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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유발 하라리가 극찬한 명상 10일 과정, 직접 해보니 (http://omn.kr/1k8xk)

이전 글에 이곳을 소개하며 고요한 숲속의 리조트 같다고 표현했는데, 하루 대부분을 지내는 메인 명상홀에 앉아 있노라면 영상이 없는 흰 스크린의 극장 같다.

백석은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며  자신의 심경을 반조해 놓았다.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 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메인다."

낯설고 먼 이국 땅 명상 센터에서 착실하게 묵언하고 좌선하며 일주일을 보내노라니, 내 마음의 하얀 스크린에도 오감이 총 동원돼 가장 갈애하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은 부귀도 영화도 아닌 청도의 단골 돼지국밥집이다.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명상 중 순식간에 공간이 이동해 그 집에 앉아 돼지국밥에 소주 한잔 걸치는 영상이 영적 계시처럼 오고 간 것.
   
유발 하라리는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20대 때 고엔카가 지도하는 10일 코스 위빠사나 명상을 처음 접했다.

"(명상 수련을 하며) 내가 숨 쉬는 것을 관찰하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전까지 내가 읽었던 모든 책과 대학 시절 참석했던 모든 수업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정신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몰랐으며 그것을 통제할 능력도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내 숨이 콧속을 드나드는 것의 실체를 관찰하다 보면 10초도 지나지 않아 정신은 흩어져 방황했다. 그것은 눈이 번뜩 뜨이는 체험이었다."
 
실용적이고 명상에 이롭게 지어졌다.
▲ 센터 건물 실용적이고 명상에 이롭게 지어졌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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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련 과정 이후 매일 두 시간씩 명상을 시작했고 매년 한두 달간 명상 수련 휴가를 간다는 유발 하라리. 그는 명상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라며 "이런 수행을 통해 얻는 집중력과 명정함이 없었다면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고 피력한다.

그의 책을 읽고 명상 여행을 계획한 내가 고엔카 위빠사나 10일 과정에 참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가 가르치는 10일 코스는 초심자들이 익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수행법이다. 첫 사흘간 진행된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은 내가 해오던 방식이라 익숙한 시간이었다.

감각을 관찰하다

넷째 날부터 시작된 위빠사나 수행인 '감각에 대한 관찰'은 처음 접해 보는 것이라 어려웠다. 이 방식은 신체의 모든 부분, 머리 끝 정수리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마치 스캔을 하듯 부분별로 옮겨가며 피부에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아홉째 날까지 이 방식을 반복 심화한다. 이 방식을 처음 시도한 날, 나는 마음의 조급함과 산만함으로 관찰이 힘겨웠다. 마치는 날 즈음에야 어줍게나마 능숙해져 호흡 명상을 할 때보다 몸의 느낌이 세밀해지고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혀져 한층 몰입되는 경험을 했다. 마치 온몸과 정신을 샤워하고 정화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남방 상좌부 전통의 명상은 사념처(四念處), 즉 몸, 느낌, 마음, 법 네가지 사띠(sati, 마음 챙김) 수행을 한다. 고엔카 선생의 10일간 가르침은 느낌에 대한 마음 챙김인 수념처(受念處)에 해당된다.

그는 감정의 기복이 없는 평정심(平精心)을 강조한다. 평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감각을 관찰하면 그 감각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무상, 無常)을 알아차리게 된다는 뜻이다. 힘겨운 고난의 시간을 만나면 '이 또한 지나 가리라', '아닛짜(Anicca, 무상), 아닛짜' 하고 되뇌라고 알려줬다.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이곳을 떠난다.
▲ 코스를 무사히 마치고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이곳을 떠난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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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숲속 극장에서 마음 속 평화를 찿아 이리저리 헤메다 평화의 'ㅍ'자도 보지 못한 채 10일이 흘렀다. 참가자 대부분은 방콕행 전세 버스를 탔고 나는 몇 명의 태국인들과 칸차나부리행 미니버스를 타고 나왔다. 버스가 휴게소에 들르자 일행들은 그동안 센터에서 못 먹은 군것질 거리를 사서 먹은 뒤 행복하게 웃으며 내게도 맛을 보라며 나누어 주었다.

