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 (주)쇼박스


*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90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논픽션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다. 실제로 일어난 1979년 대통령 암살 40일 전을 재구성했다. 하늘 아래 대통령 그리고 대한민국의 권력 이인자들이었던 부장들의 암투를 그렸다.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과 <마약왕> 사이의 묵직함과 어두움을 적절히 배합한 안전한 연출을 보여준다. 우민호 감독의 욕망 3부작에 마지막에 속하지만 뜨뜻미지근한 온도가 느껴진다. <내부자들>이 빨간색이었다면 <마약왕>은 검은색, <남산의 부장들>은 회색의 모노톤을 유지한다.

10.26 대통령 암살사건을 향한 국민의 엇갈린 평가를 우려한 듯 실존 인물 김재규의 해석 또한 뚜렷하지 않다.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내놓기보다는 감정 수위를 적절히 조절했다. 어떤 인물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화하도록 유도했다. 철저히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사건을 풀어내는 것보다 사람들 간의 갈등과 심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부분이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다.
 
 영화 <남산이 부장들> 스틸컷

영화 <남산이 부장들> 스틸컷 ⓒ (주)쇼박스

 
과연 영원한 관계는 성립될 수 없는 걸까? 박통(이성민)의 서슬 퍼런 대사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패턴이 반복되면 나 또한 부르르 떨려왔다. 이 말은 곧 사랑받고 내쳐짐을 의미했고, 토사구팽의 다른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박통의 말 한마디에 모든 일이 좌지우지되는 18년간의 독재. 이제는 나라 안에서도 밖에서도 권력의 내리막을 감지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거사를 진행한 것은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이다. 그는 미국 청문회를 통해 전 세계에 박통 정권의 실체를 고발하게 된다.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내부에서는 박용각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에 현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 박통의 오른팔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 (주)쇼박스

 
영화는 박통의 충성 세력과 반대 세력 간의 미묘한 갈등을 담고 있다. 권력의 시녀들은 발 빠르게 누구의 편에 서느냐를 고민해야 했다. 아래로는 치고 올라오는 곽상천을 위로는 찍어 누르는 박통의 힘 사이에 선 가운데 김규평은 선택해야만 한다.

친구까지 제거해가며 박통과 혁명을 위해 뜻을 모았던 김규평은 서서히 자신이 박통과 멀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거칠게 몰아붙이는 파도 사이에서 허우적 거린다. 이인자들이라고 자부했던 남산의 부장들은 누구도 믿지 못한다. 마치 끊임없이 수건돌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 적당히 씹다가 단물 빠지면 버리면 껌이 될 수도 있다. 그전에 내가 먼저 치냐 마느냐를 계산하는 눈치싸움이 계속된다.

혁명은 혼자서 할 수 없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힘을 모을 때야 비로소 성립하게 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는 균형을 잃고 깨지기 마련이다. 박통을 향한 김규평의 충성심은 한계를 드러낸다. 처음과 달라진 혁명 목적에 몸서리치게 된다. 믿음을 잃어버린 관계는 켜켜이 불신을 쌓아갔고 흔들리는 총부리를 거두지 못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 (주)쇼박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매일을 치열하게 싸운다. 그때마다 선택한 사소한 결과의 여파까지 끊임없이 고민할 때가 있다. 개인 스스로가 행동의 책임감도 높아진 오늘날,  그때 그 사람들은 깊은 고민을 않았던 것 같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핵심 세력이 놓쳐버린 안일한 처사다. 때문에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고 목숨을 걸고 혁명한 사람들의 결과 또한 겸허히 받아 들여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듯 살 떨리는 이유는 뭘까. 불은 산을 다 태워야 끝난다. 화마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 너무 큰불은 막을 수 없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쓰고 태워야 끝이 났다. 막을 수 없는 산불을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에 '만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김규평과 박통이 그때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어땠을까? 김규평이 거사를 치르고 육본이 아닌 남산으로 향했다면 어땠을까? 순간의 선택이 부른 결과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남산의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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