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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우한을 다녀오고 쓴 르포기사 사진이 1998년 10월 우한 스카이라인이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 처음 우한을 다녀오고 쓴 르포기사 사진이 1998년 10월 우한 스카이라인이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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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국 우한을 처음 찾은 것은 1998년 10월 2일이다. 날짜가 명확한 이유는 그 전날 중국 궈칭지에(국경절 10월 1일)에 베이징 톈안먼 광장을 보고 바로 밤 기차를 탔기 때문이다. 밤새 입석 열차를 타고 창지장(長江 양쯔강)의 중간인 우한에 도착했다.

목적은 100년 만에 겪은 대홍수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7월부터 시작된 홍수는 9월초까지 70여 일이나 계속됐다. 공식 집계된 피해를 보면 인명 피해는 이재민 2억 2300만 명, 사상자 3천여 명, 재산 피해액은 200억 달러(우리 돈으로 대략 23조 원)에 달했다.

중국 정부는 30여 만 명에 달하는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로 인간 제방을 만들어 물을 막는 등 자원을 총동원해 54년 대홍수(당시 사망자 3만3천명)에 비해 적은 희생으로 사태를 마무리 했다.

이른 아침에 어렵사리 차를 구해 홍수로 수몰된 마을을 취재하고 황학루 등도 돌아봤다. 우한 취재를 마치고 일반 중국인들이 타는 창지앙 여객선을 타고 난징으로 향했다. 이 배 안에서 여러 중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사실상 마지막 발행호가 된 <사회평론 길> 98년 11월호에 '중운의 사랑으로 재앙을 딛고 일어서는 중국인들'이라는 르포기사를 실었다. 이 중 한 부분이다.

"물론 급격한 자본주의로 본연의 인정을 잃어가는 중국인들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원의 힘이 아니다. 중원의 힘은 창강의 대홍수를 너끈하게 이겨내고 이방인을 품어 안는 창강변의 그 민초들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우한에 그때 못지 않은 위기가 닥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발원지로 세계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대응을 잘못했다. 중국 정부가 이 감염을 공식 발표한 1월 20일 전날에 4만 명이 참석하는 춘지에(설날) 행사가 열렸다. 작은 모임도 막아야 할 상황에서 저우셴왕(周先旺) 시장이 주관한 행사가 열린 것이다. 이 행사로 저우셴왕 시장은 정부의 처결을 기다리고 있다.

사건 초기 우한이라는 도시를 두고 여러 가지 말이 오갔다. 심지어는 삼국지의 주 무대인 형주가 우한이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틀렸다. 역사적으로 우한은 초한지의 영웅 항우가 중심 거점으로 둔 곳이다. 훗날 항우를 기리며 두목이 '강동자제다재준'(江東子弟多才俊 강동의 아들들은 인재가 많다)라고 한 것에서 봐도 이곳이 인재가 많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의 중심지는 우한에서 조금 떨어진 창사 쪽이지만 우한까지 한 영역이었다. 적벽대전의 중심무대인 치비(赤壁)가 창지장 상류 100km 지점이다. 이곳은 둥팅후(洞庭湖 동정호)와 창지앙이 만나는 데 적벽대전 유적지인 화용도(華容道) 등이 유적지가 흥미롭게 펼쳐지는 곳이다. 또 중국 4대 누각의 하나인 웨이양로우(岳阳楼 악양루)도 170km 정도 거리다. 이곳을 주변으로는 굴원, 이백, 두보, 최호, 맹호연 등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다녀갔다.

근대에서 들어서도 우한은 다양한 역사의 무대였다. 청말에는 한코우(汉口)가 양무운동(洋务运动)으로 인해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후 1911년에는 중국 봉건왕조를 무너뜨리고 민주정부를 만든 신해혁명(辛亥革命)의 발상지가 된다.

우리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민당의 거점인 우한에서 1937년 잠시 머물다가 더 아래에 있는 창사로 옮겼다. 1938년 10월 10일에는 김원봉이 중심이 되어 우한에서 '조선의용대'가 창설되기도 했다.

우한은 '지우셩통취'(九省通衢 아홉성을 연결하는 사통발달)라는 말이 어울리는 중국 중원의 교통 요지다. 2019년말 통계에 따르면 이 지역 인구는 908만3500명, 유동인구 510만3000명으로 합치면 1419만 명이다. 이것은 우한의 인구일 뿐 이번 일이 벌어진 후베이성 전체를 따지면 인구는 6000만 명이다.  
 
우한 창지앙에서 낚시하는 시민 우한은 강과 도로, 철도 만나는 교통 요지다
▲ 우한 창지앙에서 낚시하는 시민 우한은 강과 도로, 철도 만나는 교통 요지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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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이 교통 요지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 광둥으로 가는 징광셴(京廣線) 철도와 도로가 우한을 거친다. 상하이에서 출발해 산샤를 거친 창지앙 수운의 중간 기착점도 우한이다. 현재 창지앙 주변에서 동서로 이어지는 고속철도 망에서도 우한의 위치는 중요하다. 

우한이 교통 요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진출이 많은 지역은 아니다. 우선 우한은 충칭, 난징과 더불어 중국의 3대 화로(火爐)로 불릴 만큼 여름이 덥다. 기온도 기온이지만 주변에 호수와 강, 습지가 많아 습도가 높다. 여름을 나기 힘들다.

교통요지인 우한의 모든 접근로가 막혔다. 중국정부는 허가받지 않은 출입을 금하고 있다. 말 그대로 중국 교통의 심장을 막아버린 상황이다. 당연히 중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우한은 '동방의 시카고'(东方芝加哥)로 불리는 공업 중심지다. 중국의 유명 자동차 기업인 동펑그룹(东风集团)이 있고, 동펑과 합작한 GM 등 10여 개의 외국 자동차 회사가 진을 치고 있다. 우한의 지역 총생산이 1조 4800억 위안(우리 돈 250조 원 가량)이고, 후베이성의 지역 총생산이 4조 5828억 위안(우리 돈 770조 원 가량)이다.  
 
우한에 빠르게 짓는 병원 2월 5일 완공 목표로 700~1000 명 수용시설인 훼옌산병원
▲ 우한에 빠르게 짓는 병원 2월 5일 완공 목표로 700~1000 명 수용시설인 훼옌산병원
ⓒ 신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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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아직까지 정확한 위험도와 치사율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1월 20일 이후 중국 정부는 우한을 봉쇄하면서 본격적인 질병 통제에 나섰다. 부족했던 치료시설을 보강하기 위해 700명에서 1000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훠선산병원(火神山医院)을 2월 5일까지 완공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또 군대는 물론이고, 각종 병원이나 의료 기관도 우한 돕기에 나서고 있다. 우한도 향후 감염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차단해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실시간 감염 정보에 따르면 1월 31일 오전 10시 25분까지 감염자는 9721명이고, 유사증상자는 1만 5238명, 사망자는 213명이다. 그래프를 보면 환자의 숫자는 완만히 상승하고 있다. 

2002~2003년 벌어진 사스 사태를 극복하는데 공헌한 중국국가위생건강관리위 종난산(钟南山) 원사는 2월 4~7일 사이를 정점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사스보다는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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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공무원, 기업 임원 등을 경험하고 노마드로 복귀. '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4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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