동석한 동갑내기 남자는 쾌활하고 농담을 좋아했다. 초대형 커피를 사들고 와 한 모금 마시더니 살았다는 듯 안도의 미소를 띄우며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족들 떠나 홀로 산 지 20년째다. 몇 년 전 번아웃(Bur-out)을 겪었다. 정말 열심히 일만 하고 산 거다. 극도의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담당 의사의 추천으로 명상 코스를 접했고 매년 참가하고 있다. 아마존(태국 대표 커피 브랜드)이 내 기분을 업 시켜주는 명약이라면 고엔카는 내 마음을 안정시키고 삶의 조화를 찾게 해준 명의다." 
 
전망 좋은 카페들이 많다.
▲ 칸차나부리 강변 전망 좋은 카페들이 많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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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과 소주가 이렇게나 맛있었다니

여행자 거리 초입에 한국 식당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꿈에 그리던 돼지국밥은 없다. 대신 삼겹살과 소주를 이틀 식비와 맞먹는 거금 400바트를 투자해 주문했다. 상추에 고기 두 점, 마늘, 쌈장을 찍은 고추를 얹어 쌈을 완성한 뒤 소주를 한잔 걸치려니 손이 다 떨렸다.

소주를 마시고 카! 외친 뒤 쌈을 입안 가득 넣고 씹었다. 으음, 으음, 우아! 행복감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명상할 때 그토록 집중이 안 되더니 삼겹살과 소주가 들어가자 하나 하나 관찰이 되고 완전히 몰입이 이루어졌다(명상을 한 덕분일 수도).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삼겹살 한 판과 소주 한 병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운다.
▲ 칸차나부리 UN군 묘지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운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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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차나부리를 찾는 여행자라면 한번쯤은 UN군 묘지에 들려 추모하는 시간을 가진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왔던 '죽음의 철도' 공사에 동원된 후 사망한 전쟁포로 중 7000여 구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대부분 20, 30대 초반에 생을 마감한 젊은 영혼들의 묘비를 읽고 있노라면 나와 대면 한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가슴이 먹먹해진다.

콰이강의 다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두 다 죽는다. 메멘토모리(Mementomori),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격언처럼 나 또한 언젠가 죽는다는,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묘지를 둘러보며 되새기게 됐다.  

명상은 무지(無知)에서 지혜(智慧)로 나아가는 길이다. 번뇌 망상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지 못하면 무지이고 알아차리면 지혜다. 두군데 명상센터에서 만난 태국, 외국인 명상가들이 힘겨운 명상 수련을 하는 것은 행복의 높은 차원인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지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찾아든다. '조그만 희망도 다 버린 자만이 행복하다'는 인도 속담처럼 바라는 것이 없을 때 마음은 비로소 평화롭고 고요해지는 참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한국 선가의 큰 스승이셨던 전강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찾는 법이 참선(명상)이다. 이 법은 가장 쉬운 일이지만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는 것이기에 어리석은 자는 믿지를 못한다. 믿지 못하는 자는 어쩔 수 없이 상견법(相見法, 일체의 형상이 있다고 보는 것)에 처박혀서 죄(罪)만 짓지 별도리가 없다. 깨닫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으면 그놈이 각(覺)이다."

*고엔카 선생의 가르침이 궁금하신 분은 김영사에서 펴낸 <고엔카의 위빳사나 10일 코스>와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을 읽어 보시길.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는 곳은 한국에도 한 곳이 있다. 전북 진안에 있는 '위빳사나 명상센터 담마코리아'(korea.dhamma.org)에서 10일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한두 달 전에 온라인으로 미리 신청해야 한다.

태그:#명상 여행, #태국, #칸차나부리, #칸카나 담마 위빠사나 센터, #고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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