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산에 살 때 알게 된 남아공 출신 친구, 아미나가 한국에 왔다. 우리는 토요일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아미나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지나 카페로 들어온 아미나는 나를 찾느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나를 먼저 발견해줬으면 해서 모른 척 곁눈질로 살폈다. 

"혜린?"

아미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손을 잡고 선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미나는 내 외모가 많이 달라져서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했다. 특히 내가 전에는 작은 것에도 깔깔 웃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여전히 수다스러운 친구다.

3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동안 나는 가슴까지 오던 머리를 숏커트로 잘랐다. 
 
 나는 어느 순간 헤어 스타일이고 뭐고 다 귀찮아져 최소한만 남기고 머리칼을 잘라버리기로 했다.
 나는 어느 순간 헤어 스타일이고 뭐고 다 귀찮아져 최소한만 남기고 머리칼을 잘라버리기로 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2년 차 직장인이었던 나는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바쁘게 일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치이고, 여기저기 터지는 불만을 수습하는 게 일이었다. 5년 만났던 애인과 이별까지 겪었지만, 마음을 다독일 시간이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하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기로 했다. 웨이브를 했다가 폈다. 탈색을 두 번 하고 애쉬카키색으로 염색했다가 빨간색으로 바꾸고, 또다시 갈색을 입혔다. 프랑스에서 나온 비싼 샴푸로 머리를 감아도 매끄러워지지 않을 때까지 머리를 혹사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헤어 스타일이고 뭐고 다 귀찮아져 최소한만 남기고 머리칼을 잘라버리기로 했다.

미용실에 들어서서 머리칼을 잘라 줄 선생님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는 잘 정돈한 갈색 파마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깔끔한 체크남방 위에 청색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머리를 자르는 손길이 신중해 보였다. 믿음직스러웠다.

순간 준비가 완벽하게 된 선생님에게 지푸라기가 된 머리를 맡기기 조금 부끄러웠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어서 머리카락이 엉망이 되었고, 또 이유가 있어서 파격적인 스타일을 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선생님은 처음 하는 스타일이니 귀 옆을 살짝 밀고, 윗머리로 덮는 것으로 시작해보자고 했다.

헤어 스타일이 바뀐다고 이렇다 저렇다 간섭할 애인도 없어 선생님에게 머리를 맡겼다. 먼저 길이부터 다듬었다. 이윽고 머리를 밀어야 할 타이밍이 되었을 때 한 번 더 물었다.

선생님 :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 "네 괜찮아요."


잠깐 사이에 왼쪽 옆이 시원해졌다. 일수꾼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러나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선생님 : "여자분들이 이런 스타일을 잘 안 해서 가끔 이런 머리를 하면 재미있어요."
: "요즘에는 어떤 스타일을 많이 해요?"
선생님 : "아무래도 여자분들은 긴머리에 웨이브를 제일 많이 하고, 조금 변신하려면 단발커트를 하죠."
: "새로운 스타일은 잘 안 해요?"
선생님 : "남자분들은 가끔 지드래곤이나 송민호 스타일을 한다고 가져오세요."
: (고개를 절레절레)
선생님 : "머리를 흔드시면... 두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면 대부분 포기하세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머리가 완성되었다. 흐뭇해하는 선생님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 도착해 바뀐 헤어스타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다시 착잡해졌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난감한 스타일은 별로 없을 테니, 앞으로 어떤 머리에든 도전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시간이 약이라고 계속 보니 익숙해졌고, 반삭한 부분을 덮은 머리카락을 열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몇 달간 그 스타일을 고수하다가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쇼트커트'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하고 싶었던 머리는 배우 고준희의 스타일이었다. 그렇지만 반삭을 하고선 이번엔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해달라고 말하려니 조금 창피했다. 고준희 스타일 대신 멋있고 보이쉬한 스타일의 쇼트커트를 부탁했다.

나의 배포에 익숙해진 선생님은 긴말 없이 머리를 잘랐다. 머리카락이 툭툭 떨어졌다. 까만 머리카락이 바닥에 수북했다. 다음번에는 선생님이 해보고 싶어 하는 스타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쇼트커트 머리가 꽤 잘 어울렸다. 꽃미남 연예인들이 한다는 쉼표 머리도 해보고, 앞머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멋을 부려봤다.

편리한 점도 많았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10분이면 끝이 났다. 트리트먼트를 안 해도 언제나 머릿결이 좋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패션에는 제한이 생겼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와이드팬츠에 심플한 티셔츠만 입고 다녔다. 화장도 거의 하지 않고 눈썹만 그리고 다녔다.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자르러 가야 했지만 긴 머리 시절에 비하면 별로 수고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싱어송라이터 권눈썹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