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조 래빗> 포스터

영화 <조조 래빗>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어릴 적 만들어낸 상상 속 친구가 있었는가. 우리는 자라면서 안타깝게도 그 친구들과 하나둘 이별하게 된다. 영화 <조조 래빗>은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상상의 존재를 소환한다.

<조조 래빗>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포함해 6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어 있는 범상치 않은 영화다.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는 유년 시절 읽었던 <닫힌 하늘>을 각색했다. 연출뿐만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히틀러로 변신해 연기까지 선보였다. 영화를 관통하는 분위기는 코미디를 가장한 사회비판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의 참상은 서서히 커지는 악의 균열을 초래한다.

조조의 첫 번째 멘토 엄마 로지
 
 영화 <조조 래빗> 스틸컷

영화 <조조 래빗>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차 세계대전 막바지 독일에 사는 열 살 꼬마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나치광이다. 독일의 자랑스러운 소년단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마음 여린 소년일 뿐이다. 겁쟁이라 놀림당하지만 자신의 영웅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거침없다.

조조는 엄마와 단둘이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는 밖에서는 강하지만 조조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친구 같은 사람이다. 열 살 조조에게 전쟁이 좋다 나쁘다는 이념적인 교육을 하기보다 "삶은 신의 선물이니 즐겨라"라는 조언을 하는 멘토기도 하다.

로지는 마치 전쟁을 일종의 게임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아빠(로베르토 베니니)를 떠오르게 하는 캐릭터다.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인 로지는 전쟁을 반대하는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아마 남편 또한 운동을 하다 죽은 듯하지만, 조조에게는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있다고 둘러댄다.

그는 전시(戰時)라는 공포를 전혀 알 수 없게끔 깊은 사랑과 뛰어난 패션 감각, 따스한 분위기를 영화 전반에 녹아들게 하는 핵심 인물이다. 식탁은 스위스 같은 중립지대이니 정치 얘기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이데올로기, 종교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삼간다.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춤을 추길 좋아하고, 아빠 역할극도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유머를 품고 있다. 소년단에서 잘 못 던진 폭탄으로 얼굴에 상처를 입은 조조에게도 상처는 곧 아물기 마련이라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것을 당부한다.

조조의 두 번째 멘토 유대인 엘사
 
 영화 <조조 래빗> 스틸컷

영화 <조조 래빗>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로지는 조조에게 말 못 할 비밀을 품고 있었다. 바로 유대인 소녀를 숨겨주고 있었던 것. 조조는 벽 속에 사는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와 우연히 마주한다. 마치 <안네의 일기>속 안네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귀신인 줄 알 만큼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었지만 유대인 소녀가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자 당황한다. 조조는 순결한 피가 흐르는 아리안 족 만이 최고이며 불결한 유대인은 없애 버려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체 없는 공포, 맹목적 충성은 히틀러라는 괴물을 만들어 냈다.

조조는 서서히 엘사에게 마음을 연다.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유대인에 대해 알려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엘사의 남자친구 네이선을 가장해 편지를 쓰기도 한다. 엄마가 말해도 이해 가지 않았던 마음에 나비가 생기는 까닭도 스스로 깨친다.

조조의 세 번째 멘토 상상의 친구 히틀러
 
 영화 <조조 래빗> 스틸컷

영화 <조조 래빗>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조조가 히틀러는 찬양하는 이유는 순수하기 때문이다. 조조는 아버지가 없어 히틀러를 보고 배울 롤모델로 삼았다. 당시 독일에서 가장 멋지고 강한 인물은 히틀러였기에 이유를 떠나 단순히 닮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비록 살아있는 토끼를 죽이라는 명령에 불복종해 겁쟁이 토끼 '조조 래빗'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다. 히틀러는 하찮아 보이는 토끼라도 가족을 위해 매일 당근을 사냥하는 당근 사냥꾼이라는 해석으로 조조의 상처를 위로한다.

상상 속의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 히틀러는 열 살 꼬마에겐 삶의 버팀목이다. 다행인 것은 조조가 히틀러를 친구이자 영웅으로 삼았지만, 그래도 좋은 어른들을 통해 정의가 무엇인지 배워간다는 점이다.

조조는 전체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독일 국민을 대변한다. 유대인은 머리에 뿔이 달리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괴물, 여왕 한 마리가 알을 낳아 번식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 믿고 따르는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다. 히틀러와 나치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며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각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철저하게 세뇌당해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당시 독일인들 같다.
 
 영화 <조조 래빗> 스틸컷

영화 <조조 래빗>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래서 직접적인 모습보다 간접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길거리에 교수형을 당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전시되고, 전쟁으로 불구가 된 사람들과 수영장에서 치료를 받으며, 게슈타포들이 보통 사람처럼 그려지는 등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다.

영화 <조조 래빗>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쟁 속에서 판타지를 차용해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사랑이 필요함을 힘주어 말한다.

조조는 처음에는 신발 끈 하나도 혼자 묶기 힘든 아이였지만 스스로는 물론, 엘사의 신발 끈까지 묶어주며 성장한다. 신발은 각각 신발 끈을 묶어야만 제대로 걸어갈 수 있다. 두 짝의 신발 끈을 서로 묶었을 때는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결박 상태가 된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벽장 속에 숨어 살던 엘사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갈 때의 자유. 살면서 얼마나 자유가 소중한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자유. 사랑과 자유는 보이지 않아 알지 못할 뿐 늘 존재하고 있었다.

마음에 생긴 나비의 날갯짓이 만든 나비효과는 단단한 산도 움직일 수 있다. 세상은 아이러니한 일들의 연속이고, 누구도 변화 앞에서 버틸 수 없다. 판도라가 열고 닫았던 상자 속의 남은 희망처럼. 나비를 쫓아가는 여정이 아무리 고될지라도 사랑이 있어 오늘도 견디는 건 아닐까. 미움이 만들어 낸 전쟁을 끝내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다. 사랑이 이긴다.
조조래빗 타이카 와이티티 스칼렛 요한슨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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