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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아프니까 청춘 대신 기본소득]이 매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본소득을 요구하고 있는 청년들의 일상을 소개하고,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합니다[기자말]
애인은 있니? 연애 좀 해야지 - 10만원
취업 준비는 아직도 하고 있니 - 15만원
나이가 몇인데 슬슬 결혼해야지 - 30만원 

해마다 이때쯤이면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 친구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바뀐다. "저의 걱정은 유료로 판매하고 있으니 구입 후에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잔소리를 하고 싶으면 돈을 내고 하라는 뜻이다. 잔소리 메뉴판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잔소리는 덕담도, 염려도 아닌 지겨운 말일 뿐이다. 잔소리가 바꿀 수 있는 처지는 없기 때문이다. 설을 앞두고 잔소리가 지겨운 평범한 한 명의 청년으로서 세상이 허용하지 않았던 말을 뱉어보고 싶다. "걱정은 돈으로 주세요." 
    
온라인에서 회자되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
 온라인에서 회자되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
ⓒ 사연읽어주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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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은 했니?" "여자친구는 있니?" "남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명절이 아닐 때도 흔히 안부 겸 인사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말들이다. 질문을 던진 출제자의 의도에 맞는 답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애초에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들은 어떠한 사람들에게는 곤란함으로, 어떠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표현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생활이 복잡하듯이 우리의 삶도, 사랑의 모습도, 선택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질문들은 늘 단답형의 대답을 요구하지만 만약 우리가 질문들에 성실히 대답한다면, 답은 늘 서술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결혼을 언제 할 거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저는 결혼을 하는 대신 선인장을 기르며 살고 싶어요. 어떠한 한 개인과 영원한 관계를 약속하는 일이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에요."

단답형의 대답만을 허용하는 사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걱정해야 할 것으로 바꾼다. 사회에서 정상으로 규정된 방식 외의 사랑과 직업, 일과 인생을 선택한 순간 비정상인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회는 정작 진짜 걱정해야 할 상황에 대해서는 개인을 탓한다. 가난해서 원하는 삶을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올바른' 삶의 경로가 있다는 믿음은 그밖의 경로들을 생각해볼 여유를 잃게 만든다. 그 순간, 걱정은 할 수 없는 것을 강요하는 부당한 것으로 바뀐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족들과 행복한 명절을 보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다. 오히려 '가족들과도' 명절이 행복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 명절에 특히 강화되는 가족주의는 가족 내부에 권력을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 가혹하다. 가족의 화합을 위해 하고 싶었던 말을 꾹꾹 눌러 참는 것, 가족의 화합을 위해 무례한 질문들과 부당한 걱정들을 듣고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 고난을 겪는 것보다는 혼자 명절을 보내는 게 낫겠다고 선언하는 청년들이 넘쳐난다. 개인이 존중받을 수 있는 명절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개인보다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개인을 위한 복지, 기본소득은 가족 내 평등을 만든다
 
차례 시연을 하는가족 (자료사진). 이 기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차례 시연을 하는가족 (자료사진). 이 기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새로운 사회를 위해 사회의 최소 단위로서의 가족이 아니라 개인을 호명하자. 인간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존엄한 개인으로서 먼저 태어나기 때문이다. 허용된 삶 바깥의 삶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개인의 뜻이 충분히 존중받는 사회가 필요하다.

온통 가족 중심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복지, 통계, 제도들은 개인을 가족 구성원으로서만 상정하지 개인으로서 상정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개인은 결혼, 출산, 경력단절, 육아라는 고정된 삶만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정상적인 가족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 감추거나 포기해야 하는 꿈들은 너무나도 많다.

가족 중심으로만 주어지는 복지가 아니라 개인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개인을 사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기본소득은 당신이 누구든, 가족이 있든 없든, 나이가 어떻든 모든 개인에게 지급되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통장에 찍히는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만든다. 가족이 아니라 개인이 돈을 받고, 그 돈을 스스로를 위해서 쓸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낳을 것이다.

기본소득을 시작으로 많은 제도와 복지가 개인을 호명하는 방식으로 바뀐다면 우리는 다양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원하는 사람과 공동체를 꾸릴 수 있는 상상, 지겨운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었던 활동을 하는 상상, 폭력적이거나 원하지 않는 가족이 아니라 자신에게 잘 맞는 공동체를 찾아 나서는 상상을.

가족 내부 구성원들이 조금 더 평등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도 개인을 중심으로 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아버지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기존의 관계가 아니라 평등하게 자신의 가치관을 말할 수 있게 되면 어떨까. 그동안 경제권이 없었던 여성, 어린이, 청소년들이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가족 내부에서 권력이 없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질 것이다. 경제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에 돈을 무기로 휘두르는 폭력에 대항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용돈을 받지 않아도 된다면, 허락을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가꾸기 위해 투자할 수 있는 비용도 커질 것이다.

그리하여 부당한 걱정 대신 새로운 사회를 바라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사랑에 성별 따위가 장벽으로 놓이지 않아야 한다는 상식이 퍼져 있고, 개인의 성별을 마음대로 추측하지 않는 사회. 사회적으로 좋은 직업이라 규정된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지금도 늦지 않다.

명절의 분위기도 덩달아 바뀔 것이다. 가족 내부의 평등한 관계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경제력이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취업 여부보다는 취미를,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의 유무보다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토론을, 결혼 의사를 확인하기보다 원하는 방식의 가족 형태를 묻는 말은 충분히 가능하다. 기본소득은 명절을 행복하게 보낼 방식을 더 많이 상상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제는 호구조사와 다를 바 없는 방식의 걱정들을 멈추자. 걱정은 돈으로 줄 때 가장 좋다. 이왕이면 많을수록 좋다. 이왕이면 돈 많은 개인이 가족에게 나누어주고 생색내는 것보다 사회가 나누어주는 것이 좋다. 원하는 삶을 실제로 실현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력이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이번 설날에 가족들과 함께 그 방법을 고민해보자.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신민주씨는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상임위원장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태그:#기본소득, #명절, #잔소리, #가족,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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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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