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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여행가이드'란 직함을 가진 지 얼마 안 돼 첫 겨울, 비수기를 맞았다. 겨울에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헤맸다. 곧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를 환영하는 곳은 정말 많지 않았는데, '연령 무관'인 한 공고가 눈에 띄었다. 어떤 행사에서 2월까지 국제 관광객을 상대하는 업무였다. 지원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오랜만에 옷을 갖춰입고 면접장소로 향했다.

5분 일찍 도착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참가자들이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나보다 10살 이상 젊은 20대 학생들이 많아 보였다. 20명 넘는 인원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몇 명을 뽑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긴장했다. 사람이 많은 만큼 대기 시간이 좀 걸리겠거니 싶어 신문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우리를 안내하는 관리자 한 분의 호명에 두 명씩 짝을 지어 면접실로 향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분명 가나다 순이면 내가 김씨니까 순번이 그렇게 뒤는 아닐 텐데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이름만 불렸다. 결국 지각한 사람까지 전부 호명된 뒤 나와 다른 한 명의 면접자만 대기실에 남게 됐다. 관리자가 다가오길래 당연히 우리의 이름을 호명하는 줄 알았는데, 나를 틀린 이름으로 불렀다. "제 이름 그거 아닌데요"라고 하니 뒤늦게 이름을 고친다. 뭔가 잘못됐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시각은 오후 3시 5분. 면접자 소집 시각은 오후 2시였는데 1시간 10분 동안 나는 두 종류의 신문을 정독하고, 낙방을 대비해 다른 알바 자리를 검색하고, 옆 자리 면접자와 이야기도 나눴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었다. 

무성의한 면접 진행... 결과 발표날 어떤 일 있었냐면
 
면접 대기시간은 1시간 10분, 실제 면접시간은 10분이었다.
 면접 대기시간은 1시간 10분, 실제 면접시간은 10분이었다.
ⓒ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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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은 평이하게 진행됐다. 면접관 또한 다른 사람 이력서를 갖고 있다가 뒤늦게 내 이력서를 뒤져서 꺼내 들었던 것 빼고는. 집에 돌아오면서 '이렇게 10분도 안 걸리는 면접 하나 때문에 오래 기다렸는데, 안 뽑히면 짜증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과 발표 날짜가 됐다. 오후 2시가 넘었는데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관리자와 이용해온 메시지창에 조심스레 메시지를 넣어봤다. "안녕하세요? 혹시 면접 결과 나왔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립니다." 답은 금방 왔다. "오늘 중으로 연락 갈 겁니다."

결국 그날 하루종일 내 휴대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기분이 안 좋았다. 사실 20명이 넘는 면접 대기자를 본 뒤, 이 일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짐작은 했다. 하지만 면접에 응하기 위해 그들의 장소에 가서 1시간 넘게 기다리고 면접비 한 푼 못 받고 돌아온 사람에게 당락조차 알려주지 않는 건 무슨 예의란 말인가. 

'읽씹'보다 더 무례한

게다가 공교롭게도 최근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카톡 '읽씹'(읽고 답 안하는 것)을 당해오면서 맘 속에 쌓인 게 많은 와중이었다. 나의 "언제 시간 되냐" "새해 번창하고 복 많이 받아"(나는 절대 의미없는 이미지나 똑같은 말 안 보낸다, 항상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해 메시지한다) "우리 사진 첨부해 보낸다" 등의 메시지에 읽고도 답을 안 하는 친구들이 요즘 몇 명 있었고, 이에 대해 집요하게 물으면 괜히 이상해 보일까봐 그러지도 않았다.

나 혼자 '이제 나랑 친구 하기 싫은가 보다'라고 해석하며 그 관계를 살짝 놓을 뿐이었다. '읽씹 친구' 중 한 명을 다른 자리에서 직접 만나게 돼 웃으며 물어봤다. "너 내 메시지에 절대 답 안 하더라?" 그 친구가 한 말은 "나 데이터가 부족해! 그리고 일 할 때에는 원래 메시지 안 한다고..."

