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다. 야구(롯데 자이언츠), 축구(부산 아이파크), 농구(KT 소닉붐) 등 국내 주요 프로스포츠 구단들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야구의 최동원-박정태-이대호, 농구의 허재-김영만 축구의 안정환-김주성-송종국 등 굵직한 거물급 스타들이 부산 연고팀을 거쳐갔다. 항구도시 특유의 화끈한 분위기와 맞물려 팬들의 응원문화 역시 열정적이기로 유명하다.

부산 스포츠의 최전성시대는 역시 1990년대였다. 야구의 롯데(1992, 한국시리즈 우승), 농구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1997, 현 울산 현대모비스), 축구의 대우 로얄즈(1997, 프로축구 3관왕) 등 부산 연고팀들이 모두 해당 종목에서 정상에 오른 마지막 시기였다.

하지만 우승 시즌보다 팬들에게 더 깊은 추억을 남긴 시기는 세기말이었던 98-99년이었다. 기아가 2년 연속으로 대전 현대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친 것을 비롯하여 롯데와 대우도 각각 한국시리즈와 챔피결정전의 고비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당시 부산팀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기아는 1997-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허재의 부상투혼을 앞세워 열세라는 예상을 뒤집고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치렀다. 허재는 경이로운 활약을 인정받아 팀이 준우승에 그쳤음에도 챔프전 MVP를 수상했다. 준우승팀에서 MVP가 나온 것은 허재가 유일하다.

롯데는 한화에 1-4로 완패한 한국시리즈보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 명승부가 더 화제를 모았다. 최종전에서도 연장까지 치르는 대혈투를 벌였던 양팀은 치열했던 경기만큼이나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관중들의 오물투척과 이에 대응한 펠릭스 호세의 방망이 투척 사건 등 여러 화제를 낳으며 KBO리그 플레이오프 역대 최고 명승부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다.

대우는 99년 수원과의 프로축구 챔피언결정전 2차전 연장전 당시 외국인 선수 사샤의 '신의 손'이 골든골로 이어지며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샤샤는 이 사건의 여파로 인해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도 MVP는 준우승팀인 부산의 안정환에게 넘어가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1999년은 부산 프로스포츠 연고팀들이 나란히 결승무대까지 진출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해가 되었다. 90년대 후반을 강타한 IMF 환란의 여파로 인하여 기아는 모기업이 모비스로 바뀌고 연고지도 울산으로 이동했으며, 대우도 그룹부도로 인하여 축구단이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었다. 롯데는 연고지와 모기업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2000년대 초반 8888577로 대표되는 극심한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며 부산 스포츠는 더 이상 90년대와 같은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롯데는 지난해 꼴찌에 그치며 이미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프로야구 역대 최다 꼴찌 기록을 9회로 늘렸다. 롯데는 1992년 마지막 우승 이후 27년째 더 이상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서울 연고의 LG(1994년)의 25년보다도 긴 KBO리그 역사상 최장기관 무관 기록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것도 1999년으로 역시 20세기의 기록이다. 고 김명성 감독-임수혁 선수 등이 시즌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는 아픈 사건도 있었다.

대우를 계승한 부산 아이파크는 2000년대이후 중하위권팀으로 전락하며 그저그런 역사를 이어가다가 2015년에는 기업구단으로는 최초로 2부로 강등당하는 초유의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7년에는 2부리그에서 팀의 승격 경쟁을 이끌던 조진호 감독이 롯데의 고 김명성 감독처럼 시즌중 급성 심장마비로 별세하는 일도 있었다.

부산 농구의 역사는 복잡하다. 프로 원년팀이었던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울산으로 이전하여 현대모비스로 재창단된 이후 코리아텐더가 광주와 여수를 거쳐 2003년부터 부산의 새로운 주인으로 정착했다. 코리아텐터는 다시 KTF에 인수됐고 2009년부터 KT 소닉붐이라는 현재의 팀명으로 자리잡았다. KT는 2007-07시즌 챔프전 준우승, 2009-10시즌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선전했지만 끝내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2010년대에는 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라는 암흑기를 보내며 흥행 면에서도 비인기 구단이라는 꼬리표를 벗어나지 못했다.

2020년은 부산 스포츠에 있어서 명예회복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축구의 부산 아이파크가 지난 2019시즌 강등 플레이오프를 거쳐 1부 승격에 성공하며 5년만에 K리그1으로 돌아오게 됐다. KT는 서동철 감독과 '뉴 에이스' 허훈을 중심으로 지난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데 이어 올해도 현재 18승 20패로 6위에 올라 2년연속 플레이오프행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롯데는 지난 스토브리그 동안 성민규 단장과 허문회 감독을 새롭게 선임하며 수뇌부를 새롭게 물갈이했다. FA 안치홍과 노경은의 영입 등 활발한 전력보강과 메이저리그식 운영시스템의 도입을 통하여 체질개선을 선언하며 올겨울 스토브리그에서 단연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포츠 팬들에게는 유명한 은어로 '리즈 시절'이라는 말이 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팀이던 리즈 유나이티드가 한때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하고 몰락한 것을 빗댄 표현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스포츠 팬덤과 인프라를 보유한 부산의 잠재력은 국내 프로스포츠의 흥행에도 엄청난 변수로 작용한다. 올해는 부산 프로팀들이 20세기의 흘러간 추억에서 위안을 삼는데 벗어나 '21세기의 강호'로 부활하는 모습을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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