위의 중개 없이도 숨겨진 진실에 직접 접촉하는 수단이 된다. 이를 부정적으로 본 성직자들은 꿈을 나누어 성인이나 국왕은 신에게서 비롯된 꿈의 수혜자로 여겨지도록 하고, 평범한 사람은 악마가 만든 환영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깨어있으면 당연히 악마가 꾸미는 밤의 음모로부터 자유롭다. 따라서 환시는 진실하다는 주장이 옳다고 여겨졌다. 깨어있을 때의 환시 속에서 본 유령 이야기가 개인적인 꿈속 유령이야기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묘한 순위가 정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이름난 사람들이 전달하여 신빙성을 보증했다.

이데올로기로써의 유령이야기

유령이야기는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었다. 기독교 성직자들이나 수도원은 죽은 뒤 나타나서 수도원에 기부하라고 명했다는 유령이야기를 하나의 재산처럼 가지고 수도원 선전에 사용했다. 고리대를 하거나 마상 창 시합을 즐기던 기사가 사후에 고통 받는 이야기는 기사를 훈계하는데 사용되었다. 유령이야기는 도덕의 규범을 제시하는 동시에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다.
 
유령이야기는 죽은 자의 이 세상으로의 귀환이나 연옥에서의 고난에 관한 다양한 신앙의 양식을 표현하고, 동시에 그러한 양식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도덕과 행동의 규범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도 유령이야기의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발달에 크게 기여한 것도 있다. -283P
 
유령들은 친족에게 나타나서 자신이 고통 받고 있음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유령들은 기독교도로서의 정상적 죽음이 가로막힐 가능성을 표현했고, 어떤 경우든 죽은 자가 돌아오면 대가를 받고 죽은 자를 위한 중재를 행하는 교회가 이익을 거두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장례 의식이 중요해지고,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의 수가 늘고, 물질적인 신앙심이 형성되면서 연옥, 면죄부, 미사를 조합으로 하는 교회중심의 경제구조가 생겼고 유령이야기가 그 구조를 작동시키는 장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령이야기가 교회의 훌륭한 도구로 작동하여 규범의 제시, 경제구조의 성립이라는 목표를 성공시킨 셈이다.

유령은 사람이 죽어서 변한 것이지만, 살아있는 인간과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산 사람에 의해 기록되고, 그들의 모습과 행태는 인간에 의해 해석된다. 이 책은 죽은 유령들의 운명과 이야기를 세상을 살아가는 살아있는 사람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가족과 친족의 관계, 삶과 죽음, 도덕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다. 중세 유럽인들이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를 바라본 태도는 그들의 가치관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현실에 없는 존재가 현실의 사람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유령의 역사 - 중세 사회의 산 자와 죽은 자

장클로드 슈미트 (지은이), 주나미 (옮긴이), 오롯(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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