미안한 기색이 1도 없는 그 친구의 답에, 집에 와이파이 있는 거 빤히 알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메시지를 울며불며 기다릴 것도 아니고, 싸울만한 일도 아니지 않나. 결국 화살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타인이 내 메시지를 씹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이유는 내가 그만큼 우스운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아 결국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2019년 최고의 영화 캐릭터였던 조커에 감정이입이 됐다. 사람들은 내게 왜 이리도 무례할까. 차라리 "이러이러해서 너한테 답하기 싫다"라고 말해주면 좋겠지만, 그들에게 난 그 정도 마음의 부담조차 할애할 가치가 없는 사람일 것이라며 자학하고 있는 내게 남편이 얘기했다.

"다른 좋은 친구들 더 많이 만나면 돼, 너도 그냥 무시해."

생각해 보니 나와 문제없이 연락하는 주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가족을 포함해 사촌, 내 단짝친구를 비롯한 옛 친구들... '읽씹 친구' 몇 명은 오히려 소수인데 난 그들의 무례함에만 신경을 곤두세운 거다. 좋은 친구와 더 잘 연락하며 지내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읽씹 친구'들이 나중에라도 내게 오해를 풀기 위한 손길을 보내면 언제든 응할 생각이 있다. 하늘 두 쪽 나는 일도 아니고, 갑을 관계도 아니고 친구끼린데 잠시 소원해졌다 한들 풀면 된다.  

하지만 친구가 아닌, 면접 본 업체가 이런 식으로 나를 무시하니 진심으로 화가 났다. 게다가 내가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이 회사는 지속적으로 다른 탈락자 모두를 이렇게 취급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 대접을 받고 싶었다.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경험상, 이렇게 계속 지원한 회사에 떨어지고 연락도 못 받으면, 무시 당하는 데 면역이 되고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생각에 자책하며 우울해질 수 있다. 나 또한 취업준비생 시절에 겪었던 일이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내가 '읽씹 친구' 때문에 의기소침해져서 나 자신을 탓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회사에게 내가 을이면 을이지, 사람 대접조차 필요 없는 존재는 아니다.

경험에 의하면 규모가 큰 기업은 이메일이나 문자를 통해 "지원해주심에 감사하며 이번 기회에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라며 부족한 영혼으로나마 예의를 지킨다. 내가 지원한 회사는 충분히 크지 않아서 이런 부분에 신경 쓸 인력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메시지 하나만 보내주면 될 일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고 스리슬쩍 뭉개 버리는 곳은 크게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 지나 내가 먼저 메시지를 띄웠다. "연락 없으니 탈락한 것으로 생각하겠는데 이렇다 저렇다 말을 안 해 주니 기분이 상한다"는 내용이었다. 
 
당락 여부를 알려주지 않은 관리자와의 메시지
 당락 여부를 알려주지 않은 관리자와의 메시지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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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왔다. 죄송하다는 말은 없었지만 "이번에 함께 못 하게 됐다, 면접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있었다. 옆구리 찔러 절 받기였지만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화도 풀렸다. 내가 나 자신의 멘탈을 잘 돌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기뻤다. 

얼마 전에는 5년 넘게 얼굴도 안 보고 지낸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사실 이 그룹과는 동호회에서 만났던 10년 전에만 조금 친했고 서로의 경사에서 얼굴을 보긴 했지만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던 터라 조금 어색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오랜만에 보고 싶다며 단체 카톡을 보내온 그 친구에게 예전에는 몰랐던 고마움이 피어올랐다.

기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가서 정말 재밌게 놀았다. 어떻게 보면 내 '읽씹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안 나갔을 수도 있는 모임이다. 그들에게 고마워 해야 하나? 이 경험처럼 전화위복으로 좋은 알바 자리도 하나 들어왔으면. 

태그:#면접, #예의, #무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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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만들기와 글 쓰기를 좋아하는 여행 가이드. 포토그래퍼 남편과 함께 온 세계를 다니며 사진 찍고, 음악 만들고, 글 써서 먹고 사는 게 평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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